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불의 심판
차운형은 아침 일찍 경찰청 별관의 특별수사본부 사무실로 갔다. 전날 한형우와 헤어지고 카페 ‘미로’에 들를까 하다가 곧장 귀가를 한 덕분에 몸은 아주 개운했다. 수사본부 요원들이 아직 출근을 하지 않았는지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는 휴게실로 가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마셨다. 그리고 느긋하게 끽연을 즐기고 다시 사무실로 갔다. 건장한 남자가 소파에 걸터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차운형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들어서자 남자가 엉거주춤 일어섰다. 원용철처럼 장골형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는지요?”
“이미 연락이 왔을 텐데요? 차운형이라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김성호 형사입니다.”
김성호가 반색을 하며 차운형과 악수를 나누었다. 차운형의 손은 마치 화강암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김성호는 차운형을 맞이하며 다소 의외라는 생각을 가졌다. 보통 상부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면 거만하기 짝이 없는데 차운형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검찰청에서 나온 사람들만 하더라도 경찰을 우습게 보는 건 예사였다. 그런데 국가안전기획부에서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3138군 중령이 일개 형사인 자신에게 두 손으로 악수를 청하고 게다가 깍듯하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었다.
“김 형사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수사본부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분이시라죠?”
“어이구,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우선 여기 좀 앉으시죠? 본부장님이 오시면 제가 브리핑을 해드리겠습니다.”
“브리핑은 무슨 브리핑입니까? 저도 사건 개요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앉았다.
“차 한 잔 하셔야죠?”
“커피 한잔 마셨습니다.”
김성호의 말에 차운형이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담배를 권했다. 차운형은 담배를 받아 김성호가 댕겨주는 불을 붙이고 나서 물었다.
“원용철이 은신해 있다는 신흥종교에 대해선 좀 알아보셨습니까?”
“한형우씨의 양아버지 이인철 목사가 다녔던 ‘지저스 교회’란 데를 가서 몇 사람 만나봤는데요.”
“…….”
“10년 전쯤에 교회 운영과 관련한 이견으로 담임목사와 사이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담임목사가 교회재산의 절반을 떼어주면서 분가를 해나가라고 했고, 이인철 목사는 곧장 추종자들과 함께 무영산으로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그래요? 담임목사란 분이 훌륭한 사람인가 보네요?”
차운형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저도 그게 좀 이상하더라구요? 아무리 그래도 재산을 절반이나 뚝 떼어서 주었다는 건 좀, 흔히들 종교단체에서 재산 싸움하는 것 보면 치열하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몇 가지 물어보았더니 다들 대답을 꺼리더라구요? 이인철 목사가 담임목사와 다투게 된 이유가 구체적으로 뭔지, 재산을 반씩 나눈 이유가 뭔지, 좀 자세하게 말해달라고 해도 입을 다물어버려요. 담임목사를 만나 봐도 자신은 당시 담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잘 모른다고 하구요.”
김성호가 담배를 새로 피워 물며 계속 말했다.
“그래서 또 한형우씨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더군요.”
지저스 교회는 이인철 목사가 갓 부임할 당시만 해도 개척교회 수준이었는데 그가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그래서 일반 신도뿐만이 아니라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신망이 무척 두터웠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그 아들에게 교권을 물려주려고 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교회란 교인들의 공동 재산인데 마치 사재처럼 세습하는 것을 이인철 목사는 묵과할 수 없었다. 더욱이 미국 유학까지 갔다 온 아들 목사는 행실이 좋지 않았고, 뇌물을 받았다는 둥 여성 교인을 추행 했다는 둥 사사건건 스캔들만 일으키고 있었다.
보다 못한 이인철은 급기야 교권에 반기를 들게 되었다. 그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의 부패와 타락상을 언급하면서까지 교회와 교권을 비판했는데, 그건 자신이 봉직하던 교회뿐만 아니라 개신교 전체가 그런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설교할 때엔 더 이상 교회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오직 타락한 목회자와 뱀 같은 설교에 넘어가는 교인들만 있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이인철의 언행이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교권파에서는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파문했다. 그리고 영원히 교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축출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이인철은 교권파의 전횡에 굴하지 않았다. 교회 앞마당에 천막을 치고 목회자와 교인들을 대상으로 진실을 알려나가는 투쟁을 전개했다.
양아들 한형우는 세무서에 갓 발령받아 분주했으므로 이인철의 투쟁을 엄호해 줄 사람은 오롯이 아내 밖에 없었다. 아내는 힘들고 외로운 싸움에서, 차라리 무모해 보이는 싸움에서 이인철이 꺾이지 않도록 지탱시켜준 버팀목이었다.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천막을 찾는 교인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심지어 교권파의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하던 일부 양심적인 목사들도 동조에 나서주었다. 거기에 고무된 이인철은 직접 목회를 집전하기에 이르렀다. 교인이 적으면 천막 안에서, 교인이 넘치면 천막 밖에서 목회를 열고 설교를 했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교권파에서 교회재산 일부를 넘겨주겠다며 그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승리를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고통스러운 싸움 끝의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내가 갑작스럽게 숨을 거뒀다.
아내의 죽음과 교권파의 회유에 갈피를 못 잡던 이인철은 절실하게 기도에 매달렸다. 어떻게 해야 주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따르고 섬기는 것인지, 수많은 날들을 철야로 지새우며 복음에 목말라했다. 복음을 얻지 못하면 목숨까지 버리겠다는 각오로 성령을 갈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도 요한의 계시를 준비하라. 일곱 인이 모두 떨어졌다. 이제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한다. 나팔이 울리기 전에 물과 불과 지진과 번개와 천둥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 무영산으로 가라…….’
드디어 성령이 발현하여 말씀이 주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인철은 자신을 따르는 목회자와 신도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교권파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마침 무영산엔 매각 중인 적당한 규모의 건물이 있었는데 기도원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이인철은 즉시 그 시설물을 매입하여 350여명의 신도들과 함께 개축 공사에 들어갔다. 그것이 창조할 창(創)자에 세상 세(世)자를 써서 창세교라 이름 지은 공동체의 시발이었다.
2008.01.06 1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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