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누구를 위한 의료영리법인인가

등록 2008.05.11 19:59수정 2008.05.1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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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는 농담도 '터무니없음'을 못느끼게 하는 이명박 정부

아는 분과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하다가 갑자기 폭소를 한 기억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무엇이든 "돈 되는 쪽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우선으로 여겨진다는 생각에 서로 동의하면서, 교육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던 도중 "이러다가 학생들이 등교할 때 교문 앞에서 수위 아저씨가 입장료 받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왔기 때문이다.

'돈 버는 일'을 하는 CEO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나 '학교 자율화 계획' 등에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관점에서는, 건강보험에서 적자를 보는 일,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료'와 '교육'은 결코 '돈'의 관점에서만 봐서는 안되는 분야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들에는 '돈'의 냄새가 난다. "학생들이 등교할 때 교문 앞에서 수위 아저씨가 입장료 받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반드시 터무니없는 농담같지는 않다.

국민의 시선이 '미국산 쇠고기'에 쏠려 있던 상황에 이명박 정부는 다시 한번 고단수의 패를 내던졌다. 기획재정부가 <주요국의 서비스산업 육성 동향 및 정책적 시사점>이라는 참고자료를 통해 "의료서비스 발전을 위해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해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던 것. 이명박 정부 들어 화두가 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에 탄력을 주는 참고자료일 것이다.

'영리의료법인', 한마디로 병원이 '이익 추구 집단'으로 대놓고 변신하는 것을 장려하겠다는 이야기다.

'종합병원 진료이익'은 증가했다는데 '영리의료법인' 도입한다?


지난해 7월 23일에 여러 언론들이 보도한, 대한병원협회가 공개한 '2005년 병원 경영 통계'를 살펴보자. 이 통계 자료는 병상을 200개 이상 갖춘 종합병원 중 인턴과 레지던트 교육을 실시하는 수련병원 230~250개를 조사해 병원의 경영 현실을 분석했던 자료라고 한다.

당시, <매일경제>와 <국민일보>가 관련기사의 제목으로 내세웠던 부분은 "대학병원 입원환자 1명의 진료비는 하루 평균 32만 8000원이라는 통계였다. 2002년(28만 2800원)에 비해 4만 5200원 상승한 액수라고 한다. 대학병원을 포함한 전체 종합병원으로 범위를 확장해도 마찬가지. 1인당 하루 평균 23만 5400원을 기록함으로써, 2002년의 20만 3300원에 비해 3만 2100원이 늘어났다고 한다.

1인당 평균 외래 진료비 역시 마찬가지다. 2002년의 6만 3900원에 비해 2005년에는 6700원 오른 7만 600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진료비가 이렇게 증가했으니, 종합병원의 의료이익은 당연히 같이 늘어난다. 의료수익에서 비용을 제외한 '의료이익'은 2002년의 1병상 기준 198만 4200원 적자에서,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꾸준히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2005년의 흑자 액수는 1병상 당 260만 6000원이다.

<매일경제> 2007년 7월 23일자 기사 <대학병원 하루 입원비 32만 8천원>에서는 그럼에도 '병상당 순익'이 '순손실'을 나타낸 이유를 다뤘다. 2005년의 '병상당 순익'은 9만 3900원의 순손실을 나타냈다고 하는데, 순익을 깎아먹은 원인은 '부동산 매매비용', '이자비용' 등이라고 한다. <매일경제> 기사는 이에 대해 "종합병원들이 환자들에게서 얻는 진료수익이 크게 늘었지만 누적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금융비용과 신규 투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같은날 <국민일보> 기사 <328,000원 대학병원 하루 입원비, 외래평균 7만600원… 의료이익 2년새 2.4배>는 그보다 더 본질적인 부분을 다룬다. 서울대 간호학과 김정은 교수팀이 서울시내 8개 대학병원 간호사 88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응답자의 52.4%는 "소속 부서에서 심각한 환자 안전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52.4% 중 82.5%(전체의 약 42%)는 "더 심각한 실수가 발생하지 않는게 우연일 뿐"이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김정은 교수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병원 시스템 안에서 의사와 간호사, 간호사와 간호사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지 않아 처방전 전달이나 투약 등에 실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병원 구성원간에 위험 요소나 의학적 실수 등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병원 문화 정착에 노력해야 한다."

돈은 악착같이 벌었는데, 환자 안전 확보를 위한 병원 문화 정착에는 소홀히 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장례식장'으로 돈 버는 종합병원, 노골적으로 부대사업하라?

이제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0병상 이상의 222개 종합병원의 2005년도 재무제표 및 부속명세서를 분석한 결과를 살펴봐야 한다. 서울지역 종합병원은 1병상당 1년간 평균 16억 5000만원의 수익을 기록해 전국 평균(11억 6000만원)보다 높았지만, 의료이익률은 -0.6%로써 전국 평균보다 낮았다고 한다.

