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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다시 만났을까? <멋진 하루>

전도연과 하정우의 이상적인 연기 조화가 돋보여

08.09.29 14:29최종업데이트08.09.2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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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다른 하루를 시작한 희수와 병운 희수는 도대체 왜 병운을 찾아갔을까? ⓒ (주)영화사 봄


희수는 왜 병운을 찾아갔을까?

헤어진 지 1년, 예전 남자친구 병운(하정우)에게 갑자기 나타난 희수(전도연)는 과거에 빌려준 돈 350만 원을 당장 갚으라고 큰 소리칩니다.

<여자 정혜>(2005)를 통해 지나치게 무던한 정혜(김지수)의 이야기로 그녀의 삶이
너무 답답하다는 관객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중독성 있는 메시지로 여성 마니아팬들을 만들었던 이윤기 감독의 새 작품 <멋진 하루>는 이렇게 시끌벅적한 헤어진 연인들의 채무 실랑이로 시작합니다.

스모키 메이컵에 앙다문 입술, 왠지 모르게 심술이 잔뜩나 있는 희수는 사실, 되는게 하나
도 없는 백수 노처녀입니다. 350만원을 받기 위해 찾은 경마장에서 만난 과거 남친 병운
역시 형편이 좋을 리 없는 백수입니다.

350만 원을 갚으라는 희수의 재촉을 견디지 못하고 성큼성큼 경마장을 나서면서 병운과 희수의 색다른 하루가 시작됩니다. 퓨전 재즈밴드 '푸딩'의 리더 김정범이 만든 1930년대풍 재즈의 배경음악이 감미롭게 영화를 감싸지만 역설적으로 350만 원에 한이 맺힌듯한 희수의 얼굴은 영화 중반이 다 되가도록 펴지질 않습니다.  희수는 도대체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는 걸까요?

당장 가진 돈이 없는 병운은 급한 대로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주위사람들에게 손을 벌립니다. 술집 접대부, 대학후배, 사촌형, 과거 스키강습생, 싱글맘 등 하루라는 짧은 시간, 병운은 돈을 빌리기 위해, 희수는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그녀의 소형차에 함께 타고 이들을 만나러 다닙니다.

'다이라 아즈코'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멋진 하루>는 제목부터 매우 역설적입니다. 연인이었지만 채무자와 채권자 신세인 두사람이 보낸 하루가 왜 '멋진 하루'였을까요?

이윤기 감독은 차갑게 식은 희수의 마음에 카메라를 고정한 채 시종일관 3자의 입장이 된
것처럼 그녀를 관찰합니다. 그녀가 갑자기 350만 원을 받겠다고 병운을 찾아나선 이유에서
부터 그녀의 잔뜩 찌푸린 얼굴에 이르기까지 감독은 별다른 테크닉을 사용하기보다는 그녀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희수 병운의 친구 싱글맘을 만난 희수 ⓒ (주)영화사 봄


카메라 앵글의 미세한 조정으로 희수의 변해가는 마음 표현해

앙각(仰角)으로 찍은 스크린 속 희수는 냉정함이 가득합니다. 그녀의 소형차 윈도우 밖에서 포착해 낸 희수의 얼굴은 이윤기 감독의 의도처럼 되는 일 하나없는 노처녀 희수의 현실을 대변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병운과의 하루가 시작되면서 카메라의 앵글은 서서히 변해가는 희수의 얼굴을 이번엔 부감(俯瞰)으로 포착해 냅니다.

오전에 시작한 두 사람의 일과가 일몰을 향해 변화하는 시점의 변화와 함께 카메라의 앵글조정만으로도 영화는 서서히 변해 가는 희수의 심리상태를 확연하게 보여줍니다.

<멋진 하루>는 사랑의 여운에 관한 영화입니다. 처음 만난 사랑도 있겠지만 두사람처럼 헤어졌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잠깐 다시 만나는 사랑도 있습니다. 이별의 이유가 있었다면 다시 만난 이유도 있습니다.

희수는 그녀의 차로 병운의 주변사람들을 만나가는 과정에서 과거 병운과의 처음 만남의 순간에서부터 시작해 그동안 나누었던 밀어와 느낌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됩니다. 영화는 분노와 미움으로 시작했지만 하루라는 물리적인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순간부터 소통과 치유라는 당초 감독이 의도한 궤도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아픔을 관조하며 속내를 스스로 드러나게 해 치료해가는 이윤기 감독의 방법은 이번에도 어김이 없습니다. 희수의 히스테리든, 병운의 고달픈 삶이든, 알고 보면 그속에는 그들만의 이유가 존재합니다. 격한 설전과 파국보다는 생활 다큐를 찍어 가듯 적당한 거리를 두고 두 사람을 지켜보는 이윤기 감독의 끈기가 이 영화의 힘입니다

하루 종일 헤매고 다니는 서울 도심 언저리, 종로의 뒷골목, 이태원의 언덕길 등엔 두사람의 채취가 남겨진 듯 차가운 뒷골목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며 어느 순간 관객들은 그곳을 다시 찾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연기인지 실제 모습인지 거의 구분하기 어려운 희수역 전도연의 연기와 일면 무능력해 보
이지만 통통 튀는듯한 하정우의 연기 역시 <비스티보이즈>의 부진을 만회하듯 합을 잘 이뤄 감독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담아냈습니다.

사실, 두사람 사이에 존재했을 법한 연기력의 격차를 잘 극복했다는 점에선 결국 전도연의 자연스런 리드가 하정우의 연기를 끌어안았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 합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 <멋진 하루>입니다.

멋진 하루 하정우 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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