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TV 속 세상을 구하다

장기 불황에 정국 혼란... 판타지 속 이야기 동경

등록 2008.06.18 12:24수정 2008.06.1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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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기름 값, 껑충 뛰어버린 물가에 국민들 허리가 휘청거린다. 재협상 요구에 귀 막은 정부 때문에 촛불을 든 국민들의 시름도 깊어진다. 그런데 299명의 국회의원들은 6월 한 달 동안 일도 하지 않고 총 90억 원의 월급을 타갔다고 하니, 난세가 따로 없다.

헌데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고 했건만, 지금까지 도통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영웅이라도 '짜잔' 하고 나타나 치솟는 물가와 기름 값을 잡아주고, 부자들이 부당하게 취하는 이익을 서민들에게 돌려주고, 쇠고기 재협상을 성사 시켜 줄 순 없을까. 물론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게다가 옳은 해결책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꿈꾼다, 영웅의 등장을. 그래서 영화와 드라마는 영웅을 만들어낸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기에 통쾌하면서도 때론 허탈하다. 요즘 들어 부쩍 TV와 스크린을 종횡무진 하는 영웅들은 현실과 서민들의 삶을 어떻게 대변하고 있을까. 드라마와 영화 속 그들의 활약을 들여다보자.

'의적' 일지매, '자객' 최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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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과 함께 조선 최고의 의적으로 꼽히는 일지매. 그가 떠난 자리엔 항상 붉은 매화 잎이 남아 있다. SBS 드라마 <일지매> ⓒ SBS

지난달 21일 첫 방송된 SBS <일지매>(연출 이용석)는 조선 후기의 도적 일지매의 영웅담이다. 부패한 양반들의 집을 털고, 붉은 매화 한 잎을 남겨두고 사라지는 일지매의 활약을 그린다. 용이(이준기)가 일지매로 변신한 뒤엔 시청률이 20%를 훌쩍 넘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15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용석 PD는 "새로운 한국의 영웅을 만들어 시청자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기획의도에서도 "못된 놈들을 향해 통쾌한 복수를 해보자.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속은 후련하지 않을까"라고 밝히고 있다. <일지매>를 통해 세상에 복수하는 통쾌함을 맛보자는 뜻이다.

비슷한 뜻을 품고 새롭게 등장한 영웅도 있다. 바로 최칠우. 17일 첫 방송된 KBS <최강칠우>(연출 박만영)는 낮에는 조선 의금부의 하급관리인 나장으로, 밤에는 불의를 응징하는 자객으로 변신하는 칠우(문정혁)의 활약상을 그린다. 칠우는 '조선왕조실록'에 강변칠우로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다.


<최강칠우> 역시 <일지매>와 마찬가지로 '한국형 영웅'을 그리겠다는 포부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제작발표회에서 <최강칠우>의 백운철 작가는 "시대가 어려울수록 세상은 영웅을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라며 "<최강칠우>는 조선시대 서민들과 밀착한 칠우를 각색해 한국형 영웅으로 그려냈다"고 밝혔다.

현실의 영웅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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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의 실존 인물을 다룬 드라마 <최강칠우> ⓒ KBS

영웅을 그린 드라마는 과거에도 얼마든지 많았다. 가까운 예로 <불멸의 이순신>, <주몽> 등이 모두 영웅 드라마였다. 그런데 <쾌도 홍길동>으로부터 <일지매>, <최강칠우>로 이어지는 최근의 영웅 드라마들은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정사에서 야사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쾌도 홍길동>, <일지매> 등은 사극 형식이면서도 실제 역사와 관계없는 가상의 공간을 바탕으로 한다. 즉 영웅 드라마가 점점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문원 평론가는 "예전엔 약간 비튼 형식이긴 해도 현실 영웅을 그린 <인간시장> 같은 드라마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엔 현실 영웅주의가 발현될 여건이 못 되다 보니 현실성이 사라지고 있다"며 "예전에 비해 현실적인 희망이 옅어진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엔 10년 동안 지속돼 온 경제 불황, '촛불 정국'의 국면들이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분석이다. 이 평론가는 "10년 동안 경제 불황에 시달리면 문화가 자폐적으로 흐른다. 현실에 기초하지 않고 동떨어진 판타지를 즐기게 된다"고 덧붙였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상황, 대답 없는 정부를 향한 촛불의 외침은 우리 국민을 현실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국민들은 가상의 영웅을 찾는다. 70분 동안 영웅의 활약에 빠져들다 보면 시름을 잠시 잊는다. 그러나 다시 TV 속을 빠져나온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다. 통쾌함은 잠깐이고, 뒤에 남은 허탈함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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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


허탈함 뿐이라도 상관없다면, 히어로물 영화도 있다. 여름을 맞아 다양한 할리우드 영웅들이 출격을 기다리고 있다.

슈퍼히어로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이 5월을 지배했다면, 이제는 헐크다. 지난 12일 개봉한 <인크레더블 헐크>는 녹색 괴물 헐크가 영웅으로 깨어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개봉 첫 주말, 북미박스오피스에서 <쿵푸팬더>를 물리치고 1위를 기록했다.

비록 헐크에는 밀렸지만, <쿵푸팬더> 역시 팬더를 주인공으로 한 '히어로물' 애니메이션이다. 이동속도 시속 30cm, 키 120cm에 몸무게 160kg인 초고도 비만 팬더 포가 쿵푸 영웅으로 거듭나 마을을 구하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대기하고 있는 작품은 <핸콕>. 주인공 핸콕(윌 스미스)은 슈퍼맨, 배트맨 등의 모든 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이자, 과격하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기피대상 1호'인 '까칠한 영웅'이다.

이들 중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은 누구일까. 영웅이 나타나면, 난세가 해결되기는 할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 PD저널 >(http://www.pdjournal.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 PD저널 >(http://www.pdjournal.com)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일지매 #최강칠우 #헐크 #영웅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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