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지정제 유지? '말장난'은 이제 그만!

[주장] '민간 의료보험'과 '영리의료법인' 도입 자체가 '당연지정제 완화'

등록 2008.04.29 22:05수정 2008.04.30 10:23
0
원고료로 응원
'미국 쇠고기 개방'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날로 높아지면서, 잠시 수면 아래에 가라앉은 이슈가 있다. 물론, 그 여파는 '미국 쇠고기 개방' 못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과연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혹은 폐지)'를 끝내 밀어붙일까?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무력화된 상태에서 의료시장이 개방돼 미국의 민영 의료보험과 국내 거대보험사가 '담합'을 시도한다면, 영화 <식코>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가운데,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입장은 모든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확고히 유지한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과연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일까?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 표명이 변화무쌍하게 바뀌던 과정, 그리고 전형적인 '오해'론이 난무하면서, 장관이나 대통령의 언급이라 하더라도 믿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당연지정제 유지? 틈속에 '말장난'이 보인다

 

a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 권우성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 권우성

일단, 김성이 장관의 발언 중 '민간의료보험' 관련 부분을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국민건강권 보장과 건강보험 재정 안정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다. 민간 의료보험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은 관계부처와 협의중이다."

 

이명박 정부 소속 인사들이 왜 국민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지를 알 수 있는 발언이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들은 뭔가 파문이 일어날 경우에 나름의 해명을 시도하지만, '조삼모사'나 '말장난'에 불과한 해명이 많다.

 

말장난에는 상대를 속이는 교묘함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라서 눈 뻔히 뜨고 우롱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명박 정부, 그래서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 많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일선 병원에서 건강보험 가입자에 대한 진료거부를 막아놓은 제도다. 우리는 김 장관 발언에서 "민간 의료보험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은 관계부처와 협의중"이라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건강보험과 민간 의료보험을 양립시키겠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당연지정제 완화 및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간 의료보험은 건강보험의 보완재"라는 식의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민간 의료보험의 영역이 보장되면, 건강보험에서 이탈해 민간 의료보험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부유층이다. 병원비가 비싸든 말든 타격을 입을 사람들이 아니다. 민간 의료보험은 이들을 향해 갖가지 특혜를 옵션으로 내건 상품을 제시할 것이고, 그들은 당연히 그쪽으로 빠져나간다.

 

그 순간부터 당연지정제는 사실상 무력화된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해 8월 23일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와 <오마이뉴스>에서 나눈 대담 도중의 발언이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국가의료제도(NHS)라고 해서 세금으로 병원 전체가 운영되고, 물론 일부 민간이 도입됐지만, 우린 의료보험 시스템으로 국가보험 시스템이고, 미국은 민간보험 시스템이에요. 건강보험이 없어요. AIG(미국계 생명보험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험을 파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부자들 보험부터 만들어요. 줄 안 서고 오래 진료받고 1인실 들어가게 해준다 약속하고 1년에 1000만원, 2000만원 내라고 하면 우리나라 부자들 드는 사람들 꽤 많을 거예요. 부자들은 병원에 잘 안 가니까 보험회사·병원 다 행복하죠.

 

반면에 가난한 사람 가지고는 보험이 성립 안 돼요. 보험료 조금 내고 보험금 많이 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언제나 파탄이에요. 미국에 5000만명은 아무런 보험이 없이 살아가고 있거든요. 보험 없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상상 못하는데, 감기 하나에 10만원이 들어갈 수도 있고, 손가락이 곪았는데 (치료를 못 받아서) 자를 수도 있고…."

- <오마이뉴스> 8월 30일자 기사 <"일본처럼 했다면 한미FTA 깨졌다" "한미FTA 반대하면 대원군 지지자?" >

 

정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민은 "보험료 조금 내고 보험금 많이 타는 사람들"이다. 부유층이 민간 의료보험으로 빠져나가게 되면, 정태인 교수의 언급대로 "가난한 사람 가지고는 보험 성립이 안되기에 파탄"이 일어난다.

 

"당연지정제를 유지하겠다"고 하지만,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라는 시도가 있는 한, 김성이 장관의 해명은 '말장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말장난하려면 앞으로는 보다 교묘하게 했으면 좋겠다.

