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송이 알알이 영글어 가듯, 길 위에서 자라나다

[천진난만하게JH, 산티아고 가는 길 31] 몰리나세카에서 카카벨로스까지

등록 2008.01.04 18:26수정 2008.01.0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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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페라다 도시를 지키는 성의 위용 ⓒ JH


2007년 7월 22일 일요일, 날씨 흐리다 비, 순례 30일째.
몰리나세카에서 카카벨로스까지, 22km.
오전 7시 40분 출발, 오후 4시 도착.


어젯밤 과음에 느즈막히 일어나 빈속으로 걷기 시작한 아침, 여전히 휘청거리는 기분이다. 앞으로는 아무리 공짜로 퍼 줘도 반 병은 절대 넘기면 안 되겠다 혼자 다짐했다. 7월도 말에 접어들었다. 춥다. 너무나 춥다. 긴 팔에 얇은 바람막이를 껴입고도 바들바들 떨면서 걸었다. 이번 여름은 정말 제대로 피서를 하는구나. 한국 날씨는 어떨까? 한창 더울 텐데, 다들 잘 지낼까….


몰리나세카로부터 두 시간 채 안 되는 거리인 ‘폰페라다(Ponferrada)', 아스토르가를 지나고 일주일만에 산 하나를 넘고 다시 만나는 도시이다. ‘yocamino’라는 이름의 순례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도시에 도착해 시간을 보내고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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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페라다 입구 빼곡하게 들어찬 주요 사적지 안내판 ⓒ JH


점점이 생각을 늘어놓으며 도시로 들어서는 언저리, 길 양편에 체리나무들이 무성히 자라있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땅바닥을 검게 물들인 열매들이 아깝기만 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 들고 있는 지팡이를 뻗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진 체리는 조금 뭉개졌지만 먹기 나쁘지 않았다. 물통의 물을 조금 뿌려 흙을 걷어내고 입에 쏙 넣었다. 달콤함이 입 안에 퍼지자 곧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길 옆 좁은 문틈으로 보이는 정원 잔디밭에는 네 마리의 고양이가 똘똘 뭉쳐 또아리를 트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냐아옹-’ 하고 간지러운 소리를 냈더니 일동 주시! 그 눈빛이 심상찮았다. ‘잠 깨워서 미안해, 계속 자’, 나는 꼬리를 내리고 그 애들을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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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페라다 가는 길에 매서운 눈빛의 고양이들과의 만남 ⓒ JH


일요일 아침, 폰페라다 길목은 긴장감이 감돌 정도로 조용했다. 새로 지어지는 건물과 텅 빈 쇼윈도를 따라 ‘이 길이 맞는 거야?’ 몇 번을 뒤돌아보고 걱정하며 길을 이어갔다. 어느새 노란 화살표를 잃어버려 ‘어떻게든 길은 이어지겠지’하는 마음에 ‘공사중’이라고 막아놓은 팻말을 뛰어넘으며 길을 더듬었다. 저 멀리 보이는 옛 건물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될 거야, 가방을 짊어지고 통과하기도 비좁은 길을 지나고 뒤를 돌아보니 ‘yocamino'라고 쓰인 거대한 광고 현수막이 성당 건물 전면을 뒤덮고 있었다. 샛길 뒷길을 전전했지만 목적지에는 무사히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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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페라다 순례 전시회장으로 사용되는 성당 전면 ⓒ JH


전시는 열 시부터 개장이었다.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성당이 잘 보이는 카페를 골라 아침을 먹기로 했다. 포크로 꾹 집어 접시에 올려준 줄무늬 빵과 카페 콘 레체를 들고 노천으로 나왔다. 순례자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부지런히 테이블과 의자를 옮기며 영업을 준비하는 젊은 종업원을 쳐다보며 책을 더듬고 기록을 정리하며 숨을 돌렸다.

시간이 가까워져 입구에서 가방을 맡기고 번호표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스페인 각지에서 순례와 관련된 자료들을 가져와 전시하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실내를 따라 십자가, 성체를 보관하는 화려한 Custodia, 회화작품과 조각상들을 스쳐가며 ‘기대가 너무 컸었나’,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곧 ‘점심은 어쩔까? 오늘은 어디까지 걸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사로잡힌 채 채로 출구를 따라 걷다, 비좁은 통로가 길게 이어진 전시구조물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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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산티아고 가는 길 론세스바예스부터 산티아고까지의 길을 재현한 전시 설치물 ⓒ JH


새카만 통로는 마치 공항에서 비행기의 몸체와 연결되는 것과 닮은 것이었다. 그리고 양쪽 벽면은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가 쏟아지듯 반짝이는 점들이 한 줄로 이어져 빛나고 있었다. 내 옆에서 시작되는 첫 점은 ‘Roncesvalles'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그렇구나! 이 좁고 어두컴컴한 긴 통로는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이었다. 말쑥한 정장을 입고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관람자들이 보는 그것과, 내 눈이 보는 것은 같지 않았다. 그저 점으로 이어지는 통로, 그러나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가득한 소중한 이름들이었다.

