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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에게 기회를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하다"

[현장] 남해 스포츠파크에서 구슬땀 흘리는 프로축구 수원 삼성

08.01.23 12:37최종업데이트08.01.2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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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에 대한 갈망 수원 삼성의 전지훈련지인 남해 스포츠파크 주경기장에는 올 시즌 우승에 대한 갈망이 표현된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 이성필


경기장 바로 옆에 있는 바다에서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영하에 가까운 기온에 옷을 두껍게 입었지만 사이사이 파고드는 바람이 절로 몸을 떨리게 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팀과 연습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을 보고 있자니 미안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들의 플레이에 집중하게 된다.

지난 21일 오후 경상남도 남해군 서면 서상리에 위치한 남해스포츠파크 주경기장. 지난해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고도 플레이오프에서 포항 스틸러스에 불의의 일격을 당해 시즌을 마감했던 수원 삼성이 수원대학교와 연습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리모델링 1] 등번호

선수들의 플레이 사이로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단발이 트레이드 마크인 '수원 삼성의 가투소' 조원희의 머리 길이가 길어졌다. 게다가 왼쪽 측면 수비수로 나서 연습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그의 원래 포지션은 오른쪽 측면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이기에 더욱 어색했다. 혹시 차범근 감독이 실험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했다.

알고 보니 그는 미완의 대기로 불리는 박주성이었다. 조원희의 등번호 '23' 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해 혼란을 준 것이었다. 조원희는 '6' 번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3' 번이었던 박주성이 번호 상으로는 밀려난 모양새가 됐다.

이를 두고 옆에서 지켜보던 수원의 오근영 사무국장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고 있어 그렇다"며 웃어넘겼다. 시즌을 준비하는 시기에는 으레 선수들의 팀 간 이동이 잦아 등번호도 자연스레 교체되게 마련이지만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더욱 심해 보였다.

등번호는 대략 그 팀의 주전과 비주전을 암시한다. 때문에 주전급 선수들 중 특정 번호를 선호하지 않는 이상, 한 자릿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벌이는 쟁탈전은 치열하다.

안정환과 트레이드 돼 부산 아이파크에서 수원으로 온 안영학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안영학은 선수 생활부터 줄곧 '17' 번을 달았다. 그런데 수원에서의 17번은 이미 드래프트 1순위로 들어온 올림픽대표 출신의 박현범이 꿰차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차범근 감독이 코칭스태프와 상의해 그에게 17번을 부여하기로 했다. 박현범은 일본 J리그 빗셀 고베로 이적한 김남일의 '5번'을 물려받게 됐다.   

▲ 연습도 실전처럼 남해스포츠파크 주경기장에서 세찬 바람에 맞서 수원대학교 축구부와 경기하는 수원 선수들. 주전경쟁을 위한 노력은 너무나 치열하다. ⓒ 이성필


[리모델링 2] 우승을 위해 좀 더 강하게

지난 14일부터 오는 26일까지 남해스포츠파크에서 열리는 수원의 이번 훈련에는 재계약 문제로 참여하지 못한 선수들을 제외하고 서른두 명이 내려왔다. 잔 부상이 있는 선수를 제외하고 스물여덟 명이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선수들은 새벽(러닝), 오전(체력), 오후(연습경기)로 나눠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다. 특히 오전의 체력 훈련은 단내가 날 정도다. 오후 연습경기는 전반에는 주전급 선수들이, 후반에는 신인들이 나서 경기를 치르는 데 실전과 같은 분위기다.  

기자가 훈련장을 찾은 이틀째 날인 22일의 경우 오전에 비가 부슬부슬 내려 실내 훈련을 해야 했다.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려 했지만 다른 팀에서 먼저 섭외해 이들은 밖으로 나가야 했다.

