베이징(北京)에서 밤 기차를 타고 6월 18일 새벽 6시, 산씨(山西)의 따퉁(大同)에 도착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기차 역에서 어렵사리 택시 한대를 대절했다. 시내 호텔 잡고 윈강(云冈) 석굴과 쒸엔콩쓰(悬空寺)를 두루 돌아보고 오는데 200위엔(약 2만5천원). 조금 비싼 듯했지만 하루종일 마음대로 자가용처럼 활용하려면 마음도 편해야 하니 무난한 가격하다.
호텔을 잡고 짐 푼 후 바로 윈강 석굴로 갔다. 그러고 보니 2006년도에 처음 왔을 때도 비가 왔었는데 공교롭다. 따퉁이 비가 많은 도시는 아니고 사실 중국 최대의 석탄 도시로 유명한데 말이다.
버스를 타면 시내에서 서쪽으로 1시간 이상 달려야 하는데 30분 만에 도착했다. 입구 식당에서 면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다소 날씨가 쌀쌀하다. 지역 특산인 33도의 쎈주(仙竹)라는 대나무 술 한병을 마셨다. 대나무 향인지는 모르나 독특한 향기가 몸을 한결 따뜻하게 해준다.
세계문화유산 윈강 석굴은 서기 470년 대에 처음 만들어졌다. 1500년 훨씬 이전인 북위 시대의 걸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뤄양의 룽먼(龙门) 석굴 역시 북위인들이 만든 석굴이니 두 곳을 비교해볼 수도 있으리라. 비가 내려서 깔끔한 하늘 탓에 석굴을 숨긴 채 서 있는 작은 산 전경이 아주 푸릇푸릇해 보인다.
윈강 석굴은 북위 사람들이 숭상한 불교의 유산이다. 1호 석굴부터 47호 석굴까지 굴 속에는 신비하고도 은은한 색채를 감싼 아름다운 불상들이 연이어 있다. 20m가 넘는 석굴도 있지만 아주 앙증맞게 작은 석굴도 있다.
제3호 석굴은 높이가 25m, 길이도 50m에 이르는 거대한 동굴이다. 10m에 이르는 미륵불이 정면에 자리를 잡고 있고 양 옆에는 각각 6m가 조금 넘는 보살 동상이 서 있는 모습이 아주 인자하다. 그래서 이곳을 미륵 동굴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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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강 석굴 속 미륵불 . ⓒ 최종명
석굴 속으로 들어가 자세히 보면 천연색이라 느낄만큼 색채들이 풍기는 감촉이 은은하기 그지 없다. 도대체 얼마나 여러가지 색감으로 채색했는지 세어봐도 잘 모르겠다. 불상의 의젓하고 인자한 모습도 그렇지만 불상이나 벽화에 새긴 칼라풀한 느낌은 정말 이 세상 어떤 물감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약간 퇴색되어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지만 섬세한 조각 예술과 함께 어우러진 천연의 색감은 은근하게 빛나고 있다. 1500년 이상 이어오고 있으니 당시의 예술문화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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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강석굴 벽화 은은한 느낌이 살아있는 벽화 ⓒ 최종명
제13호 석굴에는 미륵보살 좌상이 있다. 그 대퇴부에 앙증맞게 서 있는 작은 역사(力士) 불상이 이채롭다. 미륵을 보호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보호받고 있는 것인지. 얼핏 보면 넉넉한 엄마 품 안에서 노니는 아이같아 보인다. 역시 여기저기 긁힌 흔적이 있지만 은근한 색감이 묻어 있는 것은 여전하다.
한 석굴에는 마주 앉은 불상 중 하나를 누군가 훔쳐 갔다. 머리와 몸통을 모조리 가져가면서 가부좌한 다리 부분은 남겨둔 모습이다. 그 누군가가 이 동굴 속을 염탐해 도둑질을 했다고 생각하니 슬프고 안타깝다. 윈강 석굴에는 머리만, 몸통만, 눈만, 코만 빼내간 후 남겨둔, 그렇지만 그 모습조차 소중한 불상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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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호 석굴의 역사 불상 미륵보살 좌상 대퇴부에 서 있는 불상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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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강석굴 01 1500년 전 남북조 시대 북위가 세운 불교 유적지인 윈강 석굴 ⓒ 최종명
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즉 동쪽에서 서쪽으로 감탄과 한탄을 섞어 거닐다가 한 석굴 앞에서 중국 대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은 베이징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는데 5명이 한껏 야릇한 동작으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보자마자 천수관음임을 직감했다.