에스피노사 델 카미노를 지나며 ‘페페 할아버지는 잘 계실까’, 떠올리며 웃었다. 부르고스 즈음에서는 무리수를 둔 결과로 앓았던 발목통증이 떠올라 얼굴을 찡그렸고, 이상한 거래에 휘말릴 뻔한 이테로 델 카스티요를 부릅뜬 눈으로 째려보았다. 두 발로 걷지 못한 길이었기에, 버스를 탄 마을들은 눈을 꼭 감고 휘청거리며 걸었다. 어느새 라바날 델 카미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손을 뻗어 벽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낮은 한숨을 토했다. 모두가 아련하기만 하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800여 킬로미터의 순례도 후반부에 가까워지고 있다.

통로를 지나 전시장을 빠져나오자 여느 때처럼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양 손의 깍지를 껴 기지개를 펴본다. 새벽녘의 서늘함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온기를 띠기 시작했다. 순례를 떠나기 전 한국에서 몇 번을 보고 외우려고 안간힘을 써도 잘 들어오지 않던 마을 이름들이, 통로에서 명멸하던 빛처럼 어느새 내 마음 속에서도 고운 빛깔을 띄며 빛나고 있었다.

정오에 가까워져 일요일의 도시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무엇을 할까 골목을 배회하다 금빛 현판이 걸린 멋진 건물 앞에 섰다. ‘비에르조 박물관(Museo del Bierzo)', 유리문 너머 보이는 실내에 호기심이 일었다. 앞으로 걸어야 할 거리는 12킬로미터, 세 시간은 더 걸어야 할 텐데…, 그러나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걱정을 거두고 박물관 문을 열어 제쳤다. 친절한 직원 언니를 따라 가방을 보관함에 넣었다. 그녀는 보관함을 열쇠로 굳게 잠그고 ‘걱정 말고 구경하다 오라’는 듯 나를 전시장으로 데려갔다. 때마침 일요일은 무료입장이었다.

고요한 전시구역을 거닐며 손에 들린 영어 안내문을 읽어 내려갔다. 과거 영주의 감옥으로 쓰이던 건물을 보수하여 지역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1층 로비 한가운데에는 옛날 초등학생들이 앉아서 공부했던 책상이 열을 지어 전시되어 있었다. 가벼운 경사를 가진 나무판에 잉크를 담아두는 홈통이 파인 것이 신기했다. 의자에 앉아보고 싶었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의자에 몸을 쉬기에 나는 이미 너무 커버려 주위를 몇 번 맴돌다 말았다.

비에르조 지역은 스페인의 카스티야 레온에 속해 있지만 갈리시아 지역과 접경을 이루고 있어 두 지역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박물관은 이런 비에르조 지역이 가진 특징을 바탕으로 선사시대부터의 역사와 전통 생활상을 전시하고 있었다. 한국의 민속박물관쯤 되는 곳 같았다. 전통복식으로 단장한 인형 옆에는 할머니들이 옷 짓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마치 한국의 TV에서 보았던 아주머니들이 노래를 부르며 베를 짜고 옷을 짓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지구 반대편 작은 마을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며 익숙한 새로움에 빙긋 웃었다.

내부를 돌아보고 1층으로 내려왔다. 한쪽의 묵직한 나무문을 밀고 들어선 곳은 작은 정원이었다. 아름드리 월계수 나무가 잎사귀를 무성하게 드리우고, 처마를 따라 흐드러진 나무줄기에는 아기포도들이 햇빛을 받아 열심히 자라고 있었다. 그늘 한 편에 이제는 버려진 사람의 목과 손을 포박하는 나무판이 과거 이곳의 쓰임새를 알려주고 있었다.

벽 저편을 분주히 오고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마저 담을 넘지 못하는 고요한 작은 별세계를 서성이다 돌계단에 앉았다. 이 아름다움에 머물지 못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하는 순례자의 운명을 조금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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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페라다 구 시가지의 풍경 ⓒ JH


짐을 받아 박물관을 나서 걷기 시작했다. 시 외곽의 잘 꾸며진 주택가는 마치 영화 <천국보다 아름다운>이 떠올랐다. 휴일 오후 테니스를 치는 동네 사람들을 지나쳐 축구장 위의 짙푸른 잔디밭이 싱그러웠다. 점점이 이어지는 체리나무를 지나 복숭아 향이 그윽한 장미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멀리 비닐하우스에서는 공들여 기른 꽃을 한 아름 품에 안고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들이 보였다.

