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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기엔 2% 부족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08.01.22 14:20최종업데이트08.01.2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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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싱글즈>에서 ‘싱글’인 여자들에 집중한 바 있는 권칠인 감독은 이번에도 뜨거운 삶에 올인하는 ‘싱글’ 여자들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40대 싱글맘인 영미(이미숙)와 그녀의 딸 강애(안소희), 마지막으로 영미의 조카인 20대 싱글인 아미(김민희). 이 세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가족이라는 틀을 가져왔다는 것 정도.

 

그러나 세 여자의 이야기보다는 두 여자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 뜬금없이 들어간 듯한 딸 강애(안소희)의 이야기는 타이틀 <뜨거운 것이 좋아>에 억지로라도 맞출 수 없다. 가족이라는 틀을 들키지 않고 사용하려는 의도에서 가져온 에피소드라는 혐의도 벗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딸 강애(안소희)의 이야기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강애가 절친한 여자친구 미란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잘 포착해내 표현해준 것 때문이다. 또한 남녀사이에 흔히 사용되던 문법을 동성커플에 병치시켜 놓음으로써 웃음을 자아냈다는 것 때문이다.

 

헤어짐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여자’인 미란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자신의 여자친구(안소희)를 스쿠터로 공항에 데려다주는 등 흡사 자신의 여자를 위해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이별인사를 하도록 도와주는 남자의 눈물겨운 ‘사랑’의 장면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이 가족의 틀을 가져오면서까지 정말 말하고 싶어하던 ‘뜨겁게’ 살기를 좋아하던 두 여자의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극 중 가장 뜨겁게 삶을 달군 아미(김민희)의 에피소드부터 살펴볼까? 시나리오 작가하면 으레 떠오르는 상황, 바로 지지리 궁상 3박자가 아미의 삶을 제대로 보여주는 단어다. 아직 입봉도 못하고 그래서 돈이 없고 이모한테 얹혀사는 ‘싱글’인 아미.

 

그녀의 남자친구 원석(김흥수) 역시 똑같이 돈을 바닥에 뿌려볼 여유조차 없는 가난한 가수지망생이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이토록 기가 막힌 상황은 하필 그녀의 결혼적령기 나이에 세워져 있다.

 

이때 선본 남자 승원(김성수)의 등장은 현실에 편승해보고자 한 번쯤 발악하는 아미의 몸부림을 잘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비전이 없는 남자친구 원석(김흥수)이 바람피는 장면을 목도한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그것을 핑계 삼아 현실의 왕자님 그 자체를 보여주는 승원(김성수)을 선택하는 과정은 설득력 있다.


사랑하는 여자가 부잣집 도련님을 만나고자 하는 욕망을 묵살하지 않고 그대로 보내주는 기존 로맨틱 영화를 답습하고자 폼 잡는 원석(김흥수)에게 좀 실망했지만 이내 사랑하는 여자를 놓지 않으려는 찌질이 남자의 본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안심했다. 

 

한 번쯤 발악한 아미(김민희)는 비자를 받기 위해 직업란에 시나리오 작가가 아닌 학원 강사를 기재하고 한 푼도 없는 통장에 승원의 돈 3000만원을 입금시키는 처절한 상황에 그 짧은 ‘발악’마저 무너져버린다.

 

원석(김흥수)에게 돌아갈 마음도 없으면서 당장 승원(김성수)를 선택해 외국으로 갈 수는 없는 그녀는 승원이라는 황금마차를 한순간에 떠나보낸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미우나 고우나>의 커리어우먼 나단풍(한지혜)보다 상황이 더 안 좋고, 선택할 여지가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나단풍(한지혜)보다 더 화끈하게 돈을 차버린다. 아미(김민희)로서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신’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영미(이미숙)의 뜨거운 사랑은 어떤가? 다가온 ‘사랑’을 사랑으로 느낄 새도 없이 급작스러운 폐경으로 인해 자신의 욕구조차 스러질까 몸부터 연하남에게 날려버린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이자벨 위페르의 병적일 정도로 일방적인 ‘사랑 아닌 집착’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보다 덜 비극적이고 덜 현실적이다. 그것은 너무 무겁지 않게 세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일 듯. 그러다보니 더 로맨틱하기 하지만 연하남과 영미(이미숙)의 연애전선은 앞서 아미와 강애의 그것에 비해 가장 고리가 어설프다.


그러나 폐경기를 걱정할 만큼 나이 많은 여성으로서 연하남을 거느리는 상황 자체에서 오는 오해. 그로 인한 관계의 삐걱거림. 그것을 살짝 스쳐가듯 보여준 것은 탄복할 만하다. 그러나 역시 연하남의 사랑이 살짝 어설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영미(이미숙)를 말만큼 ‘행동’으로 사랑하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 이는 연하남의 역할에 세세히 신경 쓰지 못하는 데서 오는 한계일 듯싶다.

 

결국 감독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미의 연하남도 아미의 남자 승원도 결국 여자들의 '뜨거운' 인생을 보여주기 위한 여자들을 위해 최소의 역할만을 부여받한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는 아쉬울 정도로 뜨거운 그녀들의 ‘뜨거운’ 삶을 집중 조명하고자 맘이 너무 앞섰던 감독의 탓.

2008.01.22 14:20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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