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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바그 여신, 귀여운 할머니 되어 부산으로

[2008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심사위원장 맡은 안나 카리나

08.10.06 15:01최종업데이트08.10.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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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커런츠상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안나 카리나. ⓒ 성하훈


"나는 아주 매정해요. 그래도 화내는 남자는 없어요. 난 정말 예쁘니까."

장 뤽 고다르의 두 번째 장편영화 <여자는 여자다(1960)>에서 스물이 채 안된 안나 카리나(67)는 통통 튀는 목소리로 이렇게 노래했다. 이 영화는 그 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카리나에게 최우수 여우상을 안겨줬다.

카리나는 올해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부산을 찾았다.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월드 시네마' 부문에 자신의 신작 <빅토리아>를 들고 온 것. <빅토리아>는 캐나다 제작자에 의해 제작된 캐나다 영화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월드 프리미어로 첫 선을 보였다.

지난 1973년 칸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영화 <리빙 투게더>로 처음 메가폰을 잡은 카리나에게 <빅토리아>는 두 번째 영화다.  카리나가 배우에서 감독으로 옮아간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모든 과정을 몸으로 체득한 배우가 감독 일을 하는 것은 조감독의 경우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코코 샤넬이 지어준 이름 '안나 카리나'

덴마크에서 태어난 카리나가 영화에 입문한 것은 14세 때. 열 일곱 되던 해인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카리나는 그해 코코 샤넬을 만났고 코코 샤넬은 그녀에게 안나 카리나라는 예명을 선물했다. 당시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고다르가 카리나를 알아본 것 또한  바로 이 시기였다 한다.

누벨바그(195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젊은 영화작가들이 주도한 전위적 영화운동)의 악동 고다르와 <작은 병정(1960)>, <여자는 여자다>를 함께 한 뒤 1961년 두 사람은 결혼했고 1968년 이혼하기까지 <비브르 사 비(1962)>, <미치광이 피에로(1965)>, <알파빌(1965)> 등 누벨바그를 빛낸 역작들을 쏟아냈다. 카리나는 물론 고다르만의 배우는 아니었다. 자크 리베트, 루키노 비스콘티, 라이너 베르터 파스빈더와 같은 거장과도 함께 작업 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카리나는 누벨바그의 여신. 그녀가 온 몸으로 살았던 누벨바그 이야기는 지난 5일(일요일) 오전 11시 30분 해운대 그랜드 호텔 스카이 홀에서 펼쳐졌다. 외신기자를 대상으로 한 간담회였으나 무턱대고 들어가 봤다. 전날 열린 '프랑스의 밤' 행사에서 만난 카리나가 내게 살짝 귀띔해준 까닭이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카리나에게서 그 옛날 <비브르 사 비>의 나나, <국외자들(1964)>의 오디르, <미치광이 피에로>의 마리안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영화제의 바쁜 일정을 따라가느라 연회장에서 샌드위치로 늦은 저녁을 해결하고 방금 샌드위치를 삼킨 입술을 손수건으로 대충 닦아낸 뒤 기자들의 사진촬영에 거리낌 없이 임하는 카리나는 차라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할머니였다.

간담회에서 만난 카리나도 여기서 멀지 않았다. 미소를 한껏 머금은 얼굴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다는 카리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초대돼 영광"이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아주 작은 도시일 거라 예상했던 부산에 대해 이제 겨우 알기 시작했다"는 카리나에게 부산은 아름다운 도시였던 게 분명해 보인다. 간담회가 열린 22층의 스카이홀 창밖 풍경을 가리키며 "아름답다, 경치가 훌륭하다"는 말을 연발했던 것.

누벨바그의 여신, 부산영화제 첫 여자 심사위원장으로

안나 카리나의 두 번째 영화 <빅토리아>의 한 장면. <빅토리아>는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부문을 통해 월드 프리미어로 선보여졌다. ⓒ 부산국제영화제


자신이 부산국제영화제 역대 첫 여성 심사위원장이라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으나 만약 그렇다면 "영광이고 기쁘다"며 브라보를 외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해 카리나가 알고 있는 것은 칸·베를린·베니스의 뒤를 잇는 세계 4대 영화제라는 것.

영화제 13년 만에 '이 자리'에 오른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은 카리나는 그러나 한국영화를 단 한 편도 본 일이 없다. "(한국영화를)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볼 기회가 없었다"고.

전날 저녁 부산에서 처음 스크린을 통해 선보인 자신의 영화 <빅토리아> 상영 직후 만난 관객들의 연령대에도 무척 놀랐다고 했다. 태반이 스물도 채 안돼 보이는 '어린' 관객들이었기 때문.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기 위해 오전 9시부터 극장 앞에 모여드는 관객들의 열정, 총 315편의 적지 않은 영화가 상영되는 가운데 거의 모든 상영관이 만원사례라는 사실에는 입이 벌어질 정도라고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놀라운 영화제라 생각하는 이유다.
 
