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집과 높은집 높이높이 솟구치듯 올려세운 집은, 잘사는 집이고, 땅바닥에 착 붙은 낮은집은 가난한 집이라는 틀거리는 누가 세우고 있을까요. 한편, 가난하게 살면 무엇이 나쁘고, 부자로 살면 무엇이 좋을까요.
최종규
무엇이든 버려지고 무엇이든 새로 들여놓게 된 15층짜리 아파트는, 5층짜리 연탄불 아파트보다 거의 네 곱 넓습니다.
방이며 집은 적은 돈으로도 훨씬 따뜻하고, 형하고 나는 자기 방을 얻습니다. 그러나 동네에서 함께 어울릴 동무가 없습니다. 학교 오가는 길에 마주치는 동네 어르신들도 없고, 우리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 듯한 동네 구멍가게와 빵집과 문방구와 책방과 푸주간과 수위실, 그리고 한 주에 두 차례씩 오던 책차(짐차에 책 싣고 다니며 빌려주던)하고도 모두 마지막입니다.
집은 넓고 깨끗하고 따뜻합니다. 그러나 시설 좋은 시멘트 울타리에 갇혔다는 느낌에 몸이 무겁고 마음은 가라앉습니다. 고등학교 한 해를 겨우 새 집에서 다니며 마무리지은 1994년, 인천 부모님 집에는 거의 발을 들여놓지 않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 둘레에서 지냅니다.
그러고 나서 이듬해인 1995년에 부모님 집하고는 ‘이제 떠나요’ 하고는 박차고 나옵니다.
(2) 가난아버지한테는 ‘없이’ 사는 일이 반갑지 않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 보란 듯이 살고픈 마음이 깊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명절 때면, 돈 잘 버는 작은아버지가 ‘그해에 나온 가장 비싼 차’로 차갈이를 하며 찾아오며 ‘차 없는’ 아버지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제 세배돈을 안 받아도 되는 나이라고 생각해도,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끝끝내 세배돈을 안깁니다. 아버지는 평교사로 일하는 당신 주머니가 가벼울밖에 없는 데에도 동생(작은아버지) 앞에서 자존심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덥석덥석 작지 않은 돈을 내미는데, 작은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가 내놓는 세배돈 × 2, 또는 × 3을 내놓습니다.
.. 그렇지만 아나운서의 말을 많이 알아들으리라 생각했던 내 기대는 완전히 어긋나고 말았다. 그렇게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아웃’, ‘코너’, ‘업사이드’ 등의 말마디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모두 독특한 이태리말로만 방송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골인이 되어 사람들이 환호에 뒤범벅이 되었을 때도 아나운서의 입에서는 영 ‘골인’이란 말이 나올 않았다. 물론 이태리말로는 수없이 되풀이했을 테지만 … 거의 세계 공통어로 되어버린 스포츠 용어이기에, 외국어라고 배타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오히려 옹졸한 마음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단어들을 한 번도 우리 말로 옮겨 보지 못한 우리의 언어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 초라한 언어의 생태가 꼭 지나온 우리 민족의 슬펐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었다면, 옹졸한 열등의식의 표현일까 .. (72쪽)제가 중학생이었던 어느 해, 아버지가 자가용을 처음으로 뽑습니다. 그때까지는 장롱면허증이었는데, “나이 마흔을 넘어 이제 나도 자가용을 몬다!”면서, 첫 차를 뽑은 그날 온 식구를 태워서 달리고 또 달리셨습니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시면서 그냥 앞으로만, 또 앞으로만. “나도 이만하면 베스트 드라이버 아니냐?” 하면서 웃던 아버지.
참 딱하다고, 아버지 나이가 몇 갠데, 이런 철딱서니없는 짓(없는 살림에 자동차를 지르셨으니)을 하셨나 싶어, 아버지를 뺀 세 식구는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내내 싱글벙글. 처음 가 보는 낯선 곳 밥집에 들어가서 바깥밥도 사 주고 아주 좋아합니다.
