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단을 잃어버린 10년이었나?"

정부의 잇따른 강경진압 정책에 시민단체들 반발

등록 2008.03.20 17:03수정 2008.03.2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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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 부활 규탄 기자회견? 참 이상한 기자회견 다 있네"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대표)씨는 20일 오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후 이같은 의문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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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시위현장에서 체포전담반(일명 백골단)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20일 오전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군사독재정권의 상징인 '백골단'을 부활하는 것은 피땀흘려 쌓아온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주장했다. ⓒ 권우성


전기 충격기, 즉결심판제도 적용, 현장 체포전담 부대 운영, 시위 진압 경찰에 면책권….

이명박 대통령이 강력한 법질서 확립을 천명한 뒤 법무부와 경찰 등이 '무관용 사법처리'로 집회·시위 진압 방식을 발표하면서 발을 맞추자 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이 19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국민들이 '한국은 법과 질서보다 떼를 쓰면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며 집회·시위 주최들을 '떼법 무리'로 일반화하자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과 성명 등을 통해 강하게 비난했다. 

"'잃어버린 10년'은 백골단을 잃어버린 10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후원회·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등 5개 단체들은 20일 오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추진중인 현장 체포전담 부대 운영 계획의 중단을 촉구했다. 

'백골단'이라고 불리는 현장 체포전담 부대는 지난 15일 어청수 경찰청장이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제안한 것으로, 경찰권 행사를 위해 9월부터 전경 대신 경찰관으로 구성될 조직이다.


이들은 현장 체포전담 부대에 대해 "군사독재 시절 군중들에게 쇠파이프와 쇠도리깨를 휘두르며 사람들을 개 패듯 구타했었다"며 "1991년 강경대 열사가 이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아 사망하는 등 수많은 사람들이 백골단의 폭력에 사망 및 부상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이같은 폭력 집단을 되살리려고 하고 있다"면서 "새 정권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것이 '백골단을 잃어버렸던 10년'이라는 말이냐"고 질타했다. 이들은 "이제 백골단은 마음껏 폭력을 행사하고, 모든 파업은 '불법'으로 규정해 상시적인 벌금으로 노조원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재벌들의 범죄에는 일언반구 없이 직통 전화까지 개설해주고, 노동자와 서민들의 권리 주장은 엄벌로 다스리는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고 이명박 대통령이 만들기로 한 '기업인 핫라인(Hot-line)'을 꼬집기도 했다.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장은 "출범한 지 한달도 되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치안과 법질서를 내세워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고 과거로 회귀하려고 한다"며 "거기에 법무부와 경찰까지 나서서 시위대 탄압을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권 회장은 "새 정부가 규제 완화 등 친재벌 정책을 강화하면서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며 "경제를 살리는 일은 바로 노동자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황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은 노동자가 잘못하고 서민들이 떼를 써서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새 정부가 자기반성은커녕 서민과 노동자들 탓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변 "최소한 민주적 원칙 무시한 초법적 망언"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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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뿐만 아니라 인권 등 다양한 시민단체들도 새 정부의 시위 진압 방식을 비난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회장 백승헌·이하 민변)'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최소한의 민주적 원칙도 무시한 초법적 망언에 경악한다"며 새 정부의 시위 진압 정책 폐지를 촉구했다.

진압 경찰에 대한 면책 강화 조치에 대해 민변은 "아무리 새 대통령에 '코드 맞추기'라고 해도 법무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사관계의 한 쪽 당사자의 편을 드는 법 개정을 언급한 것은 문제"라며 "면책 발상 자체도 기가 막히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경찰 폭력은 이미 방패나 곤봉과 같은 무시무시한 경찰 장구로 행해지고 있고, 이마저도 '정당행위'라는 이유로 불문 처리되고 있다"며 "지금도 지나치게 엄격하고 형식적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때문에 집회·시위가 제한되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이 대통령의 '떼법' 발언에 대해서도 "절박한 심정으로 거리에 나선 국민을 모두 '떼쓰기'로 불법화하는 것은 국민과 헌법에 대한 모욕"이라며 "경찰의 폭력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은 최소한의 민주주의 인식조차 결여한 위험한 발상"이라고 질타했다.

시민단체들, 잇따른 반발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박진씨는 "이명박 정부가 '불법 필벌'이라고 하지만 불법을 조장하는 것은 바로 정부"라고 새 정권을 겨냥했다.

박씨는 "이 대통령이 '떼법'으로 말한 것은 노동자와 서민과 관련된 집시법이나 노동조합의 법 조항들이고,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의 정치적 자유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며 "법적으로 보장된 자유를 지키지 않고 무조건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박씨는 또한 "현행 집시법상 집회와 시위는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주요 도로에 대해 집회를 금지하는 등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경찰의 자의적 판단으로 불법집회를 양산하고 있다"고 현행 집시법의 독소조항을 꼬집었다. 

실제로 인권단체 등은 집회 장소 제한, 집회 신고의 어려움 등으로 집시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지난 2월 22일 '집회 금지 통고 제도'와 관련해 "헌법상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국회의장과 법무부장관에게 폐지 및 개정을, 경찰청장에게 인권침해 소지가 없도록 그동안의 관행을 개선해 줄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새 정부를 향해 "노동자와 서민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 대변인은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데, 이같은 조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주장을 원천봉쇄하려는 권위주의적 발상"이라며 "업무방해,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 등으로 노동자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는 등 아예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집회·시위를 제한하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 또한 납득할 수 없다"며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얻은 민주주의와 헌법을 무시하면서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는 일관성을 잃었다"고 비난했다.

"잃어버린 10년, 무엇을 잃어버렸나"
[인터뷰] 박종철 열사 부친 박정기씨


"백골단 부활 규탄 기자회견이라니…. 참 이상한 기자회견 다 있네."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대표)씨는 20일 오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후 이같은 의문을 던졌다.

박씨는 이날 민주화실천운동가족협의회 양심수후원회 등 5개 단체가 주최한 '공안정국 조성, 백골단 부활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는 기자회견 이후 기자와 만나 아들의 죽음 이후 공권력의 인권 탄압에 대항하던 지난 세월을 반복하는 듯한 기분을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 10년간 군사독재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고자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는데 백골단 부활이 웬 말이냐"며 "이러다가 민주화 운동의 결실은 사라진 채 인권 문제 등 민주화 운동의 힘들었던 과정만 남게 됐다"고 개탄했다.

박씨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는데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10년만에 찾은 정권을 통해 백골단 등을 만드는 것은 한심스럽고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박 열사의 추모제에 참석했던 박씨는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옛 남영동 공안분실)에 인권기념관이 들어설 예정인 가운데 새 정부가 인권 보호에 반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정부가 스스로 정책과 현실간 차이를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백골단 #체포전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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