 

민영보험사들은 왜 '정보공유 시스템'을 원할까

 

"보험은 금융산업 중 특이하게 사회보장적 시스템인데도 보험업계는 소외감을 느낀다. 공보험과 민영보험간 정보공유 시스템을 갖추면 좋겠다. 실제 보험사들이 건보공단 정보에 접근 어렵다. 민영보험과 공보험간 정보 공유를 하면 도덕적 해이도 막고 선량한 소비자도 보호할 수 있고 공보험과 민영보험의 건전성을 강화해 윈-윈 할 수 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금융기관 CEO와의 간담회에서 나온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의 발언이다. 보험업계가 '국민건강정보 공유'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에 이렇게 화답했다.

 

"금융과 관련 앞으로 민간 입장에서 바라보겠다. 정부가 주도하기보다 민간입장에서 해보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민간'은 '대기업 및 재벌'이나 '부유층'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그로부터 두달 만에, 이명박 정부는 '결단'을 내린다. 민간 보험회사에 건강보험공단의 '국민 질병 정보'를 넘기고, '영리의료법인'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병원은 '비영리의료법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 질병 정보'를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권한을 갖고 '고급 민간의료보험 상품'을 제시할 거대보험업계, 그리고 영리를 추구할 수 있는 병원의 존재, 그 자체가 '당연지정제 완화'나 다름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서민은 어차피 '보험금 조금 내고 보험금 많이 타는 사람들'이다.

 

민간의료보험이나 영리의료법인의 서민과의 간극은 '안드로메다'에 가깝다.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적자 많은 건강보험은 완벽한 재정파탄을 맞이하며 사실상 무너지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영화 <식코>에서도 나왔듯이, "손가락 봉합수술에 6천만원을 들여야 하는"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그럼에도, 주무부처 장관이 '말장난'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와 '영리의료법인 도입'을 실천해 굳이 완화 및 폐지를 안해도 당연지정제가 무너지게 될 때, 이명박 정부나 김성이 장관의 해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뻔하다. '오해'라는 말이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어쩌면, '내가'라는 주어가 없었기 때문에 무관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이게 이명박 정부의 지난 두달간의 패턴이었다.

 

a

'함께봐요, 식코' 시민사회단체 공동 캠페인단은 이명박 정부의 의료산업화정책에 반대하며 이명박 대통령, 강만수 장관, 김성이 장관에게 영화 <식코> 무료관람권을 증정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보건의료노조

'함께봐요, 식코' 시민사회단체 공동 캠페인단은 이명박 정부의 의료산업화정책에 반대하며 이명박 대통령, 강만수 장관, 김성이 장관에게 영화 <식코> 무료관람권을 증정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보건의료노조

중병 걸리면 그냥 죽으라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무력화되면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사람은 중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당연지정제가 존재해도 천문학적인 치료비와 수술비에 허덕이는 그들이다.

 

그런데 그나마 안전장치라 할 수 있는 당연지정제가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와 '영리의료법인 도입'으로 인해 '자연스레' 무너질 때에는 대책이 없다. 그냥 죽으라는 이야기다. 병원, 명목상으로는 '비영리의료법인'이지만 사실상 상업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은가.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미 "외국의 영리의료법인과 비영리의료법인을 비교 조사한 수많은 연구들은 영리의료법인이 비영리의료법인과 비교했을 때 의료비는 비싸고 사망률은 높으며 인력 고용은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보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것이 바로 <식코>가 고발한 미국 의료의 현실이다.

 

이게 이명박 정부가 시도하는 '규제 완화'와 '경제 살리기'인가? 국토는 죄다 파헤쳐놓고, 소가 광우병에 걸리든 말든 무차별적으로 수입되며, 학교는 '입시정글'로 꾸며놓고, 재벌은 '상속세 폐지해 달라'고 아우성쳐대고, '영리의료법인'으로 그나마 보장되는 '공공의료'도 무너뜨리는 것, 이게 이명박 정부의 '경제살리기'인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하고 싶어진다. 보수화됐다는 둥,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둥, 그런 국민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본인들의 삶을 파괴하는 정책이 다양한 분야에서 현실이 되면,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판사판 공사판'이라는 말이 어떻게 만들어진 말인지 한번쯤 돌아보도록 하라.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불과 두달 밖에 안지났다는 사실, 새삼 깜짝 놀라게 된다는 것은 과연 나만의 느낌일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29 22:05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당연지정제 #건강보험 민영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