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백이숙제', 한 번 보실래요?

[시랑헌에서 부르는 나와 집사람의 노래 10]

등록 2008.05.08 18:28수정 2008.05.2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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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5월 초 시랑헌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른 잡다한 일에 밀려 난로의 연통도 철거하지 못했건만 어느새 시랑헌 주의의 숲은 짙은 연두색 신록에 둘러 쌓여 있다.

5월 초 시랑헌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른 잡다한 일에 밀려 난로의 연통도 철거하지 못했건만 어느새 시랑헌 주의의 숲은 짙은 연두색 신록에 둘러 쌓여 있다. ⓒ 정부흥


삶의 정의


애플컴퓨터의 대명사 스티브잡스는 2005년 6월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졸업식 축사에서 자신이 살아오면서 얻은 인생관을 연기(緣起)에 대한 믿음(connecting the dots), 사랑과 상실(love and loss) 그리고 죽음에 대한 통찰( about death)로 표현했다.

첫 번째 연기(緣起)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는 현재의 순간들이 어떤 식으로든지 미래와 연결되므로 우리는 자신의 결단력, 운명, 삶의 방식 또는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 간에 그 미래의 결과는 현재의 연장선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믿음이 남들과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랑과 상실에 관해서는 자신이 새운 애플컴퓨터회사에서 해고당한 사실을 상실의 예로 들었다. 이 상실을 딛고 초심에서 사랑하는 일을 찾아 자유를 누리며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할 때를 위한 준비 기간으로 활용하였다는 얘기다. 즉,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다보면 지독하게 독하고 쓰디쓴 약의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죽음에 대한 통찰에 관한 얘기였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 위에 서있을 것'이라는 경구를 믿고 이를 실천한 얘기이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도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죽음의 실체를 가깝게 경험하게 됐다는 것.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하는 상의 변화이므로 반드시 필요하며 곧 우리에게 일어날 현실이라는 것이다. 지금 새로움이란 자리에 선 젊은이들도 머지않아 다음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도그마(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말고 제한된 삶의 시간에 충실 하라는 것이다. 


그의 축사를 한번 듣고 '매일 매일을 마지막 날 같이 산다면 엄벙덤벙 당황하다가 끝나겠네!'하면서 덮어 버리려다 그래도 뒤통수를 강하게 당기는 것이 있어 두 번 세 번 음미하나 보니 소꼬리 육수 맛이 난다.

스티브잡스는 얼마 안 남은 자신의 삶을 위해 항상 죽음을 옆에 두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그의 원숙한 인격의 향기에 놀라 나의 주변을 되돌아보면서 손을 꼬옥 쥔다. 강한 의지와 용기가 인다.


나는 무엇 때문에 지리산에 집을 짓고 산속에서 살려고 하나? 매일 되돌아보고 다짐하지 않으면 준비해 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흐트러지기 쉬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5월 2일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나니 5일간 시랑헌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소중한 기간인 만큼 알차게 보내려고 나름대로 계획을 치밀하게 짰다. 이번 연휴에 꼭 해야 할 일은 전기 인입공사, 나머지 석축공사, 모종심기이다.

전기공사

a 전기공사 시랑헌을 위한 전기공사, 전에는 밤나무 단지를 위한 전기가 있었으나 도로 공사 후 시랑헌과 밤나무 단지를 위한 겸용의 전기공사가 시작되었다.

전기공사 시랑헌을 위한 전기공사, 전에는 밤나무 단지를 위한 전기가 있었으나 도로 공사 후 시랑헌과 밤나무 단지를 위한 겸용의 전기공사가 시작되었다. ⓒ 정부흥

전봇대를 세우고 전선을 연결하는 작업은 한국전력공사와 관련된 일이므로 미리 한전과 몇 차례 전화하여 우리 일정과 맞출 수 있도록 사전에 조율하였다.

구례 한전에서 이 일을 담당하는 고정석 위원장은 능숙하고 원만하게 고객인 우리입장에서 전봇대 설치장소 설계부터 시공방법, 협력업체 선정까지 배려해 줬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문제인 최소한 경비로 하는 방법도 일러줬다.

5월 1일 아침에 시랑헌에 도착하니 대부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설치한 5개 전봇대에 전선을 설치하고 한 개의 전봇대느 철수하기 위해서다.

나와 집사람 만을 위한 전기공사를 지켜보고 있자니 우리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은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다. 시골에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조금은 어린애 같은 기분일지 모르지만 도시에서는 느끼기 힘든 기분이다.

a 전기공사 전신주 매설이 끝나고 전기 인입공사가 시작되었다.

전기공사 전신주 매설이 끝나고 전기 인입공사가 시작되었다. ⓒ 정부흥

이제 시랑헌 터 앞으로 지나가는 치렁치렁한 전기줄도 없어져 머리깎고 면도한 것처럼 시원하고 깔끔해 졌다. 마지막 석축작업도 지장없이 할 수 있게 됐다.

