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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기자들, 어떻게 홈런 날렸나

[스포츠도 '트렌드'다 ①] 마니아들 지지 얻는 '스포츠 1인 미디어'의 매력

08.08.04 18:36최종업데이트08.08.0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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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야구팬들은 금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한국방송공사(KBS)에서 금요일마다 프로야구 야간 경기를 중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케이블TV를 통해 프로야구 전 경기를 생중계로 볼 수 있다.

과거 야구팬들은 스포츠 신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야구면에 그날 경기의 선발 투수를 비롯해 타격·홈런·다승·평균자책점 순위가 모두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한국야구위원회(KBO)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특정 선수의 개인 기록은 물론이고, 심지어 '요일별 타율'까지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이렇듯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다양해지면서 스포츠는 하루가 다르게 전문화·세분화되고 있다. 전문가 수준의 마니아들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들은 기존 매체의 틀에 박힌 상보 기사보다는 좀 더 세밀하고 정확한 분석, 심층적인 취재, 혹은 아련한 추억을 건드리는 '1인 미디어'의 기사에 더욱 열광한다.

팬들을 열광하는 1인 미디어 기사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스크롤 압박? 깊이만 있다면 OK!

다양한 각도의 심층 취재가 돋보이는 <스포츠춘추>의 박동희 기자는 과거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 네이버 화면 캡쳐


'1인 미디어'의 가장 큰 특징은 깊이에 있다. 언제나 마감 시간에 쫓기고 타 매체와 속보 경쟁을 해야 하며, 지면 배분까지 신경써야 하는 기존 매체들은 양질의 전문적인 기사를 생산하는데 '태생적 한계'가 있다.

그러나 '1인 미디어'는 다르다. 따로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속보 경쟁을 할 필요도 없다. '스크롤 압박'이 느껴지는 장문의 기사를 썼다 해서 호통칠 국장님도 없다.

<스포츠2.0> 기자를 거쳐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스포츠춘추>라는 '1인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는 박동희 기자는 지난 7월 13일 KIA 타이거즈의 1번 타자 이용규에 대한 두 편의 기사를 발표했다.

분량이 정해져 있는 기존 매체라면 이용규의 최근 활약과 기록, 앞으로의 각오를 곁들인 짧은 인터뷰 정도로 기사 작성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나 박동희 기자의 기사에는 최근 몇 년 동안 이용규의 상세한 활약상, 타격 폼의 변화, 그에 따른 전문가·코칭 스태프의 코멘트 등이 모두 들어 있다.

이어진 이용규의 인터뷰 기사에서는 기술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라이벌'로 꼽히는 선수들에 대한 솔직한 심정, 트레이드 마크가 된 콧수염에 대한 여담이 이어진다. 엄청나게 긴 분량이었다.

보통 스포츠 잡지도 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길게 다루긴 어렵다. 하지만, 박 기자는 해냈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냉철한 분석, 이렇게 긴 기사가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며 반응도 좋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긴 호흡으로 치밀하게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한 결과, 이용규에게 관심이 있었던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만족할 수밖에 없는 기사가 탄생했다.

7월 27일 롯데 송송준 인터뷰 기사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상당히 긴 분량의 기사가 발표됐다. 지면의 한계가 없기에 질문은 집요했다. 그 덕에 송승준은 "현재 투구 밸런스가 좋지 않다"고 실토까지 했다.

이렇듯 '1인 미디어'의 기사를 읽으면 마치 고급 재료들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음식으로만 가득 찬 뷔페에서 식사를 하는 것처럼 든든한 포만감을 만끽할 수 있다.

시의성? 내용만 충실하다면 OK!

<야구의 추억>을 쓰고 있는 김은식 기자는 '시의성' 대신 '사람'과 '추억'을 택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사무실에서 울어버렸어요. 아, 낼모레 마흔인데, 스포츠 기사 하나가 날 울어버리게 만들다니(감기약, 다음)"

무슨 기사일까? 무슨 스포츠 기사기에, 다 큰 어른을 눈물 흘리게 하였을까?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의성이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이 기사를 썼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그 기사의 가치는 어떤 대통령의 지지율처럼 폭락해 버린다.

그러나 '1인 미디어'는 시의성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현 시기와 맞지 않는 생뚱맞은 기사라 할지라도 내용이 충실하다면 얼마든지 독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김은식 기자가 연재하고 있는 '야구의 추억'이 대표적이다. 김은식 기자는 프리랜서 작가이며 전문기자가 아닌 시민기자다. 하지만 특유의 문체와 아련한 추억을 건드리는 그만의 필력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그 팬들을, 독자들을 실컷 울리고 있다.

이런 김 기자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김 기자는 지난 2006년 5월 '근성의 데드볼 왕 김인식'이라는 '야구의 추억' 첫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다.

이 야구의 추억 첫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당시 편집기자는 "기록보다는 사람을 더 주요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좋았다"라면서도 "오래 전 이야기를 다루기에 사실이나 기록이 어긋날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확인하기 어려워 선뜻 주요기사로 올리기를 주저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뉴스엔 시의성이란 것이 있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김인식을 다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당시 '푸대접'의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 '야구의 추억'은 뉴스의 생명이라는 시의성을 무시한 기사였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4강 신화의 김인식 감독도 아니고, 왕년의 야구 스타 김인식을 굳이 2006년 5월에 재조명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시의성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왜소한 체구에도 몸을 사리지 않았던 김인식의 근성을 기억하는 팬들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고, 그 기사는 독자들의 많은 지지를 얻었다. 2년 후 두 권의 단행본과 함께 87편까지 이어진 장수 연재물 '야구의 추억'이 내딛은 첫 걸음이었다.