기름값이 아까워 자주 타지도 못하는 차이건만, 먼지 않을세라 늘 덮개를 씌워 놓고 벗기고 돌아봅니다. 날마다 형과 나와 어머니는 차 닦는 심부름을 도맡습니다.
.. 내게 무슨 정서적인 마음이 깃들어서가 아니다. 그냥 푸른 나무와 맑은 공기, 그리고 옛날 로마인들의 문화를 읽을 수 있는 그 폐허가 좋을 뿐이다 … 복잡한 시가지만 벗어나면 신호등도 없고 배기가스도 없는 한적한 길에 이른다. 평평한 아스팔트 위에 이따금 옛 로마의 길이었다는 돌길에 바퀴가 닿으면서 오토바이는 털털거린다 .. (97∼98쪽)열세 평짜리 작은 집에 살 때에는, 중풍 든 할아버지까지 다섯 식구가 지내는 집이 좁기는 해도 좁다고 느낀 적은 따로 없습니다. 집에 붙어 있는 때보다 밖에 나가 뛰논 때가 더 많아서 그럴지 모릅니다만, 큰방에 아버지 어머니 계시고, 작은방에 할아버지와 형과 내가 지내는 일이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설이나 한가위 때면, 작은집에서 네 식구가 찾아오고 고모댁도 두어 집 찾아오면, 그야말로 발디딜 틈이 없이 빼곡했는데, 이렇게 빼곡할 때면 빼곡한 대로 같이 놀고 같이 일하고 같이 어울리고 이야기하며 지냅니다. 그런데 마흔여덟 평 큰 집으로 옮기고 나서는, 이상하게도 설이나 한가위 때 찾아오는 작은집 숫자가 줄고, 고모댁에서도 찾아오는 일이 줄었습니다.
.. 미사는 발음의 정확성으로 이루어지는 기술이 아니고, 마음의 표현으로 이루어지는 제사일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 (110∼111쪽)마흔여덟 평짜리 큰 집에서 지낼 때, 주말에 가끔 동네 놀이터 그네에 앉아서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연수동 끄트머리까지 걸어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걸어서 송도유원지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관교동까지도 걸어 보고, 주안까지도 걸어 보았습니다. 동무들이 없으니, 이웃들이 없으니.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고 걱정거리나 즐거움을 함께할 사람이 없으니.
.. 세상에는 조용히 남을 도우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남을 도울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 할머니처럼 가난한 사람일는지도 모른다 .. (112쪽)‘집만 넓으면 뭐 해?’ 하는 생각, ‘우리 집만 따뜻하면 뭐 해?’ 하는 생각을 지울 길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참 책임이 없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는 하루하루였습니다. 그냥 있는 대로 살지, 있는 만큼 살지, 왜 더 가지려고 하는지, 왜 더 높아지려고 하는지, 왜 더 쟁여놓거나 쌓아놓으려고 하는지 알 길이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동생(작은아버지)들이 자존심 좀 깎으면 어때? 일터(아버지 학교. 인천부터 광명으로 버스 출퇴근을 스무 해쯤 하셨습니다)로 버스를 타고다니면 어때? 우리들 입성이 좀 후줄근하면 어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좀 가난한 동네에 살면 어때? (형이나 내가) 남들보다 성적이 좀 떨어지면 어때? 우리 집이 작으면 어때? 연탄을 때고 살면 어때? 바깥밥 한 번 못 사먹고, 뷔페라는 곳 구경도 못하고 살면 어때?
아버지가 살아온 세월이 있고, 큰아들이라는 무게가 있을 테지요. 아버지 어깨에 지워진 짐이 있고, 아버지가 어리거나 젊은 날 짓눌리며 흐느껴야 했던 아픔이 있을 테지요. 그러면 그때 아버지한테 주어진 그 괴로움과 어려움과 고달픔과 힘겨움 들은 아버지를 못살게 굴거나 들볶으려던 일들이었을까요. 아버지를 더 큰 사람으로 추슬러내거나 다스려내는 깨우침 들은 아니었을까요.
