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불의 심판 - 78회

불의 심판 - 7

등록 2008.01.13 12:37수정 2008.01.1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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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교의 교권은 의외로 상당했다. 성도 수로 보아도 전국적으로 2만여 명이나 되는 중견급 종단이었고 재정 역시 탄탄했다. 10년 전 지저스 교회로부터 분가할 때 취득한 재산뿐만 아니라 공동체 성도 400여명이 울력으로 올리는 소득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막강한 교권이 교수의 유고시 자신에게 주어진다고 생각하니 천명석의 가슴은 터질듯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자신이 공범으로 내몰린다면 교권은 한낱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더욱이 자신이 희생됨으로써 다른 교무들 좋은 일만 시켜준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허탈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천명석은 오전 내내 머리를 싸매고 있다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죄를 나누어 쓸 수도 없지만 교권을 장악할 절호의 기회는 더더욱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명석이 점심때 나온 관식을 깨끗하게 비우자 경찰관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천명석은 수사관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성도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점심때까지 울력을 하고 오후엔 교수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또한 저녁엔 기도를 하며 주님의 심판에 대비했습니다.”

 

날이 시퍼렇게 서있던 어제와 달리 천명석의 얼굴엔 다소 비굴한 기색까지 비쳤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도록 아무런 기척이 없자 동요하기 시작한 건 바로 교수님이었습니다. 성령의 발현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을 때만해도 심판은 그리 머지않아 보였기 때문이었죠.”

 

초조해진 교수는 다시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기도에 들어갔다. 물과 생쌀 한줌으로 하루하루를 넘기는 힘겨운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성령의 발현만을 고대하며 교수는 신심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주여, 언제 심판하시렵니까? 주여, 언제 심판하시렵니까?”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성령이 감동했고 드디어 교수의 귀가 열렸다.

 

― 일곱 천사들이 사탄들의 기에 질렸느니라.

― 오, 주여. 무슨 말씀이온지?

― 사탄의 기에 질려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지 못하느니라.

― 주여, 어떻게 하오리까?

 

그러나 말씀이 없었다. 교수는 성령이 떠난 건 아닌지 두려워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애타게 주님을 찾았다.

 

“주님, 주님. 과연 어떤 존재가 사탄이니까? 과연 어떤 존재가 사탄이오니까?”

― 더불어 살지 않는 이들이 사탄이니라.

― 더불어 살지 않는 모든 이들이 사탄이오니까?

― 사탄을 사탄 되게 하는 이들이 사탄이니라.

 

― 무슨 말씀이온지?

― 어린양들의 사탄성을 끄집어내어 사탄 되게 하는 이들이 사탄이니라.

― 그들은 누구이오니까?

― 뭇 사람을 현혹시키는 이들이니라.

― 주여, 자세하게 알려 주시오소서!

 

또다시 말씀이 없었다. 교수는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절규했다.

 

“주님. 주님. 어떻게 하오리까? 주님, 어떻게 하오리까?”

 

하지만 더 이상 성령은 발현되지 않았다. 교수는 하염없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그날 밤을 뜬눈으로 하얗게 새웠다.

 

그리고 몇 해가 흘렀다. 교수는 주님의 뜻대로 사탄들이 소멸되기를 성도들과 함께 기도해왔다. 그래야만 심판이 내려지고 ‘다시창세’도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심판의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비웃기라도 하듯 세상엔 사탄들이 더더욱 활개치고 다녔다. 

 

“그때부터 교수님은 변해갔습니다.”

“변해가다뇨?”

 

박만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애써 담담하게 반문했다. 드디어 천명석이 진술의 핵심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교수님은 주님의 계시대로 ‘다시창세’를 위해 열심히 신앙하셨습니다. 그런데 현실이 교리를 따라주지 않자 교수님은 직접 사탄을 응징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사탄의 기에 질려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지 못한다고 하니 교수님이 직접 심판에 나서기 시작한 거죠. 사탄을 소멸시켜 나팔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면 ‘다시창세’가 도래하는 거니까요.”

 

“원용철에게 살인 교사를 한 거로군요?”

“원용철이 누군지는 모르고, 다만 킬러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여하튼 교수님이 설교시간에 예언을 하죠. 언론에 오르내리는 비리인사들이 곧 사탄인데 조만간 주님의 징벌을 받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정말 교수님의 예언처럼 신문이며 방송에 그의 죽음이 대서특필되었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드디어 하나님이 사탄들을 심판하기 시작했구나. 이제 불의 심판은 머지않았구나.’ 하면서 더욱더 신앙에 매진하는 거죠.”

 

“킬러를 직접 본 적이 있습니까?”

“아뇨.”

“그럼 어떻게 청부살인에 대한 일들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나요?”

“어느 날 교수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주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주님의 말씀과 교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역설하시더군요.” 

 

“천 교무님께서는 그 말을 곧이들었습니까?”

“예.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독실한 창세교 성도니까요.”

“그런데도 킬러와 대면시켜 주진 않구요?”

“킬러에게는 교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범인을 알면서도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그땐 왜 그랬을까 하고 지금은 무척 후회가 됩니다.”

 

천명석이 선처를 바란다는 듯 애처로운 눈빛을 지어보였다.

 

“정상참작이 될 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김성호가 안심시키자 천명석이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 역시 교수님의 생각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진정 그런 사탄은 주님의 뜻으로 죽임을 당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교수님의 지시 따위는 크게 개의치 않았으니까요.”

“킬러는 어디 있습니까?”

 

“킬러는 최미라 저격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래요?”

 

김성호와 박만규는 부랴부랴 조사실을 나섰다. 그리고는 구형소나타를 몰고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갔다.

2008.01.13 12:37 ⓒ 2008 OhmyNews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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