어느새 길 양편은 끝없는 포도밭으로 변해 있었다. 순례의 시작 와인의 땅 라 리오하에서 보았던 포도들은 작은 점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이곳의 포도송이는 예전 문방구에서 팔았던 작은 상자에 담긴 과일 맛 동그란 껌의 크기만큼 성큼 자라 있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보랏빛을 띠겠지? 이네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한여름의 태양 아래에서 하루하루 영글어가고 있구나.

오늘의 걸음도 막바지에 이르러, 분위기가 심상찮다. 어느새 하늘엔 짙은 구름이 내달리듯 드리워졌다. 한바탕 비를 흩뿌릴 태세다. 지금까지 걸으며 그럴싸한 비를 맞아본 적이 없어 불안해졌다. 사방을 둘러봐도 머리를 피할 지붕 하나 없는 포도밭 한가운데에서 툭툭 내리긋는 물방울에 10킬로의 가방을 지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가방 깊숙하게 틀어박힌 판초를 꺼내는 것보다는 어차피 해야 할 샤워와 빨아 널 옷을 미리 적신다는 기분으로 샤워하듯 상쾌하게 걸었다. 물방울 하나 내 몸에 묻는 것이 싫어 구름만 비쳐도 우의를 꺼내 펄럭거리며 걸었던 때가 언제였지….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카카벨로스(Cacabelos)’에 도착한 것은 오후 네 시쯤, 꽤 늦은 시간이었다. 마을 중심가를 통과하여 끝자락에 자리한 성당 주위를 반원으로 에둘러 만들어진 숙소에 도착했다. 성당 안의 부속건물 등으로 숙소가 있는 경우는 몇 번 보았지만 오늘처럼 성당 건물을 에워싼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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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벨로스에서 순례자 숙소의 풍경 ⓒ JH



방을 배정받아 짐을 풀고 옆자리의 순례자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2인 1실의 방들은 지붕이 하나로 트여 옆 방, 아니 모든 방의 소리가 전부 들렸다. 오늘 밤도 귀마개를 벗 삼아 잠들어야 할 듯싶다. 샤워를 마치고 처마 밑 빨래건조대에 옷들을 널었다. 세 시간이면 빨래가 마르던 평소와는 달리 궂은 날씨라 부디 물기가 가시기만을 바랐다.

저녁 일곱 시에 동네 중심의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있다고 해 부랴부랴 발걸음을 옮겼다. 장례차량 속의 관이 사제의 안내에 따라 성당으로 옮겨지고, 미사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도 경험한 적이 없는 미사였다. 누군가의 일생에 있어 중요한 순간의 참례자가 된다는 것이 참 뜻깊었다.

말씀과 성찬전례가 이어지고, 묵묵히 앉아 있다 성체를 받았다. 그저 오늘의 미사는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아름답게 살고, 부르심 받아 가신 이사벨 할머니의 삶을 위해서 바치고 싶다. 어쩌면 그 분께서 주신 삶, 잘 살고 다시 오라고 부르실 날까지, 그저 살아가는 것이 보답하는 길일 뿐인…, 생명일지 모른다.

미사를 마치고 조금 숙연한 마음이 되어 마을을 거닐었다. 오늘 숙소에는 주방이 없다. 게다가 일요일이라 상점도 모두 닫았다. 가진 음식도 없어 동네를 구석구석 살펴봐도 괜찮은 곳 하나를 찾기 힘들어 처음으로 피자집에 들어갔다. ‘여기까지 와서 피자를 먹어야 되나?’ 쫑알거리며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또 다른 순례자가 옆 테이블에 앉는다. 인사를 나누고 함께 식사하기로 하고 합석했다. 독일에서 온 리나와 함께 참치피자 한 판, 샐러드 한 접시에 시원한 생맥주를 곁들여 건배를 했다. 생각해보니 나, 오늘 처음으로 사람과 마주앉아 말을 하고 있다. 긴 침묵 가운데 만난 말벗이라 이야기가 즐겁기만 하다. 주린 배에 맛본 음식은 무심코 내쉬었던 한숨을 거두고 싶을 정도로 달콤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와 헤어졌다. 오늘 하루 40여 킬로미터를 걸어 파김치가 된 리나는 숙소로 향하고, 나는 길을 두리번거리다 점찍어둔 작은 바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녹색 햇빛가리개가 펼쳐져 비를 가려주는 노천에서 카페 콘 레체 작은 잔에 설탕을 잔뜩 넣고 휘저었다. 물끄러미 천막을 따라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다 책장을 몇 장 넘기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방 안에 엎드려 내일을 생각하던 중, 리나에게 우편봉투 하나를 건네주기로 한 것이 떠올랐다. 오늘 전시장에서 샀던 편지세트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들고 문 밖으로 나섰다. 무심코 쳐다본 벤치에는 몇몇 순례자들이 진을 치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만났던 스페인 순례자 호르케였다.

