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플랫폼에 서서
기차를 기다리노라면 새삼스럽게
정시에 도착하는 기차가
썩 드물다는 걸 깨닫곤 한다
왜 기다리는 건 늘
제때에 오지 않는 걸까
왜 때를 맞춰 오지 않는 걸까
하지만 세상에 늦게 도착하는 게 어디 기차뿐이랴
봄꽃 다 지고 난 뒤
커튼콜 받는 가수라도 되는 듯이
뒤늦게 홀로 피어나는 꽃도 있다
하나의 사랑이 다녀간 후
폐허가 된 빈터에
어느 날 문득 기적소리를 울리며 찾아오는
그렇게 더딘 사랑도 있다
송용억가 큰 사랑채 뒤안
만성(晩成)을 꿈꾸며
이제야 피어난 고려영산홍을 바라보면서 문득
꽃이 핀다는 말이
과연 맞는 말인지 곰곰이 생각한다
꽃은 피는 게 아니라
나무의 몸 가운데
가장 약한 부분을 뚫고 나오는 뿔이 아닐지.
사물에게 가장 약한 자리란
대개 가장 절실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꽃이 핀다는 건
제가 가진 간절함으로
또 다른 간절함을 뚫는 것이 아닐지.
희망·사랑·꿈 같은
소중한 꽃들은
하나같이 뿔을 가졌다
늦게 도착한 것들을 살짝 끌어안으면
그것들이 가진 뾰족한 뿔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2008.04.21 16:22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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