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불의 심판 - 76회

불의 심판 - 5

등록 2008.01.11 10:40수정 2008.01.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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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철이 도량 안에 있을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윤명오가 물었다. 아무래도 원용철이 있으면 상황은 자못 심각하게 전개될 수도 있었다. 김성호가 말없이 차운형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차운형은 “글쎄요.” 하고 입을 꾹 닫았다.

 

“총을 쏠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박만규가 다소 긴장한 듯 보이자 김성호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래서 특공대가 왔잖아?”

 

저녁 8시 정각에 드디어 구형 소나타와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력은 무영초막의 빈터에 차량을 세우고 모두 하차했다. 느닷없는 광경에 노인이 러닝셔츠 차림으로 가게 밖으로 나와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이영국이 재빨리 달려갔다. 그의 임무는 노인의 돌발행동을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전이 끝날 때까지 노인과 함께 있어야했다.

 

특공대는 무장을 한 채 무영초막에서 도량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정문에 도착할 때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아 있었다. 모든 성도가 기도실에 운집해 있는지 드넓은 도량 안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정문에 두 명의 특공대원을 초병으로 세워두고 병력은 운동장 가장자리의 플라타너스를 엄폐물로 삼아 본관까지 진입했다.

 

본관에 들어서자 2층 기도실에서 설교하는 교수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이제 주님께선 서서히 심판의 칼을 꺼내셨나이다. 우리의 아리따운 일곱 천사를 겁박하고 욕보이는 사탄들이 하나둘씩 주님의 칼에 쓰러지고 있나이다. 주여, 주님이시어! 하루빨리 저들을 징벌하시어 우리에게 ‘다시창세’를 보여주소서. 아멘.”

 

그리고 성도들의 기도와 찬양이 이어졌다. 처음엔 자그맣게 웅성거리던 소리들이 서서히 증폭되더니 급기야 통곡하고 울부짖는 소리로 변해갔다. 병력이 2층 계단을 타고 오르기엔 절호의 기회였다.

 

본관 1층을 특공대원 네댓 명이 지켜서고, 나머지 병력은 2층 기도실의 양측 출입문을 순식간에 치고 들어갔다. 수백 명의 성도들이 바닥에 앉아서 기도하다가 깜짝 놀란 얼굴로 총구를 응시했다. 특공대원들이 K2소총을 겨눈 채 성도들을 에워쌌다.

 

“당신들, 뭐요?”

금박 모자를 쓴 교수가 큰소리로 호통 쳤다. 그러자 윤명오가 체포영장을 보여주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을 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윤명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만규와 서인혁이 교수의 양팔에 팔짱을 걸었다.

 

“무슨 소리야?”

교수가 몸을 비틀며 거칠게 저항했다. 금박 모자가 떨어지면서 백발이 성성한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그러자 남자 성도들이 험악하게 인상 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김성호가 천정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타앙!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그래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계속 서 있자 김성호는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그제야 남자 성도들이 제자리에 앉았다.

 

“원용철이 보입니까?”

김성호가 묻자 차운형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잖아도 차운형은 성도들 틈에서 원용철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눈을 씻고 찾아보았다.

 

“교무님 세 분, 어디 계십니까? 한번 일어나 보세요.”

성도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윤명오가 소리쳤다. 하지만 다들 눈만 멀뚱거릴 뿐 반응이 없었다.

 

“교무님들이 안 나오시면 우리는 모든 남자 분들을 연행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윤명오의 은근한 협박이 통했는지 앞자리에 앉아있던 성도 하나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자 뒤쪽에서도 동시에 두 사람이 일어났다.

 

“좋습니다. 복도로 나가세요.”

교무 세 명이 순순히 복도로 걸어 나갔다. 윤명오는 즉시 이영국에게 전화를 걸어 도량 안으로 차량을 올려 보내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버스 두 대와 구형 소나타가 도량 안으로 들어왔다. 요원들은 신속하게 연행자들을 태우고 특공대의 호위를 받으며 무영산을 빠져나왔다.

 

이튿날 오전부터 수사본부 요원들은 연행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새벽 늦게 서울에 도착하는 바람에 무척 피곤했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지체할 수가 없었다. 윤명오를 제외한 전원이 조사에 투입되었다. 김성호가 이인철 교수를 담당하고, 나머지 요원들은 각각 교무를 맡았다.

 

“원용철은 어디 있습니까?”

“…….”

김성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만 이인철은 묵묵부답이었다.

“원용철이 어디 있냐고 묻잖아요?”

 

“나는 원용철이 누군지 몰라!”

김성호의 언성이 높아지자 이인철 역시 호통으로 맞받아쳤다.

“원용철이 누군지 모른다구요?”

“…….”

 

“이거 왜 이러세요? 한형우 씨에게 다 들었습니다.”

“나는 한형우도 누군지 몰라.”

“아니 아들을 모른단 말씀이세요?”

“난 그런 아들 없어!”

 

무대포로 일관하는 이인철의 태도에 김성호는 기가 꺽 찼다.

“원용철이 연쇄살인을 저지른 건 알고 계시죠?”

“…….”

“교수님이 무조건 모른다고 잡아떼시면 원용철과 관련 있는 걸로 간주되어서 아주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인철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성호는 계속적으로 묵비권을 행사하는 그를 도저히 조사할 수가 없어 유치장에 다시 입감시켰다. 다른 요원들은 이미 조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조사 결과 어떻게 됐어?”

윤명오가 요원들을 응시하며 물었다. 그러자 이영국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제가 조사한 교무는 검거 당시 뒤에 있던 사람인데요, 원용철에 대해선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실제로 모르는 것 같았구요.”

서인혁 역시 다른 한명을 조사했는데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제가 조사한 사람은 이름이 천명석이구요. 맨 먼저 일어난 교무 있잖아요? 그 사람은 뭘 좀 아는 듯한 눈치던데 묵비권을 행사하더군요.”

박만규가 말했다. 좌중의 시선이 이번에는 김성호에게 몰려갔다.

 

2008.01.11 10:40 ⓒ 2008 OhmyNews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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