“오늘도 만났네? 몰리나세카에서 재미있었어? 어제 널 찾지 못하겠더라.”

내 쪽을 향해 찡끗, 윙크를 하며 말하는 것이 재미있다. “그냥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어”라고 대꾸하고 웃고 말았다. 그가 순례하며 만났다는 일행들과 인사를 했다. 수도 마드리드에서 온 산티, 그리고 남부 알메리아에서 온 세바스였다. 호르케는 발렌시아에서 왔단다. 어둠이 내린 밤, 그들의 왁자지껄한 수다에 끼어 웃고 즐거워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간다.

“순례는 어때? 할만 해?”
“글쎄…,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떠나올 때엔 이곳에 대해 하나도 아는 게 없었는데, 어느새 스페인과 사랑에 빠진 것 같아.”
“하하하! 그래, 그게 바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야.”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냐는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나의 세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화제는 곧 종교로 기울었다. 나는 그들에게 종교가 있는지 물었다. 먼저 호르케가 말했다.

“나? 우리 부모님은 가톨릭이야. 그렇지만 나에게까지 종교를 강요하진 않았어. 선택권을 주셨달까? 어쨌든, 내가 믿는 것은 나 자신이야.”

그리고 상대적으로 이야기를 알아듣기 힘들었던 산티와 세바스가 스페인어로 하는 이야기를 호르케가 사이에서 통역해주었다.

“산티는 가톨릭이래. 그것도 여자친구 때문에 세례를 받았다더라.”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내가 안 믿는다고 하니까 여자친구가 울더라니까, 내가 세례를 받지 않으면 결혼을 할 수 없다면서 말야. 어쩔 수 없이 가서 세례를 받긴 했지만 그 애랑은 진작에 헤어졌어. 어릴 때였지. 그게 내 종교의 전부야!”

산티의 경험담이 재미있었다. 나는 ‘사랑의 힘이로구나!’ 하며 추임새를 넣었더니 다들 한바탕 웃는다. 그리고 갑자기 짐짓 심각한 체 하며 호르케가 말한다.

“아니지, 그건 여성의 힘이야.”
“사랑은 무슨 남자만 하니? 남자든 여자든 사랑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게 아닐까?”
“그래. 그렇지만 확실히 여자는 남자를 바꾸거든. 그리고 네게도 그런 힘이 있어.”

내게 누군가를 바꾸는 힘이 있다고? 뜬금없는 이야기에 벙찐 채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엥? 난 잘 모르겠는데. 난 별로 여성스럽지도 않고,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살아.”
“그게 무슨 말이야? 넌 분명 여성이잖아. 난 알겠는데. 너도 점점 알게 될 거야.”

그리고는 다시 쾌활한 얼굴이 되어서는 한쪽 눈을 찡끗, 하고 어깨를 다독인다. 어느새 시계바늘이 소등시간에 가까워지고, 때마침 그 곳에서 리나를 만나 편지봉투를 전했다. 호르케와 리나는 방이 가까워 서로 인사를 나눈 사이였다. 그녀가 오늘 무리하여 발목이 당긴다고 하자 세바스가 마사지를 할 줄 안다며 도와주겠단다.

내게도 “너도 어디 아픈데 있음 세바스한테 마사지 받아봐. 나도 어제 받았는데 정말 최고야”하며 권했다. 야밤에 처음 만난 사람 (그것도 남자)에게 마사지라니? 뜬금없는 이야기에 어색하게 웃으며 지금은 괜찮으니 나중에 부탁하겠다고 말했다. 방이 붙어 있는 호르케와 산티, 세바스와 리나는 함께 어울려 돌아가고, 나는 반대쪽으로 향했다.

“우린 내일 여덟시쯤 출발할 거야. 생각 있으면 같이 걷자!”
“응. 봐서 그렇게 하자.”

마음 속으로 리나가 늑대들의 소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은 아닐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인사를 전하고 돌아왔다. 즐겁고, 유쾌하고, 조금은 색다른 대화였다. 이들과 함께 걷는다면 퍽 재미있는 순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대화가 매끄럽게 이루어지는 사람은 처음인 것 같아. 그러나…,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휩싸고 돈다. 침대에 누워 귀마개로 틀어막아도 비집고 들어오는 쩌렁쩌렁한 코골이 소리를 배경삼아 떠도는 생각을 다잡아보려 애써도 잘 잡히지가 않는다.

라바날에서의 4일 간의 쉼, 그 곳에서 모든 것이 변했고 이제부터 새로운 순례가 시작되었다고 믿었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여전히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무엇이 그리도 두렵기만한 걸까….
#산티아고가는길 #스페인 #성지순례 #도보여행 #카미노데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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