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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부진한 타자, 그 이유 알려주마"

[스포츠도 '트렌드'다 ②] 야구 전문 블로거 윤석구씨 인터뷰

08.08.05 10:06최종업데이트08.08.0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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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의 수준은 언론을 따라간다. 근데 우리나라 야구 기사는 천편일률이다. 콩나물 하나로 수많은 음식을 만들 수 있는데, 전부 콩나물국만 만드는 셈이다. 나는 콩나물무침을 만들고 싶다."

스포츠 기자에 대한 독설로 인터뷰는 시작됐다. 2시간 동안 그가 뱉는 말들은 가식이 없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취재원 봤냐"고 되물을 정도로 거침없었다.

"혹시나 해서 한 달 동안 '타격이론'에 대해 글을 쓰는 블로거가 있는지 찾아봤다. 결국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자신감도 넘친다. "우리나라에서 타격이론에 대해 전문적으로 글쓰는 사람은 내가 거의 처음"이란다. 꼴불견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만도 하다.

그가 작년 8월 포털 사이트 '다음'에 '윤석구의 야구세상' 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한 지 1년 만에 방문자가 100만명이 넘었다. 스포츠 전문 블로그 중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글 하나로 하루에 5만이 넘는 방문자가 들기도 했다.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베스트 블로거 기자'에 선정됐다. 8만의 블로거 기자단 중 235명에게만 주어지는 명예다. 

'타격이론'이란 글로 야구 마니아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블로거 윤석구(33)씨를 만났다. 2일 오후, 수원의 한 커피숍이었다. 

"선수 출신? 사회인야구도 안해봤다"

블로거 윤석구씨. ⓒ 김귀현


"혹시 선수 출신인가?"

정말 궁금했다. 이승엽, 앨버트 푸홀스 등 내로라 하는 타자들의 타격 자세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때로는 조언까지 하는 그의 글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야구 선수는커녕 사회인 야구도 해본 적 없다. 그저 야구를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다. 난 6살, 글을 깨우칠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박찬호가 날리기 전부터, AFKN으로 메이저리그 중계를 봤다."

단지 야구가 좋아서였단다. 그러나 한국사람 치고 야구 좋아한다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4열 종대로 세워도 연병장 수십바퀴는 돌리겠다.

"재작년에 '제대로 된 야구 전문가가 되어보자'는 생각에 잘 나가던 직장도 때려 치웠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 직장까지 관뒀다니 아까 그 4열 종대에서는 열외다. 그는 현재 "간간이 음악학원 강습 아르바이트(기타를 잘 친다고 한다)와 원고료로 수입을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직장 다닐 때 수입의 30%도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타격 이론 연구에 투자한다.

"하루에 한두 경기는 꼭 챙겨보고, 한 선수의 타격 장면을 보통 1000번은 돌려 본다. 배트·상체·다리·보폭 모두 체크하려면 1000번도 부족하다."

1000번을 돌려본 끝에 한 선수의 타격 매커니즘이 정리된다. 그야 말로 '산고의 고통'이다.

보스톤의 야구팬들, 타격 이론의 세계로 이끌다

"2년 전 언젠가 메이저리그 보스톤 레드삭스 홈페이지의 팬 게시판을 봤다. 거기서 재밌는 광경을 봤다. 우리나라 팬들은 주로 기록만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데, 여기선 투구 폼과 타격 폼으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윤씨가 타격이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보스톤 팬 때문이었다. 윤씨는 "우리나라에 투구이론에 대한 글은 많은데, 타격이론에 대한 글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타자들이 투수보다 기복이 심한 것도 타격 폼 때문이다. 작년엔 잘 하다가 올해 갑자기 부진한 타자를 보면 대부분 폼이 바뀌어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동작 하나하나가 그 선수의 기록을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타격이론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그렇게 그는 미국의 타격이론 자료를 찾는 것부터 시작했다. 윤씨 말로는 "영어가 짧아서 애먹었다"고 한다. 생소한 용어 공부부터 했다. 마치 의대 신입생들이 신체부위 이름 먼저 외듯이 말이다. 그리고 선수들의 영상을 무한 반복으로 돌려보며 분석했다고 한다. 그리고 야구장에도 찾아갔다. 타자를 지도하는 코치들을 보며 공부한 이론에 적용했다. 