공사를 위해 온 이들이 "집터 앞 전신주에 가로등을 달아달라는 민원을 군청에 제기하면 기꺼이 집 앞에 가로등을 켜줄 것"이라는 조언까지 해준다. 오리고기 훈제안주와 맥주 몇 병으로 그들의 노고에 답했다.

석축공사

이번에 해야할 건 도로 법면(경사면) 안전을 위해 이미 쌓놓은 조경석축 위에 2m 높이의 직벽석축을 쌓는 일이다. 4~5일 일정으로 쌓아볼 생각이지만, 석공없이 처음해보는 큰 작업이라 걱정도 된다. 나는 조그만 규모로 텃밭석축을 박씨 아저씨와 쌓아본 적이 있다. 이를 살려 돈도 절약하고 우리들의 초심, 즉 할 수만 있다면 '나와 집사람 둘이 한다'는 이 초심에 충실하려고 굴착기 레버를 내가 잡고 박씨 아저씨와 권씨 셋이서 집터의 나머지 200㎡ 석축을 쌓았다.

a 조경석축 위 직벽석축 조경석축은 안전위주의 돌쌓기이며 직벽석축은 시멘트 옹벽과 같이 땅을 얻기위한 돌쌓기이다.

조경석축 위 직벽석축 조경석축은 안전위주의 돌쌓기이며 직벽석축은 시멘트 옹벽과 같이 땅을 얻기위한 돌쌓기이다. ⓒ 정부흥

a 일단 마감된 석축 조경석축 위에 땅을 얻기 위해 직벽석축을 쌓기 시작하여 4일이 지나자 일단 석축의 윤곽이 들어난다.

일단 마감된 석축 조경석축 위에 땅을 얻기 위해 직벽석축을 쌓기 시작하여 4일이 지나자 일단 석축의 윤곽이 들어난다. ⓒ 정부흥


집사람은 내가 굴착기를 운전하면 매우 위험하고, 박씨 아저씨와 권씨를 고용해야하는 기간이 훨씬 길어져 지출 경비가 커지고, 석축이 불안정해 모양도 이상해진다며 김 기사를 고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사람의 효율성 논리에 밀려 굴착기 레버는 김 기사에게 물려주고 박씨 아저씨와 석공역할을 했다. 권씨는 우라돌을 체우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김 기사, 박씨 아저씨, 권씨에게 사전에 연락했더니 5월1일 시랑헌에 도착하여 작업준비를 하고있다.

돌쌓는 작업은 재미있고 창조적 예술감각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오후가 되어 몸이 피곤해지자, 김 기사와 박씨 아저씨 그리고 권씨가 서로를 탓한다. 나마저 부화뇌동하면 돌쌓는 우리팀은 단번에 절단난다. 객관성을 유지하고 중립을 지키며 잘못된 부분은 전부 나의 탓으로 돌리고 잘된 부분만을 강조했더니 점점 화기애애해 진다. 내가 앞장서 허리가 휘도록 뛰고 파김치가 되도록 돌을 나른 것도 한목 거들었을 것이다.

둘째 날부터는 그런대로 팀워크에 불만 없을 정도로 척척 진행된다. 하루에 대략 1㎡ 크기 돌 50여개 쌓는 정도다. 우리가 쌓아야할 양이 대략 200㎡ 정도이니 약 4일정도 걸린다. 4일 정도 돌을 쌓고 하루는 바닥 토목공사를 하려고 했으나 넷째 날부터는 박씨 아저씨가 없고, 5일 어린이날은 김 기사가 서울에 볼 일이 생긴 모양이다. 

5일째는 나 혼자서 새벽 5시부터 굴착기를 이용하여 바닥을 고르는 작업을 했다. 점심 때 쯤에는 일에 가속도가 붙는 차에, 집사람이 내려온다. 그리곤 "오후부터는 전 주에 가져온 모종을 심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며 무력시위를 벌일 태세다. 땅고르는 굴착기 작업을 중단하고 모종을 심는일에 매달려야 할 것 같다.

산나물과 모종

a 사랑헌 숲 4월 초 두릅을 시작으로 취, 고사리 등 풍성한 산나물이 지천으로 널렸다.

사랑헌 숲 4월 초 두릅을 시작으로 취, 고사리 등 풍성한 산나물이 지천으로 널렸다. ⓒ 정부흥

a 연못 계곡이 없는 시랑헌의 숲에서 여름에 목욕을 하려고 연못을 팟더니 일오(세퍼트 개이름)가 먼저 들랑거린다.

