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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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용(jingi88)등록 2008.07.07 20:51
서울 왕십리가 내 고향이다 보니 인근에 있는 청계천과는 남들보다 인연이 깊은 게 사실이다. 그만큼 애착이 많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6~70년대의 청계천은 솔직히 상쾌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골을 따라 흘러온 시냇물이 들녘을 지나며 개천이 되고 그 맑은 물에서 가재 잡고 송사리 잡고 멱을 감는 따위의 자연을 벗 삼은 추억은 없다.

필리핀의 허름한 슬럼가처럼, 뚝방을 빼곡이 감싸고 있는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날려갈 것만 같은 빈한한 판잣집들, 그 집들 한켠에 있는 오수 냄새의 진원지인 지저분한 공중화장실, 수동식 공중 펌프장, 그 속에서의 궁핍한 군상들, 그리고 그 수많은 집들에서 마구 쏟아내는 생활 오수와 온갖 부유물로 오염된 청계천 등... 사실 청계천 하면 떠오르는 기억은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흘러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그 판잣집들은 무참히 헐리고, 그곳 사람들은 성남과 난곡 등으로 쫓겨났고, 청계천은 콘크리트로 복개가 되었으며 그 위에는 흉물스런 고가도로도 만들어졌다. 그것을 아시아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식자들은 칭했다. 개발도상국의 상징으로 말이다.

그 당시 청계천은 서울의 문화 경제의 중심이었다. 시발점인 청계천 1,2가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등의 언론사와 삼일로 창고극장으로 대표되는 문화권과 각 은행의 본점이 밀집해 있는  금융의 심장이었고, 3가는 당시 우리나라 최고층이며 서울의 상징인 삼일빌딩이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고, 4가에는 세운상가로 대표되는 기계 통신 전자의 메카가 있었으며, 5~6가는 동대문시장과 평화시장을 중심으로 한 의류를 중심으로 한 경공업이 활황을 이루었고,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면 도깨비시장이라고도 명명되는 온갖 골동품 중고품을 취급하는 세계적인 중앙시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청계천은 서민의 애환이 담겨 있었고, 도소매 중소기업의 메카였으며 서울의 경제 문화의 근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한 청계천은 요 몇 년 사이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하늘을 막고 있던 괴물 같은 콘크리트 고가도로는 없어졌으며 탁 트인 하늘이 시원스러웠다. 그리고 수많은 자동차와 자전거와 오토바이 등의 무질서한 행렬은 보이지 않았고, 도로변에 너저분하게 쌓아져 있던 각종 가게 물건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는 희대의 인공천이 대신하고 있었다.

청계 고가의 구조물 노화에 따른 안전문제 해소, 주변 환경개선으로 산업구조의 개편과 강북 경제의 활성화, 역사 문화 유적 복원, 수변 문화 공간 활용, 그리고 친환경적인 도시 계발 등이 청계천 복구의 기본 취지였다. 무엇보다 자연하천으로의 복원을 내세운 것이 시민들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청계천은 말 그대로 천이어야 한다. 물이 없는 천은 천이 아니니까 말이다. 청계천이 하루에 필요한 물의 량은 약 12만톤이라고 한다. 그 물은 자양동 한강 취수장에서 길러와 정수, 소독을 하여 방류하고 모자라는 물은 주변 12개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지하수로 보충한다.  그에 쓰이는 금액은 전기료만 하루에 240만원이며, 인건비 기타 관리비 등으로 한 달에 5억7천만원 이상을 소비한다고 한다. 일 년이면 기본적으로 약 69억이 꼬박꼬박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금액은 서울시에서 제출한 국감자료에서 나온 것인데 최소한 적게 잡으면 잡았지 결코 부풀리지는 않았을 게다.

작년 대선 때 문국현 대통령 후보가 말하기를 청계천은 인공어항이라고 매우 쓴소리를 했다. 사실 정치적 입장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지만 그의 말은 경우에 틀리지는 않다. 자연하천 복원이란 기본 취지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인공천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물은 최소한 맨땅을 타고 흘러야 한다. 천의 원천이 어디이든 상관없이 물은 기본적으로 맨땅 위로 흘러야 자연천으로서 이름지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설령 흙탕물이라도 그 속에는 자생적으로 생명이 만들어진다. 바로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미생물과 수초도 생기고, 조그만 바위도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고, 이끼도 생기며 그렇게 생태계는 유지된다. 그리고 물고기도 그 생태계의 상위계층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의 바닥은 콘크리트이다. 양 옹벽과 바닥 삼면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위에 스라브만 치면 간단히 사각 관로가 되는 구조이다. 아주 간편한 토목 구조가 아닐 수 없다. 문국현이 말한 데로 인공어항이라고 불리어도 할 말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족관’이라고 비아냥을 들어도 변명하기 힘들 것이다.

청계천은 토목공사의 결정체이다. 조금 비약하면 천민자본주의의 부산물이다. 조금 억지를 부린다면 청계고가를 만든 개발도상적 계발논리를 환경과 문화를 인공 접목하여 발전시킨 진화된 계발 메카니즘의 생산물이다.  

도심을 흐르는 천은 자연이 준 선물이다. 이성계가 한양에 천도하기 전부터 수천년을 흘러온 청계천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겐 소중한 존재이다.

하지만 보존 방법의 차이에서는, 그 기본적 사고에서는 천양지차이다. 과거에는 치수라 하여 물을 잘 다스려야 치국평천하가 되었고 그러기 위해서 임금은 백성의 원성을 사며 수많은 노역을 들여 청계천을 관리하였지만, 현재의 청계천은 복원이란 미명 아래 부정할 수 없는 정치적 논리 개입과 관광자원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래 취지인 환경친화적인 복원은 애초부터 설정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인간들에게 온갖 곤욕을 치루어 온 청계천은 참으로 애처롭고 가엽다. 맑은 물과 물고기가 뛰놀던 그때가 언제였던가. 잘못 태어난 죄이리라. 이성계를 탓하랴, 박정희를 탓하랴, 이명박을 탓하랴. 언제나 본래의 모습을 찾을지 요원할 뿐이다.

황당한 공상일지 모르지만 이런 상상을 해본다. 먼 훗날 인간의 몰지각한 행동에 청계천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분노를 폭발시킨다. 물은 원인 모를 이유로 썩어들어가 괴질의 바이러스를 발생시키고, 장마비에 스나미처럼 물이 범람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속출하고, 심각한 펌프의 고장으로 물공급이 중단되고... 하여 종국에는 청계천과 서울은 본래의 청계천으로 복원시킬 것을 선언한다. 상상이지만 괴담처럼 다소 섬듯하다.      

어찌되었든, 청계천은 돌이킬 수 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수십년 후 어느 누가 서울시장이 되어 또 겁 없이 청계천을 어찌하겠다고 공약을 할 지 모르지만, 지금은 수정 보완하여 차선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관광보다도 환경을 우선시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생적으로 살아 숨쉬는 천을 만드는 것이 서울의 환경 구조를 향상시키는 것이며 우리 후손들에게도 조금은 욕을 덜 먹을 것이니까 말이다.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된 현재의 청계천은 결코 정답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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