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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미국은 그렇게 이루어졌단다"

[리뷰] 세르지오 레오네, 스크린에서 다시 만난다

08.07.13 13:04최종업데이트08.07.1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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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의 대표작 <옛날옛적 서부에서> ⓒ 서울아트시네마


총잡이들이 득세하던 '옛날 옛적' 서부. 그 서부에 이제 철로가 들어서기 시작하고 속속 도시화를 위한 건설이 진행중이다. 그 속에서 철도 재벌이 생기기 시작하고 서부가 점점 도시의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총잡이는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미국은 점점 자본주의 국가의 틀을 갖추게 됐고 마침내 부를 축적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는 추악한 범죄와, 정계와 범죄 조직의 커넥션이 숨겨져 있었다. '옛날 옛적' 미국은 그렇게 이루어졌고 그렇게 발전됐다.

이 미국의 옛날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7월 11일 시작해 8월 17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시네바캉스 서울'이 그것이다. 90년대 미국 독립영화의 상징이 된 할 하틀리와 얼마 전 작고한 시드니 폴락, 그리고 홍상수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옛날옛적' 시리즈를 만들었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1929~1989) 대표작 4편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옛날 옛날 미국'을 냉철하게 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스타덤에 올린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로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부로 떠오른 레오네는 <옛날옛적 서부에서>를 통해 미국이란 자본주의 국가의 탄생을 알리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를 통해 범죄와 그 속에서 이루어진 추악한 거래가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옛날 옛적 서부를 주름잡았던 총잡이들과 그 총잡이들의 시대가 막을 내린 후에 생긴 자본주의의 물결, 그리고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범죄 조직들의 암투. 세르지오 레오네가 '옛날 옛적'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영화는 단 두 편이지만 그의 대표작들을 정리해보면 결국 '옛날 옛적의 미국'을 냉철하게 다룬 감독이라는 결론이 나올 만 하다. 이렇게 말이다.

"옛날 옛날에 미국이란 나라가 있었어. 이 나라는 한동안 총을 찬 남자들이 왕 노릇을 했지만 언제부턴가 철도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돈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서 총잡이들은 스스로 총을 놓았지. 그들은 총 대신 연장을 들었고 그래서 미국이란 나라는 커졌어. 헌데 전쟁이 나고 경제가 어려워지니면서 위험이 생겼지. 그래도 미국은 커나갔어. 뒤에는 아주 나쁜 친구들이 사람을 죽이고 술을 몰래 팔았거든. 그렇게 해서 미국은 유지된거란다…."

<옛날옛적 서부에서>는 서부 시대의 종말을 그리고 있다 ⓒ 서울아트시네마


서부극하면 으레 영웅의 모습을 보이는 총잡이가 나와 악당을 해치우고 매력적인 여인과 로맨스를 벌이는 내용을 생각할 수 있지만 레오네의 영화는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악당을 해치우기는 하지만 주인공은 정의와는 거리가 먼, 단순히 현상금에만 신경쓰는 인물이다. 대체 누구의 편인지도 모르겠다.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대표적인 캐릭터다.

이런 그의 서부극 비틀기는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를 거쳐 1968년에 만든 <옛날옛적 서부에서>로 이어진다. 레오네는 정의의 총잡이 역을 주로 맡았던 헨리 폰다를 악역인 프랭크 역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옛날옛적 서부에서>는 철도가 개설되고 도시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서부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철도재벌인 모튼과 그의 밑에서 일하는 살인청부업자 프랭크(헨리 폰다), 프랭크를 노리는 정체불명의 하모니카 사내(찰스 브론슨), 그리고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된 후 남편이 못다 이룬 도시화를 이루려는 질(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총잡이 사이안(제이슨 로바즈)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프랭크는 땅을 차지했던 질의 남편을 죽였고 하모니카 사내는 복수를 위해 프랭크를 죽이려한다. 모튼은 철도재벌이 되었지만 목발이 없이는 절대 움직일 수 없고 이 때문에 프랭크에게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이 남자들의 싸움 사이에서 질은 자신의 땅을 지키려한다.

