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쓰니 아름다운 '우리 말' (35) 개소식

[우리 말에 마음쓰기 268] ‘가루우유’와 ‘분유’, ‘흰설탕’과 ‘백설탕’

등록 2008.04.05 14:36수정 2008.04.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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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가루우유

 

.. 할머니는 말할 기력도 없고, 아들이 어디선가 구해 온 가루 우유를 끓여 주는 것도 먹지 못했다. 길 옆 가장자리에 벽돌 조각을 모아 부스러기 나무를 지펴 가며 아들은 어머니에게 열심히 따뜻한 물을 끓여 주고 있었다. “어머니, 이것 잡수셔요. 어서 몸이 회복되어야만 고향집에 돌아가실 게 아니겠어요” ..  《권정생-몽실 언니》(창작과비평사,1984) 223쪽

 

 늙은 어머니는 말할 힘(氣力)이 없습니다. 아들이 얻어(求) 온 가루젖도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그래도 아들은 부지런히(熱心) 늙은 어머니를 모십니다. 하루 빨리 어머니가 몸이 나아져서(回復) 고향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가루 : 아주 잘고 보드랍게 부스러진 물건

 ├ 가루우유 : 가루로 만든 우유

 ├ 가루젖 = 가루우유

 │

 └ 분유(粉乳) = 가루우유

      - 분유를 물에 타다 / 모유가 부족해 분유를 먹였다

 

 우유를 가루로 만들었기에 ‘가루우유’입니다. 밀을 가루로 만들었기에 ‘밀가루’입니다. 비누를 가루로 만들면 ‘가루비누’입니다.

 

 ┌ 가루 + (무엇) / (무엇) + 가루

 └ 가루젖 . 가루비누 . 가루약 / 밀가루 . 콩가루. 쌀가루

 

 아기한테 엄마젖을 먹이는 분보다 ‘분유’를 먹이는 분이 늘어납니다. 가만히 보면, 아기한테 젖을 먹이는 어머님들은 ‘어미젖’이나 ‘엄마젖’이라 하지 않고 ‘모유(母乳)’라는 말을 쓰고, ‘젖 먹이는’ 일을 놓고도 ‘수유(授乳)’라는 말을 씁니다. 이런 흐름을 탈밖에 없는 우리 모습이기에, 젖을 가루로 내어 먹이도록 하는 일을 가리킬 때에도 ‘가루젖’이 아닌 ‘분유’라는 낱말을 쓸 테고, 분유를 만드는 공장에서도 물건이름으로 ‘분유’만을 쓰겠구나 싶습니다.

ㄴ. 개소식

 

 지난달 일이었습니다. 아는 분이 새로 일을 한다면서 사무실을 열었더군요. 저는 그 자리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냥 사무실을 새로 연다는 소식만 들었는데, “개소식을 한다”고 하시더군요.

 

 ┌ 개소식을 한다

 │

 ├ 개소식(開所式) : 개소할 때 행하는 의식

 │   - 연구소 개소식 / 사무소의 개소식을 가지다

 └ 개소(開所) : 사무소나 연구소 따위와 같이 이름이 ‘소(所)’ 자로 끝나는

        기관을 세워 처음으로 일을 시작함

      - 법무사 사무소 개소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을 수 없어서 되묻습니다. “네? 뭐라고요?” “개소식을 한다고요.” “개ㆍ소ㆍ식이요?”

 

 ┌ 사무실을 열었다

 └ 사무실 여는 잔치를 한다

 

 새롭게 일할 사무실을 연다고 한 분은, 우리 말과 글을 퍽 아끼고 사랑한다고 하는 분이며, 이쪽 일도 제법 하신 분. 한동안 할 말을 잊습니다.

 

ㄷ. 흰설탕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먹으니 요구르트 하나 입가심으로 줍니다. 꼴깍꼴깍 냠냠 하며 다 먹고 나서 구겨 버리려고 하다가, 문득 무슨 생각인가 들어서 요구르트병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 주원료 : … 백설탕 …

 

 요구르트에도 ‘백설탕’이 들어가는 줄 처음으로 압니다.

 

 ┌ 백설탕(白雪糖) = 백당(白糖)

 ├ 백당(白糖)

 │  (1) 빛깔이 흰 설탕

 │  (2) 빛깔이 흰 사탕

 │  (3) 빛깔이 흰 엿

 │

 └ 흰설탕 : x

 

 집으로 돌아와서 국어사전을 뒤적여 봅니다. 국어사전에서 ‘백설탕’을 찾아보니 ‘백당’을 보라고 되어 있고, ‘백당’ 풀이를 보니, “빛깔이 흰 설탕”을 가리킨다고 되어 있습니다.

 

 ┌ 흰설탕 / 하얀설탕

 └ 검은설탕 / 까만설탕

 

 설마 싶어서 ‘흰설탕’과 ‘검은설탕’을 찾아봅니다. 없습니다. ‘흑설탕(黑雪糖)’까지는 실어 놓지만, 우리 빛이름 ‘흰/하얀’과 ‘검은/까만’을 앞가지로 붙인 설탕은 실어 놓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2008.04.05 14:36ⓒ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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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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