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정책만 기다리는 고3 마음 아시나요

변덕스러운 입시정책 사이에서 점점 지쳐가는 고3

등록 2008.01.25 12:47수정 2008.01.2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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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전쟁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고3'이다. 11월에 시험만 치르면 지금까지 시험을 보고 선생님 눈치를 보며 학교를 다닌 지난 시간이 모두 끝이라는 생각에 학생들은 마음을 다잡는다. 자신의 성적에 따라 주어지게 될 대학 이름을 더 좋은 것으로 바꾸려고 무리해서 공부하기도 한다. 쉬는 시간과 자는 시간도 줄어든다.
 
학생들은 '고3'이라는 이름을 통해 긴장하고 눈물 흘리고 노력한다. '고3'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어른들은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안쓰러워하고 안타까워한다. 고3 학생의 부모라면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자녀의 모습이 안쓰러워 쉬엄쉬엄하라고 하고 싶으면서도 혹시나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할까 싶어 마음을 졸인다. 
  
정작 고3인 학생들은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여길까? 2008년 11월에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게 될 예비 고3, 최소영(17·가명)양을 장안구 조원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만나보았다.
 

"바뀐 입시정책이요? 아무 생각 없어요"

 

 

최소영양은 선생님들께서 긴장하고 공부하라는 의미로 여러 가지 말씀을 해주실 때 아주 잠시 불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마음잡고 공부해야겠다"라고 다짐해도 친구들과 어울리면 곧 잊어버린다고 했다. 아직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듯 했다. 고3이 되면서 최양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 보았다,
  

a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수능시험을 치르게 될 최소영(17, 가명) 양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수능시험을 치르게 될 최소영(17, 가명) 양 ⓒ 최상아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수능시험을 치르게 될 최소영(17, 가명) 양 ⓒ 최상아

- 고3이 되면서 수업과 분위기 면에서 달라졌다고 느끼는 게 있다면?
"1, 2학년 때는 보충수업만 문제집으로 공부했는데, 이제는 정규 수업에도 교과서 대신 문제집으로 공부해요. 문제를 더 많이 풀게 되죠. 수업 내용도 문제유형 분석이나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요령을 가르쳐주는 쪽으로 많이 기울었고요. 교실은 예전보다는 차분해요. 전보다 공부하는 애들도 늘고 있어요. 독서실에 가면 제가 고3이 되었다는 게 더 실감나고 신기하게 느껴져요. 어릴 때 고3언니들의 독서실 책상에 놓인 문제집을 보고 신기해했는데, 어느 새 그 고3이 제가 되어 있으니까요."
  
- 작년에 이어 입시정책이 변화무쌍한데 그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아무 생각도 없어요. 또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 아무도 모르니까. 다들 기다리자는 쪽이에요. 선생님들도 '지금은 일단 공부하면서 기다려라'라고 말씀하세요. 지금은 그냥 자기 소신대로 공부하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 저도 인터넷으로 입시정책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제 마음만 혼란스러울 뿐이에요." 
 
마지막으로 지금 고민거리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모의고사"라고 답한다. 1, 2학년 때는 잘 보면 단순히 기분 좋기만 한 정도였던 모의고사 점수가 이제는 나의 대학을 결정할 현실적 문제로 다가온다는 것. 그래서 모의고사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고.
  

"공부한 게 하루 만에... 참 허무했어요"

 

이어서 지난해 11월에 시험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황다영(18·가명)양을 수원역 앞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수능등급제로 입시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던 2007년. 고3이 되어 시험을 치르며 많은 마음고생을 하였을 황양은 자신의 고3 생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처음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들었던 말은 '3월 모의고사 점수가 그대로 수능시험 성적으로 이어진다'라는 말이었어요. 그 때는 긴장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모의고사 점수가 잘 나오다가 정작 수능시험 점수가 그렇지 못한 편이었어요. '수시는 정시의 대비다', '수시는 꼭 써야 한다'라는 말도 지금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라고 봐요. 주변에서 수시전형을 꼭 써야할 것처럼 얘기해서 쓰게 되는데…. 수시전형 지원은 반드시 합격이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수능을 보고 나서는 허무했어요. 1년 동안 공부한 게 하루 만에…. 수능시험을 보고 나서 집에 가는데 라디오 뉴스에서 이번 언어 영역이 쉬웠다고 하는 거예요. 저랑 제 친구들은 언어 영역을 무지 어려워했는데 말이에요. 그 때 다들 울음을 참았어요. 한동안은 뉴스보기가 싫더라고요. 다음날부터 아이들은 시험 난이도와 각 학교 '배치 컷(최하합격점수)' 이야기만 했어요. 집에서도 제게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며 위로했지만 성적표가 나온 후에는 그렇지 않았죠.”
 