오전훈련은 스포츠파크 근처에 위치한 마을의 진입로였다. 러닝을 하는데 점점 거리를 벌려가며 뛰게 된다. 경사도가 있는 언덕길에서의 연습이라 심폐 능력의 향상과 하체를 단련하기에는 그만인 훈련이다. 근처 도로에 세워 둔 구단 버스 덕택(?)에 지나가던 차량에서 알아보고 잠시 멈춰 이들의 훈련을 지켜보기도 했다.

이들의 훈련 강도를 증명이라도 하듯 같은 장소에서 훈련 중인 내셔널리그 고양 국민은행의 한 선수는 "우리도 나름대로 강하게 훈련하는데 유니폼이 늘 만신창이가 돼서 돌아오는 수원 선수들을 보니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물론 일본 구마모토로 이어지는 해외전지훈련에 비하면 '가벼운 수준'이다. 그래도 훈련에 집착하는 이유는 차 감독이 부임한 2004년 우승 이후 3년 동안 무관으로 그친 아쉬움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시안컵 '음주파문'으로 눈물의 사죄를 했던 이운재는 "지금 힘들어야 나중에 편할 것"이라며 훈련의 의미를 설명했다. 올해 새로 주장으로 선임된 송종국도 "전지훈련에서 몸을 잘 만들어 개인적인 소망인 K리그 우승을 하고 싶다"고 표현했다.

▲ 언덕길 러닝 빗속에서 수원 선수들은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는 바닷가가 펼쳐져 있다. 이들의 훈련을 지켜보는 소 한 마리가 이채롭다. 오근영 수원 삼성 사무국장은 "우승을 기원하는 소"라고 코믹하게 의미를 부여했다. 사진 가장 왼쪽이 차범근 감독, 가장 오른쪽이 이운재 골키퍼 ⓒ 이성필


[리모델링 3]차범근 감독의 구상

지난해 수원은 안정환을 영입해 많은 축구팬의 주목을 받았다. 차 감독은 시즌 초 안정환을 배려했다. 원정보다 홈에서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안정환은 차 감독의 바람과는 다르게 한 번의 해트트릭만을 기록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최전방 안정환의 존재는 되려 공격이 느려지는 역효과로 나타났다는 것이 축구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차 감독은 "안정환에게 기회를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하다. 어린 (하)태균이나 (서)동현, (신)영록이도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차 감독 전술의 핵이었던 김남일은 시즌 중반 최종수비수로의 변신을 시도해 포지션 상 뒤로 후퇴했다. 김남일의 후진은 겉으로는 선수들의 활용 폭을 넓히는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차 감독이 추구하는 경기를 하지 못하는 원인이 됐다.

차 감독은 "남일이가 수술(스포츠 헤르니아)을 한 뒤 자신감을 잃고 부담이 생겨 뒤로만 가려고 했던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의 카리스마만으로도 경기 지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 명의 큰 산이 빠져나가면서 차 감독에게는 여유가 생겼다. 이들에 맞춰야 했던 전술을 좀 더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차 감독은 지난해보다 빠른 축구를 예고했다. 유럽 축구를 보면서 좀더 빠른 축구가 필요하다는 게 차 감독의 생각이다. 분데스리가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리버풀의 플레이처럼 수원을 만드는 게 차 감독의 올 시즌 구상이다.

빠른 축구의 핵으로는 2003년 한국땅을 밟아 수원의 보배가 된 외국인 공격수 나드손과 어린 나이에 프로에 입문했던 신영록을 꼽았다. 여기에 패스 능력이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 안영학과 신인 박현범의 존재는 차 감독의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선수들의 결속 능력 향상도 팀 변화의 하나다. 특별한 구심점이 없어도 서로 뭉치면 더 좋아질 것이라는 게 차 감독의 생각이다. 연령대별 주장을 선임한 것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 조직력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늘 정상에 서기를 원하는 수원의 변화가 따뜻한 남해에서 시작되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차 감독이 만들어가는 변화가 시즌 개막 후 어떻게 펼쳐질지, 숨겨진 보석이 발굴될지 등 남해의 리모델링이 주목되는 이유다.

수원 삼성 남해스포츠파크 전지훈련 K리그 차범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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