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어머니와 같은 탱자나무 아래서

등록 2008.06.07 13:13수정 2008.06.0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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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귤화위지 동네 골목길의 탱자울타리

귤화위지 동네 골목길의 탱자울타리 ⓒ 김찬순

▲ 귤화위지 동네 골목길의 탱자울타리 ⓒ 김찬순
 
도심 속에 '탱자 울타리'가 있는 동네를 지난다. 좁다란 동네 골목길에 하얀 소금꽃처럼 하얀 탱자꽃이 진 자리에, 단단한 탁구공처럼 푸른 탱자알이 열렸다. 마치 탁탁 받아치는 탁구공처럼. 어릴 적 나는 유난히 몸이 약했다. 알레르기에다 심한 경기와 까닭 모를 오한 등 으로 어머니를 많이도 고생시켰다.
 
그런 어머니는 몸이 약한 막내 아들을 위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산으로 들로 민간약재를 구해다 달여 먹이셨다. 그 민간약재라는 것, 어린 아이가 먹기 힘든 것들이었다. 심지어는 개구리탕이나, 소똥을 불에 태운 것 등이었다. 탱자열매는 알레르기가 심할 때 가마솥에 넣고 푹 삶아서 마시게 했다. 탱자 삶은 물은 보기에는 예쁘게 새노랗지만, 너무 쓴 맛이라서 마시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다. 
 
a 탱자 울타리

탱자 울타리 ⓒ 김찬순

▲ 탱자 울타리 ⓒ 김찬순
 
그래서 어머니 눈치를 살피다가 탱자 삶은 물을 얼른 수채구멍에 버리고 먹은 척 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체질 개선에 이보다 좋은 민간약은 없다고 한다. 내가 어릴 적에는 마을에 병원이 흔치 않았다. 읍내 보건소가 있다 하더라도 병원에 가서 병을 다스리기보다는,  집에서 대개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했던 것이다. 
 
생각하면, 우리 집 주치의는 어머니셨다. 자식을 무려 구남매나 낳은 어머니.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처럼 많은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아플 때마다,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 하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그 자식들의 건강을 위해 봄이면 탱자를 따서 말렸다가 보관해 두고 급하면 탱자열매를 만병통치약처럼 쓰셨다.
 
더구나 탱자가 없을 때는 팔팔 끓인 물에 누런 설탕을 타서 먹이곤 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흑설탕물을 먹으면, 감기 같은 것이 뚝 떨어지곤 했다. 
 
a 내 마음의 열매

내 마음의 열매 ⓒ 김찬순

▲ 내 마음의 열매 ⓒ 김찬순

요즘 같이 병원이 많고 약이 많은 살기 좋은 세상에 이런 이야기는 너무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나에게 탱자나무는 어머니의 사랑을 상기시키는 나무이다. 앉으나 서나 자식들이 아플까 걱정하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나도 그 어려운 시절, 이유 없는 병으로 마을에서 죽어나간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그렇게 유식한 분도 아니었지만, '동의보감'에 나오는  민간요법 등을 많이 아셨다. 그래서 마을에 아이들이 아프면, 아낙들이 어머니에게 찾아와 이것 저것 자문할 정도셨다. 어머니가 정성껏 달여주던 약으로 그 이후 나는 웬만하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건강한 몸으로 살아왔다. 

 

아무튼 탱글탱글 울타리에 열린 탱자 열매가 내 건강을 지켜준 나무였다. 지금 생각하니 탱자나무는 고마운 어머니와 같은 나무인 것이다.

 

a 해독에 좋은 탱자

해독에 좋은 탱자 ⓒ 김찬순

▲ 해독에 좋은 탱자 ⓒ 김찬순

탱글탱글한 탱자가 공처럼 매달린, 가시가 빼꼭한 탱자울타리 숲에는 새들이 날아와 재줄재줄 노래를 불러댄다. 가시가 뽀쪽한 그 좁은 가시 사이로 새들은 잘도 들락거린다. 어미 새는 어린 새들을 돌보면서, 새끼들을 위해 더욱 깊은 가시 속에 따뜻한 둥지를 짓는 듯 하다.

a 푸른 탁구공처럼

푸른 탁구공처럼 ⓒ 김찬순

▲ 푸른 탁구공처럼 ⓒ 김찬순
 
2008.06.07 13:13ⓒ 2008 OhmyNews
#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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