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15) 구체적

― ‘구체적으로 말하면’, ‘갈등을 구체적으로 풀어나가는’ 다듬기

등록 2008.10.11 18:45수정 2008.10.1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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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구체적으로 말하면

 

..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라시아의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라시아 문화를 점진적으로 받아들였던 스칸디나비아 동남아시아보다 훨씬 더 고립되어 있었다 ..  《존 아일리프/강인황,이한규 옮김-아프리카의 역사》(이산,2002) 18쪽

 

 “유라시아의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不拘)하고”는 “유라시아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었으나”로 다듬습니다. ‘점진적(漸進的)으로’는 ‘조금씩’이나 ‘차근차근’으로 손보고, ‘고립(孤立)되어’는 ‘동떨어져’나 ‘홀로 떨어져’나 ‘갇혀’로 손봅니다.

 

 ┌ 구체적(具體的)

 │  (1) 사물이 직접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도록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추고 있는

 │   - 사물의 구체적 발현 / 구체적 모습 /

 │     묘사는 추상적인 대상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방법이다

 │  (2) 실제적이고 세밀한 부분까지 담고 있는

 │   - 구체적 사례 / 구체적 근거 / 구체적 대안 / 구체적 경위를 밝히다 /

 │     구체적인 내용 / 구체적으로 말하다 / 구체적인 부분까지 논의하다

 ├ 구체(具體)

 │  (1) 사물이 직접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도록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춤

 │  (2) 전체를 구비함

 │

 ├ 구체적으로 말하면

 │→ 낱낱이 말하면

 │→ 좀더 덧붙여 말하면

 │→ 하나하나 따져 본다면

 │→ 그러니까

 └ …

 

 어떤 모습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보여주는 일을 가리킬 때 ‘구체적’을 넣곤 합니다. 어떤 일을 낱낱이 어떻게 한다고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도 ‘구체적’을 넣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이라는 낱말이 들어가는 자리마다 ‘조금도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두루뭉술해지고 어설프게 되며, 뜬구름을 잡는다는 느낌입니다.

 

 ┌ 하나하나 살펴본다면

 ├ 꼼꼼히 들여다본다면

 ├ 차근차근 짚으며 돌아보면

 ├ 낱낱이 헤아리고 살피면

 └ …

 

 다른 ‘-적’붙이 낱말도 우리 말투를 두루뭉술하게 합니다. 느낌이 흐려지게 합니다. 또렷함을 가시게 합니다.

 

 “사물의 구체적 발현”이란, “구체적 모습”이란, 또 “추상적인 대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일이란, 그리고 “구체적 사례”와 “구체적 근거”란 무엇일까요. “구체적 대안”과 “구체적 경위”는 어떤 이야기를 나타낼까요. “구체적인 내용”과 “구체적인 부분”처럼 적으면서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하나하나 살펴볼 일입니다. 꼼꼼히 들여다볼 노릇입니다. 차근차근 짚으면서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낱낱이 헤아리고 살피면서 알맞춤하게 쓸 우리 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물이 환하게 나타난다면 환하게 나타난다고 적습니다. 낱낱 모습이 어떠한가 궁금하다면 낱낱 모습을 알려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생각으로만 어렴풋한 대상을 또렷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자리라면, 또렷하게 보여주면 됩니다. 보기든 까닭이든 낱낱이, 하나하나, 차근차근, 또릿또릿 들어 보여야지요.

 

 손에 잡히는 대책, 눈에 보이는 대안, 쉬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을 주고받으면서 우리 앞에 놓인 걸림돌을 걷어내야 합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환하게 밝혀서 알려주어야 비로소 궁금함이 풀립니다.

 

ㄴ. 구체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

 

.. 김기석 씨가 담담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 갈등을 구체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에 두 사람이 그 얼마나 많은 나날들을 힘들게 보냈을까? ..  《리혜선-코리안드림》(료녕민족출판사,2001) 131쪽

 

 북녘에서 펴낸 《조선말 대사전》(1992)을 들여다보니 남녘 국어사전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을 실어 놓습니다. 뜻풀이는 두 가지가 달립니다. 첫째, “현실적으로 존재하며 물질적으로 확정될수 있는(것)”, 둘째, “막연하지 않고 뚜렷하거나 자세한(것)”.

 

 남녘이나 북녘 모두 두루 쓰는 ‘구체적’입니다. 남녘이나 북녘 모두 이 말투를 걸러내거나 다듬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널리 쓸 만하다고 느끼니 다듬을 마음을 보이지 않는 한편, 국어사전에 떡하니 실어 놓을 테지요. 두루두루 쓰일 만하니 두루두루 쓰면서 책이고 신문이고 방송이고 이 말투를 넣을 테지요.

 

 ┌ 그 갈등을 구체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에

 │

 │→ 그 갈등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과정에

 │→ 그 갈등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 그 갈등을 차근차근 풀어가는 동안

 └ …

 

 따지고 보면, 남녘과 북녘 모두 이와 같은 말투를 쓰자고 하니 그대로 써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겨레 어느 쪽에서도 말썽거리로 삼지 않는데, 구태여 애쓰고 힘쓰고 시간 들여서 다듬거나 걸러낼 생각을 해 보아야 무슨 쓸모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차근차근 가다듬어 봅니다. 하나하나 곱씹어 봅니다. 우리한테 가장 알맞는 말투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우리 삶과 넋과 마음과 문화를 고이 실어 놓을 만한 말투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가꾸고 돌보고 북돋워 나갈 말투가 무엇인지를.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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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8.10.11 18:45ⓒ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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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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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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