2005년도 중국 CCTV의 춘제(春节) 프로그램에서 13억 중국인들에게 감동의 물결을 선사한 타이리화(邰丽华)를 비롯한 21명의 장애우 무용수들의 천수관음을 따라하는 것이었다.
당시 청각 장애우인 타이리화는 중국 전역에 방영된 무용에서 천수를 뻗는 아름다운 무용, 세상의 모든 수화처럼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멋진 예술을 선보여 화제가 됐던 것이다. 이후 중국 곳곳에서 이를 따라 하는 동작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이 모습을 실제로 윈강 석굴 앞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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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수관음 동작 장애우 무용수들의 천수관음을 표현한 베이징 대학생들 ⓒ 최종명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아주 자연스럽게 천수관음 동작을 한다. 한국사람이 어떻게 이 천수관음을 아느냐며 의아해한다. 중국문화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다. 사진을 보내달라며 이메일을 적어줘 며칠 후 예쁘게 나온 사진 한장과 짧게 편집한 동영상을 보내줬더니 메신저로 자주 연락하자고 한다. 지금도 그들과 친구처럼 연락하고 지낸다. 윈강 석굴 앞에서 중국 젊은친구들과 작은 연분을 만들게 됐다. 아마도 대자대비하신 천수천안관음보살 덕분이 아닐까 싶다.
감미로운 색감에 취해 두루 살펴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자세히 다 훑어보려면 2시간은 족히 걸린다. 드디어 윈강 석굴을 상징하는 거대한 불상 앞에 다다랐다. 좌우에 각각 하나씩 불상이 같이 배치되어 있다. 제20호 석굴은 루톈따포(露天大佛)라 부르고 있는데 윈강석굴을 대표하는 불상이다. 높이가 13.75m에 이르는 이 석불은 전쟁과 바람으로 인해 석굴 앞이 무너져 파괴 되었기에 그 모습이 외부에 확연히 드러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듯 제16호부터 20호에 이르는 석굴 안에는 모두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하는 삼세상(三世像)이 자리잡고 있고, 7세기 경 스님인 담요(昙曜)가 만들었다 하여 담요오굴(五窟)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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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호 석굴 윈강의 대표적 석굴 ⓒ 최종명
제20호 불상이 있는 입장권(60위엔)을 다시 보며 윈강 석굴을 빠져 나왔다. 윈강 석굴은 불교를 숭상한 남북조 시대 북위의 화려한 조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석굴마다 웅장하고 인자한 불상은 영롱한 빛을 담고 있고 벽화에 수놓은 은은한 채색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한치도 흔들리지 않고 '미(美)'의 경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감흥을 준 선비족의 나라 북위에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솟아나고 있다.
타퉁 윈강석굴은 뤄양(洛阳)의 룽먼(龙门)과 둔황(敦煌)의 마오까우쿠(莫高窟)와 더불어 은 중국을 대표하는 3대 석굴이다. 그리고 깐쑤(甘肃) 성 톈수이(天水)에 있는 마이지산(麦积山) 석굴을 4대 석굴에 포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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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강석굴 02 1500년 전 남북조 시대 북위가 세운 불교 유적지인 윈강 석굴 ⓒ 최종명
다시 택시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북위의 수도였던 따퉁(大同)에서 남쪽으로 80km 가량 떨어진 쒸엔콩쓰이다.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거의 2시간이나 걸렸다. 그나마 택시를 탔으니 망정이지, 버스를 찾았다면 아마 따퉁에서 하루를 더 묵어야 할 지도 모른다.
중국 오악의 하나인 북악 항산(恒山)에 가면 가파른 절벽에 세운 사원인 쒸엔콩쓰(悬空寺)가 있다. 항산의 가장 독특한 절경이라 일컬어지는 씨엔꽁쓰는 절벽을 따라 지어졌으니 반 정도는 공중에 붕 떠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하늘 위에 그린 사원이라 일컫기도 한다.
중국 오대 명산은 동악(東岳)인 태산(泰山), 서악(西岳)인 화산(華山), 남악(南岳)인 형산(衡山), 북악(北岳)인 항산(恒山), 중악(中岳)인 숭산(嵩山)을 말한다. 형산을 아쉽게 가진 못했지만 4악을 비롯해, 오악을 합친 절경을 지닌 황산(黄山)을 올랐으니 나름대로 중국의 명산은 섭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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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에서 바라본 쒸엔콩쓰 암석 조각에 새긴 쒸엔콩쓰과 실제 쉬엔콩쓰 ⓒ 최종명
서기 491년 북위는 항산의 진룽샤(金龙峡) 협곡에 처음 지은 쒸엔콩쓰는 몇 차례 수건(修建)하긴 했지만, 여전히 위태롭고도 불안하다. 마치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사원은 절벽에 기대어 절묘하게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는데, 곳곳에 아름다운 불상이 있으니 가히 경이롭기도 하다.