학교 교사라는 자리는, 자기가 가진 앎과 슬기를 혼자만 꿍쳐놓듯 머릿속에 가두어 놓는 사람이 설 수 없습니다. 자기가 가진 한 조각 앎과 슬기라 해도 스스럼없이 내놓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서는 자리입니다. 하나가 있으니 하나를 나누고, 하나가 없으니 고개숙여 배우는 자리, 그런 자리가 학교 교사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모르지요. 아버지는 학교 울타리 안에서는 훌륭한 분이었는지도. 다만 학교 바깥과 집안에서는 껍데기와 겉치레에 너무 매인 채, 또 바깥 눈길에 너무 마음을 쓰느라 속살과 속치레에는 안타까이 손을 놓아 버린 분이었다고 느낍니다.

▲밝은 불이란 골목길 등불은 밝습니다. 사람들이 걸어다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둘레 길 등불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자동차로 싱싱 지나치면 되기 때문입니다.
최종규
(3) <가난한 마음>이라는 작은 책<가난한 마음>이라고 하는 책을 읽고 나서, 동네 성당 신부님한테 요즈음 퍽 훌륭하다고 느껴진 책을 하나 읽었는데, 이 책을 쓰신 김영교라고 하는 신부님을 아느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인터넷 찾아보기를 해 보면, 요즈음은 어느 신학대학교에서 교수 노릇을 하고 계신 듯한데, 이 책을 쓴 분이 맞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인천 답동성당 앞에 있는 가톨릭 책방에 가서 수녀님한테 여쭈어 봅니다. <가난한 마음>은 남아 있는 책이 없어서 다시 살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이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기는 했습니다만, 글쎄요, 또다시 이 책을 만나서 기쁘게 가슴으로 안아들고서 동네 성당 신부님한테 선물로 드릴 수 있을는지는.
.. 그리스도 역시 가난 자체를 축복하지는 않았다. 그는 가난을 견디는 마음과 그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축복한다 … 그(그리스도)의 땅은 가난했고 주위에는 유난히도 나약하고 병든 사람이 많이 들끓었다. 그는 늘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의 친구로 자처했다 .. (178∼179쪽)옆지기와 책 이야기를 가끔 해 보면서 느끼고, 가톨릭 책방에 가 보면서도 느끼는데, 우리 나라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고이고이 당신 믿음을 지켜 오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적어내려간 책이 거의 없습니다. 지난날에도 그러했지만 요즈음은 더더욱 없습니다.
좋은 믿음이고 반가운 믿음이고 훌륭한 믿음이라 한다면, 마음속으로만 모시고 지키고 가꾸는 일도 나쁘지 않지만, 콩알 하나만한 그 작은 믿음이라 해도 이렇게 자그마한 책으로 묶어서 이웃들과 나누어도 괜찮을 텐데.
신부님들이 세상사람들과 부대끼며 헤아린 이야기나 수녀님들이 마을사람들과 믿음을 나누면서 돌아본 이야기를 생활글 하나로 짤막하게 써 내려가고 그러모아서 자그마한 책을 묶을 수 있다면.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아닌 동네 아주머니와 아저씨들도, 당신들이 한삶을 부대끼고 겪어내고 부딪히면서 배우고 느끼고 생각한 이야기를 짤막짤막 끄적이면서 자그마한 책을 묶을 수 있다면.
살아온 이야기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살아갈 이야기를 조촐하게 나눌 수 있다면.
.. 하느님께 십일조를 바치는 게 원칙이라고 외치면서도 교회 자신은 가난한 이를 위한 구호비로 십일조를 떼어놓지 않는 모순 속에 빠져 있다 … 여유가 있을 때 남을 돕는다는 것은 우선 거짓말이다. 풍부할 때 남을 도우려는 사람은 영영 남을 도울 수 없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가난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사랑의 정신이란 먹고 나머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빵을 함께 떼는 것을 뜻한다 .. (183∼184쪽)<조선왕조실록>에도 역사가 담기고 문화가 담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마음> 같은 여느 사람들 살아간 이야기 한 자락에도 역사가 담기고 문화가 담깁니다. 여느 사람들 역사와 문화에는 자연스러운 믿음이 스며 있고 풋풋한 뜻과 살가운 사랑이 배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 + 헌책방 +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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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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