기사가 어렵다고? 마니아만 이해한다면 OK!

'인사이드 배팅(inside batting)', '스웨이(sway) 현상', '런치 포지션(Launch position)'….

위의 세 단어의 뜻을 아는가? 혹시 런치 포지션을 '점심먹는 자리'로 생각 하고 있지는 않은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을 써가며, 수많은 야구팬을 모으는 사람이 있다. 바로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윤석구의 야구세상'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윤석구 기자다.

기사의 난이도를 논할 때 보통 이런 말을 한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라", 그만큼 쉽게 쓰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윤 기자의 글은 어렵다. 중학생은커녕 다 큰 성인이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하지만 어려운 그의 글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7월 19일에는 '돌아온 최희섭,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기사를 썼다. 기사에서는 최희섭 부진의 이유를 분석하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조언을 한다. '하체! 직선이 아닌 회전이 되게 하라', '앞다리를 클로스로 내딛지 마라' 등 아주 구체적인 주문을 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타격 동작을 보여주며 자세한 설명까지 해준다.

그가 충고하는 내용을 보면 감독이나 코치 수준이다. 그리고 거만한(?) 그의 글에 대한 독자들의 극찬이 이어진다.

"야구 오래 본 야구팬이라고 자부하는데도, 많은 것을 배우게 해주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typeholic)"
"정말이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식견에 놀라고 갑니다.(페곡선)"

야구에 통 관심 없는 사람들이 보면 어려운 글이지만 야구 마니아들에게는 솔깃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 '윤석구의 야구세상'은 그런 마니아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기자와 독자의 소통, 1인 미디어 브랜드 가치 UP!

김형준 기자는 독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대표적인 '1인 미디어' 운영자다. ⓒ 네이버 화면 캡쳐


"메일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친절히 메일도 보내주시고, 이게 블로그 1인 미디어의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염군, 네이버 '박동희의 스포츠 춘추' 방명록)"

'1인 미디어'의 운영자들은 독자들과의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댓글이나 블로그 활동을 통한 기자들의 적극적인 소통은 기자와 독자의 거리를 한층 가깝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MLB+>를 운영하고 있는 김형준 기자는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대표적인 '1인 미디어' 운영자다. 김 기자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매주 수요일마다 이벤트를 열어 독자들에게 선물을 보낸다. 심지어 메이저리그 경기 공짜티켓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선물은 독자들이 후원해 주기도 한다).

또한, 자신이 작성한 기사에 독자들이 오타나 오보를 지적할 경우, 발 빠르게 수정하는 것도 김형준 기자의 소통 방식이다. 물론, 지적을 한 독자에게 댓글을 통해 "관심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멘트를 잊지 않는다.

<스포츠춘추>의 박동희 기자는 'Mail Bag'이라는 코너를 통해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해 직접 취재해서 기사로 생산하면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 상대 전적으로 본 대표팀'이라는 기사를 발표했다.

<스포츠조선> 야구부 부장 출신으로 <민기자닷컴(네이버)>을 운영하는 민훈기 기자는 파격적으로 '높임말'로 기사를 쓴다. '높임말'은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기사를 부드럽게 해줄 뿐 아니라, 독자들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담겨 있어 좋은 소통의 도구가 되고 있다.

'1인 미디어'의 적극적인 소통은 기자의 브랜드 가치와 신뢰도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기사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사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기존 기사에 싫증 느낀 독자들, 1인 미디어 찾는다

정윤수 스포츠칼럼니스트는 "기존 스포츠 매체의 기사는 틀에 박혀있지만, 블로그 등의 1인 미디어는 그 틀을 깼다"며 스포츠 1인 미디어의 인기 이유를 분석했다.

"독자들 이제 스포츠 일간지와 종합 일간지에서 쏟아지는 많은 스포츠 기사들 간의 차이점을 느끼지 못한다. 기존 기사들은 스트레이트·관전기 등 형식적인 틀에 박혀 있다. 하지만 1인 미디어의 글은 다르다. 그들만의 필력과 정보 수집능력으로 독자들에게 참신함을 준다."

정 칼럼니스트는 이어 "아직 초기 단계라 정론직필이 부족하다"며 1인 미디어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베스트·워스트 플레이어' 등의 재밌는 구성과 심도있는 분석은 잘 하지만,  'OO 감독 반성하라' 'OO 협회 각성해야' 등 기존 신문이 가지고 있는 '직필의 맛'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아직 그 특성을 살리지 잘 살리지 못한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피드백을 더 활성화해서 인터넷의 특성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칼럼니스트는 마지막으로 "기존 기사에 싫증을 느낀 독자들이 많기 때문에 1인 미디어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고 예측했다.

'윤석구의 야구세상' 블로그 대문에는 워렌 스판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타격은 타이밍이고, 투구는 타이밍을 뺏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스포츠 기사를 접하는 독자들의 눈높이는 아주 높아졌다. 지금은 독자의 수준이 한층 높아진 타이밍이다. 그리고 1인 미디어의 게릴라들은 그 타이밍을 정확히 뺏고 있다.

1인 미디어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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