지난 1년 동안의 기억을 떠올리며 황다영양은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수능시험에 대한 말들이 그들에게 밀려든다. 말 한마디에 긴장하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러나 황다영양은 1년이 지나간 지금 그 때 들었던 말들을 떠올려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게 하려고 온갖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다. 그 말에 혼란스러워 할 아이들은 생각지도 않은 채. 
  
수능시험이 끝나면,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허전한데 여기저기서 이번 수능시험이 이렇다 저렇다 떠들어대니 마음이 불편하다. 심지어 몇 년 전에 어떤 수험생이 수능시험을 마치고 난 후, 언론에서 학원 선생들의 말을 인용해 '시험이 쉬웠다'라고 전한 것을 보고 망연자실해 자살한 적도 있었다.
 
올해의 입시정책은 더 혼란스러웠다. 새로 실시한 수능등급제는 결국 '실패'라는 여론이 대세다. 아이들은 1년 내내 어찌할 줄을 몰랐다. 수능등급제의 직접적 '피해자'라고 할 만한 학생인 황다영양은 수능 등급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이들 대부분 운으로 등급이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아주 작은 점수 차로 인해 등급이 떨어지면 화를 냈죠. 게다가 내년부터는 2년 전처럼 원래 점수까지 전부 표기하겠다고 발표하니 더 화가 나죠. '재수'하겠다, '반수(대학에 다니면서 수능시험을 볼 준비를 하는 것)' 하겠다고 결심한 아이들이 많아요."
 
아이들은 목표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고, 어른들은 그들을 효율적으로 추려내기 위해 수학능력시험을 만들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교육정책도 내놓았다. 그러나 그 정책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어른들이 두어 달 논의하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 자꾸 바꾸니 죽어나는 것은 아이들이다.   

 

a  지난해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 선택으로 고심하고 있는 황다영(19, 가명) 양

지난해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 선택으로 고심하고 있는 황다영(19, 가명) 양 ⓒ 최상아

지난해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 선택으로 고심하고 있는 황다영(19, 가명) 양 ⓒ 최상아

이어서 황다영양에게 지금까지 변덕이 심한 입시정책을 살피고 수능시험을 준비한 고3으로 지내며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무분별하게 수시 지원을 했어요. 이 때 제가 너무 방심했었나 봐요. 그리고 제가 영어의 기초인 단어와 문법이 부족한데도 무조건 문제만 푼 것도 후회돼요. 옆 친구가 어떤 문제집을 풀고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이 휩쓸렸어요. 옆 친구가 특정 출판사의 문제집을 많이 풀면 왠지 저도 그래야 할 것 같았죠. 그것도 후회가 돼요."
 
황다영양의 대답은 의외였다. 친구들과의 관계보다도 대학입시에서 후회되는 점을 먼저 답했다. 여느 고3 학생들이 그렇듯 자신의 미래를 위한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달리다 보니 주변 친구들에 대한 고민은 마음 한 구석에 접어둔 것이다.
 
"합격해도 등록금이 걱정이에요"

 

기자는 앞서 인터뷰한 최소영양처럼 새로운 교육정책에 혼란스러워하며 공부할 올해 19살이 되는 학생들을 떠올렸다. 교육정책은 미래에 우리나라를 이끌 사람들이 '현명'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높은 질의 정책을 세워야 하고, 학생들 개개인의 특성을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인수위에서는 한 달 만에 교육정책을 뒤집고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아예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렸다.
  
황다영양은 올해의 교육정책에 문제가 많았음을 알면서도 저항할 의지가 남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수학능력시험이 끝났지만 아직 고3으로 남아있다. 지금 갖고 있는 혼란이나 애로사항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적성이나 꿈이 아닌,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제가 지원해서 합격 발표가 난 대학들 중에 제가 어딜 선택해야할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등록금 문제도 고민이에요. 제 또래의 아이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쓰시는 분들이 드물어요. 그래서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요. 사실 가고 싶었던 학교는 사립학교인데, 등록금 때문에 애초에 지원하지 못했어요. 공립대학이나 지방대학을 썼죠. 지금 제 선택이 미래에 저에게 불리할까 걱정이 돼요."
  
1년 전만 해도 친구 관계나 외모, 단순한 학교 성적으로 고민했던 아이들은 열아홉이 되는 순간 학업과 입시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을 떠안는다. 고3으로서 해야 할 일은 '공부'라고 스스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 아이들은 여느 학원 선생 못지않은 입시정보 박사가 된다. 대학 합격 발표를 기다리면서 아이들은 혼란스러웠던 입시와 교육정책에 대해 지금껏 느껴왔던 불만들이 부질없다고 느끼고 저항을 포기한다.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내야 할 목소리를 포기하고 변덕스러운 현실을 따르는 아이들…. 과연 어떤 교육정책이 현명한 인재를 길러내는 길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수원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1.25 12:4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수원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3 #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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