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민영화'가 괴담? 정부의 말장난이야말로 '괴담'

입으로는 '민영화 반대', 하지만 정책은 '무력화 시도'

등록 2008.05.22 10:13수정 2008.05.2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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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확고히 유지하겠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들은, 그동안 '건강보험 민영화 가능성'을 강하게 부정했다. 심지어, '괴담'이라고까지 규정했다. 지난 4월 29일에 기자간담회에서 김성이 장관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확고히 유지하겠다"고 했으며, 임종규 보험정책과 과장도 "건강보험 민영화를 검토한 바도, 그럴 계획도 없다"고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한반도 대운하'나 '미국산 쇠고기'가 파문처럼 다가오면서 국민 중 상당수는 정부의 해명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 신빙성에 마찬가지로 의문이 제기된 분야 중 하나가 바로 '건강보험' 문제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에 이미 '당연지정제 완화 가능성'이 논란으로 제기된 데다가, 김성이 장관 스스로 '보완재'로써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방안'을 거론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생명을 비롯한 대형보험업계는 '실손형 민영의료보험(건강보험 부담분을 제외하고, 환자가 실제 내는 의료비를 보장해주는 상품)'을 내놓은 데다가, 지식경제부에서 '영리의료법인' 가능성까지 흘려놨다.

 

'실손형 민영의료보험'과 '영리의료법인', 한발 더 내딛은 '건강보험 무력화'

 

장관을 포함해 보건복지가족부의 정책담당자들이 '건강보험 민영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당연지정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릴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네들의 '말장난'과 '변명'도 나름대로 근거는 있는 셈이다.

 

하지만, 조금만 상식적으로 판단해본다면 이들의 해명이 얼마나 설득력이 없는지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실손형 민영의료보험이 노리는 대상은 제법 돈 좀 있다는 부유층이다. 게다가,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면 보다 나은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무리를 해서라도 그를 선택하는 가입자도 있을 것이다.

 

이 두 부류들이 나름의 이유로 민영의료보험으로 빠져나가면서, 꾸준히 적자를 발생시키는 건강보험의 재정은 더더욱 악화되면서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그때부터 더욱 우세해지거나, 보다 확실한 지위를 보장받게 되는 것은 바로 '실손형 민영의료보험'이다.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탄생 → 건강보험 이탈자 발생 → 건강보험 재정 악화 및 이탈자 급등 → 민영의료보험의 형태가 '실손형'에서 '대체형'으로 변화 →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사실상 무력화 등의 단계를 거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가능성에 기름을 붓는 존재는 바로 '영리의료법인'이다. 현재 '비형리의료법인'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병원, 특히 대형병원이 노골적으로 '이익 추구'를 시도하다 보면 당연히 민영의료보험 환자를 더욱 선호하게 될 것이다. 이런 단계가 바로 건강보험의 이탈을 더욱 부추긴다. 정부에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 않더라도, 명맥만 유지한 채 누더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괴담? 정부의 말장난이야말로 '괴담'

 

'영리의료법인' 허용 추진의 명분 중 하나는 '의료서비스 개선'이다. '서비스 개선'은 민영화 논리에 늘상 따라다니는 명분 중 하나다. 그런데, 과연 민영화가 실천되면 그 '서비스 개선'이 이뤄지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

 

중남미 서민들을 괴롭혔던 '상수도 민영화'의 경우에도, 수도시설을 인수한 다국적기업들이 별다른 투자 없이 요금만 대폭 올렸다가 '폭동'과 '수도세 납부 거부 운동'까지 일어났던 적이 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네비게이터>가 다뤘던 영국의 철도 민영화도 마찬가지다. 수익성 문제로 인해 안전장치 도입이 지체되면서 열차 정면충돌 사고까지 발생해 31명이 사망한 적도 있었다.

 

이게 바로 '서비스 개선'이라는 명분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이야기해주는 사례들이다. 의료 역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대한병원협회가 지난해 7월 23일에 공개한 '2005년 병원 경영 통계'에 따르면, 병상 200개 이상을 갖춘 종합병원의 진료비가 상승해 의료이익까지 늘어났지만, 서울대 간호학과 김정은 교수팀이 서울시내 8개 대학병원 간호사 88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2.4%가 "소속 부서에서 심각한 환자 안전 문제가 있다"고 답변했으며, 전체의 약 42%를 차지하는 응답자들은 "더 심각한 실수가 발생하지 않는 게 우연일 뿐"이라는 답변도 내놨다.

 

아직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유지되고 있고,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되지 않았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장벽을 허물어 병원이 의료를 통해 영리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과연 이전보다 더욱 환자 안전 문제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보는가? 환자의 안전과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한 투자도 병행될 것이라고 보는가? 오히려 서비스를 축소시키는 것이 '영리'를 보기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만약 그 장밋빛 가능성이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라면,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왜 대선주자들조차도 성토할 정도로 '최악의 의료시스템'이라는 혹평을 듣는 것일까?

 

이런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논의 자체를 '괴담'으로 규정지으며 틀어막으려고만 하는 것 자체가 '괴담'이라고 할 수 있다. 민영화의 장밋빛 가능성이 허상임을 증명할 자료는 많다. 보건복지가족부는 '민영화'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으며 부인했을 뿐 사실상 '민영화'를 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생각은 하지 말라.

 

민영화 만능주의, 언젠간 큰코 다칠 것

 

'미국산 쇠고기'를 계기로 점화된 촛불에는 반드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성토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의료·교육 등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만능주의 자체에 분노하고 성토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가득 담겨 있다. 그럼에도 '괴담' 운운하며 문제제기마저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현실이다.

 

20여년 전, '민영화 만능주의'로 이명박 대통령의 전철을 밟은 바 있는 마거릿 대처조차도 "모든 것에 대해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한다 해도 국방과 의료만큼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민영화 만능주의를 넘어선 이 가차없는 공공재 무력화 시도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공공재는 소수의 재벌 및 대기업이나 이윤추구세력이 나눠먹는 밥그릇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건강보험 적자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을 제대로 내세우고 싶거들랑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홀랑 태우고도 남을 정부가 바로 이명박 정부인 것 같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더이상 서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5.22 10:13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당연지정제 #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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