쒸엔콩쓰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아래 암석에 '장관(壮观)'이란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당나라 시인인 이백(李白)이 친히 쓴 것이라 한다. 이백 뿐 아니라 그 누구라 하더라도 장관임을 느끼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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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쒸엔콩쓰 '장관' 시인 이백이 썼다는 글자 ⓒ 최종명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장관(壮观)' 글자 중 '壮'의 '士'자 옆에 점 하나가 더 가일수 돼 있다. 어쩐 연유일까.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백이 이곳의 기이한 모습에 감탄한 후 웬일인지 자신의 전공인 시를 짓지 않고 오히려 붓으로 바위에 두 글자를 쓰더니, 강렬한 감동을 더 표현하기 위해 점 하나를 더 찍었다고 전해진다. 오랜 세월 흐르며 그 글자는 많이 퇴화됐지만 1990년 다시 글자를 복원하면서 점 하나도 같이 조각돼 되살아났다고 한다.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도 독특하지만 겨우 150평방미터의 좁은 공간에 40여 칸이나 되는 목조 건물을 따라 위 아래 좌우로 다니면서 두루 살펴보니 아주 위험천만이지만 흥미롭다.
사원 제일 꼭대기의 싼쟈오뎬(三教殿)에는 석가모니, 노자, 공자의 조각상이 함께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하늘을 향해 있는 사원답게 종교적 합일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사실은 종교투쟁이 격화되던 북위 시절, 세 종교의 합일을 도모하기 위해 지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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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싼쟈오뎬 쒸엔콩쓰 싼쟈오뎬 오르내리는 계단 ⓒ 최종명
이곳의 절묘함은 베이러우(北楼) 쪽에 3개 층으로 구분된 건물이다. 제일 아랫층에는 우포뎬(五佛殿)이 있는데 다섯 보살을 모신 곳이다. 중간 층에는 관인뎬(观音殿)이 있는데 중국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관음보살을 모셨다. 제일 윗층에는 바로 싼쟈오뎬(三教殿)이 있다.
원래 명칭은 현공각(玄空阁)이라 했는데, '玄(현)'은 도교, '空(공)'은 불교를 상징하는 의미라 하고 지금의 '현공사(悬空寺)는 같은 음의 씨에인(谐音)이다. 사원이 절벽에 매달린 형상이라 해 '매달다'라는 뜻의 '悬'을 붙여 부르던 것이 굳어진 것이라 한다.
위태로운 위치만큼이나 이곳에는 진귀한 모습이 많다. 도교, 불교, 유교의 흔적이 합쳐 있을 뿐 아니라 불상이나 벽화의 예술적인 가치도 사뭇 평가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특히, 레이인뎬(雷音殿)의 조각 및 벽화는 경이로울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오죽하면 영국의 한 건축학자는 '역학과 미학 그리고 종교가 일체화된 아름다운 융합'이라고까지 칭찬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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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인뎬 쒸엔콩쓰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 ⓒ 최종명
하늘을 향해 절벽 위에 그린 듯한 쒸엔콩쓰. 각 칸칸마다 신비로운 예술품을 내장한 건물들을 긴 나무들이 지탱하고 있는 모습도 가관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오르내리면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로 가파른 모양의 1500여 전 유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전했다. 앞으로도 하늘을 향해 염원을 빌던 '세 종교의 합일' 정신만이라도 영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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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쒸엔콩쓰를 지탱하고 있는 긴 나무들 . ⓒ 최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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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쒸엔콩쓰 하늘 위에 그린 종교합일의 염원 ⓒ 최종명
오후 3시가 넘었다. 밥을 챙겨먹고 나니 택시운전사가 새로운 곳을 소개하며 유혹한다. 단호히 거절했다. 추가 요금도 그렇지만 시내로 돌아가면 날도 저물 것이다. 비가 오락가락하는데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따퉁 시내로 돌아왔다. 지금은 남북조 시대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북위의 수도이지만 비 오는 거리를 거니는 것도 기분이 상쾌하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과 빗물에 비친 건물들을 바라보며 한적한 도시를 1시간 내내 걸었다.
호텔로 들어가니 정전이다. 게다가 정전으로 인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그 속에 갇힌 사람들이 2시간 이나 꼼짝 못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이긴 했지만 윈강 석굴의 은은함이 피어나는 듯, 쒸엔콩쓰의 절묘함도 살아나는 듯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youyue/13768333에도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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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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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여년 전 석굴과 절벽 따라 세운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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