그렇게 정리한 그의 타격이론은 이제 블로그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타격 이론 책 쓰고 싶다"

윤석구씨의 블로그 화면. 사진을 곁들여 타격 이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 인터넷 화면 캡처


"우리나라에 아직 타격 이론에 대한 전문적인 책이 없다. 내가 최초로 책을 쓰고 싶었고, 그 준비 단계로 블로그를 택했다."

2007년 8월 1일, "책을 만들기 전 메모장을 하나 두고 싶었다"는 이유로 윤씨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블로그를 개설했다. "처음에는 나만 볼 내용들이라 어려운 용어들로 나만 알아볼 수 있게 썼다"고 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의 신기한 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간혹 포털 메인면에 걸리면서, '내 맘대로 글쓰기'는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생소한 내용이라 그런지 반응이 아주 좋았다. 전문적인 글이라 야구 마니아들이 많이 찾았다. 방문객이 점점 늘자 '막 써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대한 자세하고 쉬우며 심도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더 방문객이 늘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방문객이 늘었고 베스트 블로거 기사로 선정된 것도 이 무렵이다. "예전에 20분이면 쓰던 글을 지금은 독자의 눈이 무서워 최소 3시간에서 최대 8시간까지 걸려 쓴다"며 엄살도 부린다. 윤씨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고 이제 고정 독자가 1000명 정도 된다"며 살짝 으스대기도 했다.

대부분 야구 기사는 기록이 중요하다. 하지만 윤씨의 글에는 기록이 거의 없다. 이유를 묻자, 갑자기 윤씨의 언성이 높아졌다. 우리나라 야구는 너무 '기록 중심주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범으로 기자들을 지목했다. 

"야구는 기계가 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나라 야구 기자들은 너무 기록에만 의존한다. 어떤 선수가 부진하면 자세 거의 언급하지 않고, 기록만 운운한다. 가끔 언급하는 '배트 스피드'도 제대로 아는 기자가 전무하다. 왜 '배트 스피드가 느려졌고 빨라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래서 어떤 매체든 전부 비슷한 기사들만 나온다."

결국 "야구팬의 수준도 그저 기록만 믿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수준에 맞춰진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윤씨는 콩나물 하나로 다 똑같은 콩나물국만 만들지 않고, 콩나물무침도 만들고 아귀찜에도 넣을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지금 콩나물을 아구찜에 넣기 위해 '주루 이론'과 '수비 이론'도 공부하고 있다.

블로거들이여, '강심장'을 가져라!

블로거 윤석구씨 ⓒ 김귀현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악플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내가 선수 출신도 아니고, 일반인이기 때문에, '네가 뭘 안다고 설치느냐'는 악플이 대부분이었다. 블로그 활동을 하려면 '강심장'이 필요하단 걸 느꼈다. 이젠 절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리고 요즘엔 글만 보고 판단하는 독자들이 많아서 악플도 많이 줄었다(웃음)."

새로 블로그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더니 나온 답변이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었다.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한다. 블로그 활동을 하다보면 언젠가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그만큼 보상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만들겠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하기 때문에 슬럼프를 잘 견디고 있다. 이후 전문가로 성장해 기회가 된다면 야구 해설도 하고 싶다. '책을 내겠다' '이 분야 최고가 되겠다'는 등의 목적을 꼭 갖길 바란다."

"점점 고정 팬들이 늘고 있다"며 "조만간 오프라인 모임도 열 예정이다"라며 미소 띠는 윤석구씨. 그가 만들 한국 최초의 타격이론 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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