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순이, 써니를 '선택'하다

<님은 먼곳에>, 단락 간 연결 불안하지만 수애 연기는 돋보여

08.07.27 12:05최종업데이트08.07.2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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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은 먼곳에>영화 포스터 영화의 주제가 함축되어 있는 포스터 ⓒ (주)타이거픽쳐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님은 먼곳에>는 (물론 그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가 만들어온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입니다.

<왕의 남자>(2005)의 흥행성적을 바탕으로 퇴락한 톱가수 최곤(박중훈)의 좌충우돌 스토리를 그렸던 <라디오 스타>(2006), 이리저리 치이며 살기 바쁜 40대 가장들의 일탈을 그린 <즐거운 인생>(2007)에 이은 작품이 바로 <님은 먼곳에>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이전 작품엔 공통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따스한 인간미가 흐르는 스토리 중심의 영화란 점, 영화를 끌어가는 데 있어 여성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사건을 일으키든, 사건을 처리하든, 모두 남성들의 판단과 행동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이준익 감독은 본인 스스로도 여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고 실토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소재로 '음악'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여성이 주연 맡았다는 점에서 전작과 달라

<님은 먼곳에>는 베트남 전쟁 속에 뛰어든 한 여인을 통해 인간미와 감동을 추구한다는 점, 음악이 등장한다는 점에선 전작들과 유사하지만 여성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선 전작들과 매우 다릅니다.

1971년을 배경으로 아내를 둔 채 홀연히 전쟁터로 사라져 버린 남편 상길(엄태웅)을 찾아 베트남까지 찾아간 순이(수애)의 활약은 이준익 감독이 여성배우의 역할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란 점에서 더 주목할 만합니다.

치열한 전쟁 중인 베트남이란 시공간적 배경, 여린 듯 시작해 억척같은 삶의 열망을 보여준 수애의 연기 등은 '이준익표 영화'란 프리미엄을 더욱 더 짙게 해줍니다.

불과 3편의 영화에 출연한 게 전부인 배우 수애가 영화 속에서 보여준 시골아낙 순이에서
위문공연단 전속가수 '써니'로 변신한 모습은  그녀가 보여온 캐릭터들에 비한다면 매우 파격적입니다.

순수함, 무지함, 격정적인 열정, 분노까지 장면마다 필요했을 순이와 써니의 모습을 짧은
필모그래피를 가진 여배우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처리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수애가 등장한 장면, 장면마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샷들이 예사롭지 않음은 조금만 집중해 보면 관객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가수지망생 출신이었고 영화를 위해 두 달간 보컬트레이닝을 받은 수애의 영화 속 노래 실력 역시 두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속에서 영화의 느낌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좋은 양념입니다. 특히 남편을 찾아 이동 중인 헬기 속에서 수줍은듯 원로가수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 가장 주제 함축적이며 아름다운 장면이란 생각입니다.

하지만, 장대한 스토리의 전개과정을 무리없이 스크린에 녹여내기에는 편집시간이 부족했던 걸까요?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었을까요?

시골 아낙 순이의 파격적인 위문공연단 참가, 위문공연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 그리고 이어진 험난한 남편 상봉 여정에서 보이는 장면 간의 단절이 자주 보입니다.
 
마치, 판이 튀는 LP판을 듣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장면과 장면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짧은 단막극을 보듯 끊어져 다음 장면에선 새로운 감정들이 느닷없이 생겨나는 과정이 지극히 작위적입니다.

장면 간 단절이 잦은 것은 단점

▲ 남편을 찾으러 나선 순이 과연 그녀는 왜 남편을 찾아나선걸까? ⓒ (주)타이거픽쳐스


'시골 아낙의 전쟁터 남편상봉'이라는 영화 전체의 스토리가 인과과정에 의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보다는 컷과 컷을 연결하고 사건과 사건을 묶어 이미 지정된 결론으로 달려가는 과정이다 보니 감독이 의도한 감동을 관객에게 강요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사실, <님은 먼곳에>를 한 장면 한 장면을 놓고 보면 어느 영화와 비교해도 뛰어난 장면이 많습니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 아름다운 순이의 마을 장면이나 격전이 벌어지는 전장 장면, 수애의 부대 위문공연 장면, 헬기 이동 장면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장면들이 연결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란 속담처럼 좋은 장면들을 만들고도 편집이 매끄럽지 못하다면 관객들은 장면이 넘어갈 때마다 단절감을 느끼거나 몰입에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감독이 원래 의도대로 베트남전쟁 그 한복판을 관통하는 한 여자를 통해서 사람과 사랑, 그것을 뛰어넘는 더 크고 위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장면과 장면 사이에 대한 좀더 섬세한 편집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영화의 주제를 모두 함축한 듯한 포스터를 보며 관객들이 영화 속에서 느끼는 감동의 무게가 결국은 이 영화의 흥행을 좌우할 거라는 생각입니다. 기존의 캐릭터에서 과감히 변신한 수애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한상철기자 수애 님은 먼곳에 이준익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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