관련자료를 보도한 <뉴시스> 2007년 7월 13일자 기사 <서울 종합병원 병실보다 장례식장서 돈 벌었다>를 살펴보면, 서울지역 종합병원들이 이 적자를 어디서 메웠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기사제목에서도 드러났듯이 '장례식장'에서 벌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장례식장과 주차장 등의 부대수익을 합산한 '경상이익률'은 오히려 1.2%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장황한 자료의 나열에서 독자 여러분들은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의료영리법인'이 허용되면, 대형병원은 보다 노골적인 부대사업을 벌일 수 있으며, 눈엣가시와 같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로부터 벗어나 본격적인 사영의료보험 가입환자들을 받아 '의료이익'은 더욱 쑥쑥 올라갈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민간병원을 상법상 주식회사 형태로 운용 가능한 태국은 2005년 9월 현재 320개 민간병원 중 13개가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으며, 의료법인에 대한 외국인 등 민간투자가 늘어났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로써 "우수한 의료인력 확보와 최신 의료기기 도입 등 고급 의료서비스 제공 여건이 마련됐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께서 '종합병원'의 주주라고 생각해보자. 과연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예뻐보일까? 아니다. 사영의료보험 가입환자들을 중심으로 한 고급 병원으로 거듭나 의료이익과 부대수익을 동시에 올리는 방법을 노릴 것이다. '우수한 의료인력 확보'와 '최신 의료기기 도입'도 사영의료보험 가입환자들을 위한 병원 정책으로 자리잡힐 것이다.

이명박 정부, '고유목적사업적립금'이나 바로잡아라

<뉴시스> 1월 17일자 기사 <국공립병원은 무조건 적자? 숨겨진 ‘적립금’ 논란>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경영분석을 담당한 어느 컨설팅회사 대표가 '국공립병원의 인위적 적자 조작'을 언급해 파문이 일어났던 적이 있다고 한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분명히 흑자를 보고 있음에도 '고유목적사업적립금'이라는 조항의 함정을 이용해 장부상 적자로 처리해버린다는 언급이었다.

'고유목적사업적립금'이란, 비영리법인에서 일정기금을 미리준비금으로 기록하는 항목이라고 한다. 재정상 비용처리가 가능해 흑자가 발생해도 이 흑자 이상의 '고유목적사업적립금'을 기재하면, 돈은 그대로인데 장부는 적자로 기록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한다.

물론, 이 적립금은 5년째 쌓이기만 하면 '잉여금'으로 처리돼 세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대병원에서 5~10년 단위로 큰 사업을 벌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고유목적사업적립금이 없으면 비영리기관으로써 어떻게 고유목적을 수행할 돈이 생기겠느냐"는 명분도 제법 훌륭하다.

이쯤 되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흑자가 이어지면 당연히 국고보조금이 줄어든다. 게다가, '병원의 경영난'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던 우리로선 "알고 봤더니 흑자를 봤다더라"는 분석 결과를 지켜보면 대형종합병원 측으로서는 골치아플 수 밖에 없다.

물론, 의료업계의 흑자는 대형종합병원에 국한된다고 한다. 이에 대한 분석의 당사자 '리오앤컴퍼니' 박개성 대표의 한마디를 들어보자.

"설령 병원들이 흑자가 난다고 해서 저수가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수는 없다. 실제로 병원들이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는 부분은 '진료'가 아니라 부대사업운영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병원들이 일부 흑자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일부에 국한된 것이고 특히 대부분의 중소병원들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의료영리법인'을 거론한 것 같다. 그런데, 이 '의료영리법인'이 도입되면 누구에게 유리할까? 중소병원일까? 대형종합병원일까?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학교영리법인? 교문 앞에서 입장료도 받지 그러나

기획재정부의 참고자료에는 '영리의료법인' 뿐만이 아니라, 슬그머니 '영리교육법인'도 추가돼 있다. 사립학교법상 학교법인은 영리법인이 될 수 없다. 이 규제를 풀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안그래도 한미FTA 협정 상 미국영리법인 대학이 국내에 들어올 경우엔 '역차별이 된다'는 이유로, 국내 대학들이 '영리교육법인'을 강하게 요구한 마당이다.

이로써, 대학이 보다 마음놓고 돈벌이에 매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듯하다. '영리의료법인'이라는 화두의 흐름, '병원'에서 '대학'으로 기관만 바꾸면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분과 농담처럼 나눴던 이야기가 새삼 다시 떠오른다. 물론,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본질적으로 '교육 장사'를 보다 확실하게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측면에서는 다를게 없다.

'영리교육법인'을 국내 대학들이 기꺼이 환영하며 도입한다면, 지금까지의 '등록금 폭탄'은 아무것도 아니다. 기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진짜 '등록금 폭탄'이 무엇인지, 우리는 맛을 못봤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몰아치는 이명박 정부

홍길동인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으로 국민들을 정신없이 몰아치더니, 다시 의료 문제로 국민을 경악시킨다. 다음 차례는 뭘까? 한반도 대운하일까? 다시 뜬금없이 대북 문제로 파문을 일으킬까? 당최 예상을 할 수가 없다.

이명박 정부의 서민으로 살려면, 무슨 소식을 듣더라도 놀라지 않을 담이 필요한 것 같다. 이렇게 몰아쳐서야 무슨 희망으로 살아야 하나?

잊지 말라. '촛불문화제'에서는 비단 '미국산 쇠고기'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건강보험 문제도 무척이나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서민들의 촛불은 죽지 않고 더욱 타오를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몰아치기 정책은, 우리로 하여금 그 촛불을 영원히 끄지 말라는 목소리로 들릴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영리의료법인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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