체코 기자에 따르면 프랑스 감독 브누아 자코는 '누벨바그가 모든 것을 시도했고 이룬 후에 영화인으로 시작하는 게 어려웠다'고 토로한 바 있다한다. 모든 것이 지나간 상태였던 까닭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는 것. 누벨바그의 아이콘으로서 안나 카리나가 느끼는 감회는 각별할 것이었다. 고다르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는 말로 입을 연 카리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부산을 찾은 안나 카리나. ⓒ 성하훈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끌로드 샤브롤, 프랑수아 트뤼포와 함께 시네마테크에 영화를 보러 다녔다. 고다르는 나보다 10살이나 연상이었고 나는 매우 젊었다. 프랑스에 갓 도착해 나는 불어가 서툴렀는데 고다르가 불어를 가르쳐줬다. <무셰트의 새로운 이야기>-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소설, 로베르 브레송이 <무셰트>(1967)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함-를 읽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누벨바그의 작가들은 로베르토 로셀리니, 페데리코 펠리니 뿐만 아니라 미국영화를 좋아한, 매우 클래식한 인물들이었다. 동시에 매우 혁명적이었다."

'누벨바그의 작가들이 새로운 영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나 누벨바그를 모방할 것이 아니라 가슴에 와 닿는 영화를 할 것'을 카리나는 조언한다. 고다르는 고다르고 트뤼포는 트뤼포라며.

누벨바그의 젊은 감독에 얽힌 재밌는 일화도 있다. 1950년대 말 누벨바그의 기수였던 끌로드 샤브롤은 쓰다 남은 필름들을 트뤼포와 고다르에게 건네주곤 했다 한다. 남은 필름은 25초 혹은 50초 길이로 매우 짧았으나 두 감독은 이것을 이어가며 작업했다는 것. 넉넉지 못 했던 형편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누벨바그에서 다른 영화로 넘어가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고다르의 영화도 했지만 동시에 파스빈더, 브누아 자코 들과도 작업했다. (누벨바그가 아닌) 다른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쉬웠다. 사람들은 누벨바그가 간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다르는 시나리오를 미리 쓰지 않았다. 늘 마지막 순간에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그러면 배우들은 현장에서 5분 만에 대사를 외워야 했다."

배우에게는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는 것. <비브르 사 비>나 <여자는 여자다>와 같은 영화는 '남자의 시선으로 여자를 보여준 전형적인 영화'라는 지적도 있었다. 카리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1980~1990년대 영화 속의 여성과는 적잖은 간극이 있다며.

누벨바그는 당시를 말하는 현대적 방법

"누벨바그 시절의 우리(여자 배우)는 현명하고 다이내믹한 여자를 연기했다. <쥘과 짐>(1961, 프랑수아 트뤼포)의 잔느 모로가 대표적이다. 나는 1973년에 이미 영화를 만든 '여자' 감독이다. 여자 감독이 흔치 않던 그때 내가 영화를 내놨을 때 사람들은 경계의 눈초리를 던졌지만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성을 보는 시선에도 물론 변화가 있었다. <미치광이 피에로>의 마리안은 남자를 사랑하면서도 그 남자를 죽이는 파격적인 인물이었다. 고전적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다. 나는 영화에서 옷을 벗은 일이 없다. 고다르 영화에는 직접적인 누드가 등장하지 않지만 누드를 상상하도록 만든다."

고다르를 좋아하는 취향이 각 나라마다 다른 것도 흥미롭다고 한다. 카리나에 따르면 이탈리아 팬은 <미치광이 피에로>, 브라질 팬은 <알파빌(1965)>, 미국 팬은 <여자는 여자다>, 독일 팬은 <비브르 사 비>를 좋아한다고. 카리나는 이것이 '감정의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누벨바그는 당시를 말하는 '현대적 방법'이었으나 '감정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것.

안나 카리나의 두 번째 영화 <빅토리아>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한 번 물어봤다. 덴마크 출신의 카리나가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고다르는 자신의 첫 영화 <네 멋대로 해라(1959)>에 출연해줄 것을 부탁했으나 카리나가 고사한 일화에 대해서.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에서 내게 제안한 것은 진 세버그의 역할이 아니었다. 조연급으로 영화 속에서 옷을 벗어야 했는데 나는 옷을 벗지 않겠다며 거절했다. 고다르와 마침내 만난 것은 영화 <작은 병정(1960)>에서였는데 내가 출연한 미셸 드빌의 영화 <오늘밤 아니면 절대로(tonight or never, 1960)>를 고다르가 본 뒤의 일이다. <작은 병정>을 제안 받았을 때 나는 정치적 연설 같은 건 할 수 없다고 망설였으나 고다르는 내게 말했다. '내가 하는대로만 따라오면 돼'."

하나 더. 고다르는 불어 발음이 어눌한 여자 배우, 즉 불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외국인 여자 배우들과 작업하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일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누가 있을까. 진 세버그가 있고 제인 폰다가 있고… 나머지는 내가 거의 연기했으니까(웃음). 나는 그러나 고다르의 대변자가 아니라 확언 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특별히 관심을 갖는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 카리나는 역설로 대답했다.

"나는 지금 작품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 내가 본 작품들이 매우 흥미로웠다는 것만 말할 수 있다. 나머지는 (영화제가 끝나는) 금요일에 밝히겠다."

카리나는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인 것이다.

안나 카리나 누벨바그 부산국제영화제 P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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