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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 '과정'을 일러주는 영화

[리뷰] 영화 <주노>

08.02.11 17:22최종업데이트08.02.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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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영화 <주노(감독 제이슨 라이트먼)>는 어른이 된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게 하는 영화다. 나이를 먹고, 결혼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소리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첫경험에서 뜻밖의 임신을 하게 된 주노는 이 문제를 해결할 손쉬운 방법으로 낙태를 생각한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입양시키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주노의 아기를 입양할 마크(제이슨 레이트먼)와 바네사(제니퍼 가너) 부부는 나날이 자라는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보며 아기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린다.

 

한편 주노는 마크가 자기처럼 공포영화와 하드코어 록 음악을 즐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그와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비해 마크와 바네사 사이에는 뜻밖의 갈등이 자라기 시작한다.

 

'주노'가 '한국 관객들'에게 주는 일차적 재미는 현재 미국 청소년들의 생활, 그리고 미국 시민들 생활을 부담 없이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유교사상만큼이나 청교도주의가 흠뻑 스며든 미국사회지만 청소년들에게 성과 마약은 낯선 존재가 아니다. 엄격한 종교윤리는 혼전순결을 강요하지만, 미성년자 임신은 새로울 것도 없는 생활 일부고, 선거 때면 들리는 ‘낙태반대’ 주장은 그만큼 낙태가 이뤄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주노와 친구 레아(올리비아 썰비)가 '여자친구'라는 말을 가지고 바네사를 동성애자로 놀리는 것처럼 보수적인 윤리 속에 청소년들을 담아두려는 기성세대들의 바람은 그저 바람에 그친다. 또 마약에 빠져드는 청소년은 극소수겠지만, 마약범죄는 조직폭력배에 의한 범죄, 살인, 강도처럼 흔한 범죄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래서 주노가 그의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을 때, 아버지 맥은 "퇴학이나 마약이길 바랐어"라는 말로 황당함에 빠진 자신의 속내를 부인에게 드러내지 않았을까. 만약 한국에서라면, 마약 대신 '학교폭력'이란 말을 뱉어냈을 것이다.

 

이혼과 재혼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계부와 계모는 흔한 존재다. 그리고 이들은 '백설공주'나 '장화홍련' 속 못된 의붓어미 아비가 아니라 평범한 가족구성원일 뿐이다. 주노의 의붓어머니는 애완견을 기르고 싶지만 의붓딸의 알레르기 증세를 염려해 강아지 사진을 모으고, 수를 뜨는 것으로 그의 욕구를 달랜다.

 

한국에서는 떳떳하게 입양사실을 밝히는 게 최근의 움직임일 정도로 ‘입양’은 아직 친숙하지 못한 단어다. 그에 비해 주노와 친구 레아가 입양 부모를 벼룩시장 광고에서 찾는다는 설정은 사실여부 확인을 떠나 희극적이면서도 입양을 통한 가족구성이 일상화된 미국 사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청소년 영화인만큼 '임신'이라는 '비교육적인' 소재를 코믹하게 다뤘고 해결책은 보수적인 방법을 골랐다. 과거 독일여성들이 '내 배는 내 것'이라며 낙태여부는 개인적인 권리임을 주장하고, 불행하게 태어난 아기에게 주어질 불행한 미래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는 일부 주장에 견주면, 생기발랄한 이 영화는 다분히 보수적이다. 보수적 정부는 조직화된 위선이라고 어느 정치가가 말했지만, 성조기가 그려진 장난감 자동차와 전자기타 대신 통기타를 치는 주노 모습은 미국사회의 윤리관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주노와 마크는 록 음악과 공포영화를 좋아할 뿐 아니라, 전문가와 견줄 만큼 깊은 지식을 갖고 있다. 주노와 마크는 아기뿐 아니라 음악과 영화를 매개로 서로 연결된 것이다. 그에 비해 마크의 부인 바네사는 마크가 좋아하는 것들을 창고로 밀어 넣는가 하면, 마크에게 옷차림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핀잔을 준다. 바네사의 눈에 마크는 나이만 먹었지, 청소년 문화에 헤어나지 못한 애어른이자 이른바 '키덜트'인 셈이다.

 

이 부분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찾는다. 사전적 의미에서 '어른'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거나 결혼을 하면 얻는 지위다. 하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이들에게 외부 요인만으로 '어른'이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게 괜찮은가 하고 영화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미성년자인 주노와 그의 친구 블리커(마이클 세라)는 물론이고 아버지가 될 준비가 안 된 마크 역시 다 자란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주노의 부모는 물론이고, 바네사는 어른이라 할 수 있다. 주노의 부모 맥과 브랜은 미혼모가 된 자기 딸에 대한 부모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고, 바네사는 부모가 될 물질적, 심적 준비가 돼 있다.

 

주노와 블리커, 마크를 한 데 묶는 것은 하위문화이고 맥거프 부부와 바네사가 공유하는 것은 생활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다. 두 무리 사이에는 '아기'라는 단어가 흔들다리처럼 걸려있고, 바네사는 마크에게 그 다리를 건너올 것을, 맥거프 부부는 딸에게 아직 그 다리를 건너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주노의 뱃속에서 아기가 자라는 시간은 아직 정신적 미성년자가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인 셈이다.

 

그리고 두 무리 사이에 놓인 아기라는 흔들다리를 지탱하는 끈이 있는데, '꿈'이라고 불린다. 바네사는 마크에게 다리를 건너고서 꿈이라는 끈을 끊어버릴 것을 요구한다. 아이로 다시 되돌아갈 생각을 말라는 것이다. 아직 다리를 건널 준비가 안 된 주노는 그 끈을 끊을 필요가 없음은 물론이다.

 

이 영화는 투표권 갖는 나이에 이르고, 결혼과 부모가 되는 전통적 가치에 충실할 뿐 아니라, 생활을 위해 어릴 적부터 가졌던 꿈을 추억 저 너머로 보내야 하는 현실적 요구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넌지시 일러주고 있다.

 

10대 청소년의 임신이라는 소재는 2005년에 개봉된 한국영화 <제니, 주노>를 떠올리게 한다. ‘슬라이딩 도어즈’가 한국의 코미디 프로그램 한 귀퉁이를 차지한 ‘인생극장’을 떠올리게 하듯 말이다.

2008.02.11 17:22 ⓒ 2008 OhmyNews
주노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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