영화 속에서 질은 도시화를 통해 스스로의 신분을 격상시킨다. 과거 매춘부였다는 소문이 돌았던 질은 남편이 했던 일을 하면서 점점 신분이 상승되는 모습을 보인다. 철도 건설을 통해 조금씩 자본가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게 질이다.

그 속에서 총잡이들은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모두 떠난다. 프랭크는 하모니카 사내에게 죽임을 당하고, 모튼의 철도를 급습했던 샤이안은 중상을 입으면서 하모니카 사내에게 혼자 떠날 것을 부탁하고 쓸쓸히 세상을 떠난다. 하모니카 사내 또한 마을을 유유히 떠난다.

이들이 살았던 마을은 달라지고 있었고 이제 더 이상 서부는 총잡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서부는 이제 총보다 돈이 더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옛날옛적 서부에서>는 어떻게 보면 서부시대 또는 서부극 장르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영웅의 면모를 지니던 총잡이들이 물러가고 대신 그 자리에 사업가가 들어서며 '영웅'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추악한 거래로 지탱된 미국

금주법 시대의 미국을 그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 서울아트시네마


그렇게 해서 자본주의 체제를 갖춘 미국은 곧 성공의 꿈에 부푼 젊은이들의 도전 무대가 된다. 하지만 성공의 꿈을 이루기란 그리 쉽지 않다. 젊은이들은 조금씩 회의를 느끼면서 범죄에 빠져든다. 아편을 피우고 살인을 일삼기 시작한다.

1920년대 미국은 경제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주법을 통과시킨다. 그러나 이 금주법은 밀주를 일삼고 정치꾼들과 손을 잡으며 활동하는 범죄 조직의 힘을 더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레오네가 1984년에 만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바로 이 시절을 배경으로 만든 것이다.

의리로 뭉쳐진 5명의 친구들이 결국 누군가의 배신으로 하나둘씩 죽고 주인공 누들스(로버트 드 니로)는 30여년간 자신이 친구를 죽였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소년이 범죄자, 살인자가 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범죄의 늪에서 살아남아야했던 1920년대의 미국이 이 영화를 통해 보여진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이처럼 미국의 정통 장르인 웨스턴을 뒤집으며 그 속에서 미국의 역사를 반추했고 그를 통해 미국의 발전 뒤에 감춰진 추악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레오네는 이런 모습을 잔악하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선율에 담겨진 옛날 이야기는 불편한 진실마저도 알 수 없는 슬픔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다.

'옛날 옛적'을 떠올리며 엉뚱한 생각을 하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옛날 옛적' 3부작으로 제정 러시아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89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그는 자본주의에 맞선 사회주의의 탄생 이야기를 '옛날 옛적 러시아에서'라는 이름으로 영상에 담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덧붙여 만약 세르지오 레오네가 살아있다면 '옛날 옛적' 4부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감히' 해 본다. 이렇게.

"옛날 옛적 아시아에 한 작은 나라가 있었어. 그 나라는 군인들이 지배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따랐지. 군인들은 물론 그 나라를 살렸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을 처치하며 목소리를 완전히 억압했어. 그러면서 자신들의 '산성'을 쌓았지. 그러다보니 권력은 고립됐고 끝내 지도자는 자기 내부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어.

그런데 얼마 안 가 다시 군인이 실권을 잡았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조용했단다. 오히려 그때를 그리워하는 인간들도 있어.어쨌든 사람들의 피로 이 나라는 올림픽까지 열게 되었단다. 그 뒤에는 물론 미국이란 나라도 있었고 말이야."

덧붙이는 글 '시네바캉스 서울'에서는 '옛날 옛적' 시리즈와 함께 <석양의 무법자>, <석양의 갱들>을 국내 최초로 오리지널 복원판으로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
세르지오 레오네 옛날옛적 서부에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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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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