연못 계곡이 없는 시랑헌의 숲에서 여름에 목욕을 하려고 연못을 팟더니 일오(세퍼트 개이름)가 먼저 들랑거린다. ⓒ 정부흥


산에서 살려면, 산에서 나는 산나물과 산이 주는 임산물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 이른 봄 두릅을 비롯하여 달래, 냉이, 고사리, 취나물 등등. 새순이 돋는 이른 봄철에는 산 어디를 가든 산채나물이 지천에 널렸다. 아직은 산채나물에 지식이 부족하여 극히 한정된 나물만을 채취하여 먹었지만 올해 심은 산미나리가 번져 홍어무침이 가능하게 될 때 즈음에는 시랑헌에 심은 30여 종류 과일나무에서 열리는 과일도 일용한 양식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a 산미나리 산에서 주는 산나물은 한정된 시간만 허용하므로 필요할 때 뜯어먹을 수 있도록 연못물이 넘처 흐르는 길따라 산미나리를 심었다.

산미나리 산에서 주는 산나물은 한정된 시간만 허용하므로 필요할 때 뜯어먹을 수 있도록 연못물이 넘처 흐르는 길따라 산미나리를 심었다. ⓒ 정부흥

나의 지병이 당뇨이고 두려운 것이 합병증인 만큼 식단이 혈당조절이 용이한 음식으로 초점이 맞춰져있다. 산나물은 봄에만 나므로 여름철 채소를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구하기가 힘들다. 이를위해 상추, 고추, 케일, 오이, 호박, 도마도, 가지, 땅콩 등 모종을 전 주에 대전에서 샀다.

전 주부터 힘들게 석축을 쌓고 복토를 하고 퇴비를 잔뜩 섞어 모종을 심으려고 했더니 이 텃밭엔 밤나무 잎이 나면서 그늘진다. 우리들이 그동안 보아온 터는 밤나무 잎이 지고 난 철 동안이었다. 종일 관찰해보니 불과 2~3시간 정도밖에 햇볕을 받지 못한다. 이곳에 채소를 심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애써 만든 텃밭은 도라지 밭을 만들거나 주차장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새 텃밭을 집터 가운데로 옮겨 다시 만든다.

덤프트럭으로 좋은 밭 흙을 날라 오고 퇴비를 뿌려 옮겨온 흙과 굴착기를 이용하여 섞고 고랑을 내고 돌을 골라 밭 가장자리를 만드니 훌륭한 텃밭이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역시 대단한 현대식 장비의 힘이다.

a 텃밭 산나물이 없어지는 계절에 채식을 위한 채소가 자랄 텃밭

텃밭 산나물이 없어지는 계절에 채식을 위한 채소가 자랄 텃밭 ⓒ 정부흥

텃밭을 만드는 시간에 비하면 모종을 심는 시간은 짧고 하기도 쉽다. 20여분 뚝닥거렸더니 여름철 채소 문제가 해결되었다. 산사람 최성현씨 말대로 1/3은 야생동물이 먹고 1/3은 진딧물, 무당벌레, 메뚜기 ,여치 등 곤충이 처리한다고 해도 나머지 1/3이면 나와 집사람 둘이서 먹는 덴 부족함이 없다.

옛날에는 '산골'하면 우선 불편과 가난을 떠올리겠지만 장정 500여명의 능력을 합한 굴착기 등 농기구와 덤프트럭을 갖고 있다면 기름진 산에 500평 1000평의 삶의 터전을 만든다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경비가 좀 들어간다고 하지만 경비는 이를 위해 얼마나 준비했느냐에 따라 많이 절감할 수 있는 문제이다.

만일 굴착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면 500여명의 종을 데리고 귀농하는 격이다. 밥도 먹지 않는 노예를 말이다. 농가의 밭을 사는 것보다 부엽토의 땅을 만드는 일도 고려해볼 만하다. 우선 높은 곳은 경치가 좋고 공기가 맑다. 친환경적이다.

집은 나와 집사람이 살기 편하게 내가 지으면 된다. 넓은 아파트, 멋진 전원주택 그것이 행복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요즈음 약간은 불편한 것을 찾고 있다. 재래식 화장실 같은 것 말이다. 오가며 철따라 피고 지는 야생화를 감상하고 서두르지 않고 일을 보면서 자연과 대화하고 사색하는 여유를 약간은 불편한 것과 교환하고 싶다.

시랑헌 뒤 편백나무숲은 낮에도 어두컴컴하다. 이 숲속에 오솔길을 만들어 다람쥐, 노루, 고라니, 산토끼들과 같이 어울리고 산책할 것이다. 훌렁벋고 다니고 싶은데 집사람이 동네에 소문난다고 미리 말리고 나선다. 아무도 볼 사람 없는데….

덧붙이는 글 | 산골 생활의 얘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산골 생활의 얘기입니다.
#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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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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