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8과 8899

[주장] 중학생 시기만큼 중요한 때가 없다

등록 2008.10.19 15:03수정 2008.10.2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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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일요일, 천년 고찰 부석사를 품고 있는 서산의 도비산에 올랐다. 잘 닦여진 임도를 돌다가 전망대에서 눈앞에 펼쳐진 황금색 풍광에 압도되고 말았다. 인구당 한 평씩 돌아간다는 수천만 평의 땅, 여의도의 수십 배에 달하는 넓이로 오백 미터 상공에 올라야 다 볼 수 있다는 천수만 A,B지구 간척지가 온통 황금빛으로 눈부셨다. 멀리 크고 작은 섬을 품은 바다와 보기 드문 조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올해는 태풍의 피해도 없고 오랜 태양빛을 머금어 풍년이 들 듯하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한 셈이다. 농작물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가뭄을 이겨낸 농부의 부지런함이 알곡마다 배어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세상의 모든 일이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생각이다. 흔히 ‘자식농사’라고 말하는 교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벼의 한해살이를 곰곰 생각해보면 인생의 축소판이란 생각이 든다. 소금물에 담가 골라낸 알찬 씨를 모래와 황토를 섞은 모판에 뿌리는 일이 출산이라면 아기의 첫니처럼 예쁜 싹이 돋는 시기는 영,유아기에 해당할 것이다. 한 뼘씩 연초록으로 자라는 모판이 초등학교라면 모내기는 중학교에 해당하지 않을까 한다. 이후 김을 매주고 물관리를 적절히 해주는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모는 뿌리를 내리며 당당한 벼로 성장한다. 과정 하나하나에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있다면 풍년이라는 아름다운 노년을 기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면서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하듯이 한 톨의 쌀이 되기까지 88번의 손을 거치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 쌀미(米)를 풀이하면 八十八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모든 과정이 다 소중하지만 ‘결정적 시기’라는 말이 있듯이 한 사람의 틀이 만들어지는 아주 중요한 시기가 있다. 뿌리를 내리는 모내기가 그것이다. 27년을 교단에 서면서 깨달은 것은 중학교 3년이 바로 이 시기라는 생각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성격, 생활태도, 공부습관 등 성인의 틀이 중학교 때에 거의 결정된다.

 

 문제는 초등학교 때에 적극적이던 부모의 눈길과 손길이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이시기에 소홀해진다는 점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이미 늦다. 뜬모를 만들어놓고는 김매기와 물관리에 정성을 다한다고 풍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성적만해도 고등학교 입학성적이 졸업 때의 성적과 큰 차이가 없다. 고입성적은 중학교 3학년 성적이라는 점에서 중학교 성적이 대학에 가는 성적인 셈이다. 생활태도 역시 중학교 때에 형성된 것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중학교 3년 동안 한 인간의 틀이 결정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면 학부모들은 자녀를 대뜸 사교육으로 몰아갈 생각부터 한다. 중요한 것은 성적보다도 기본기를 잘 익히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부하는 태도, 방법이나 삶의 가치에 대한 생각 등 교육에 대한 총체적인 집중이 이 시기에 이루어져야 한다. 좀더 정확히 지적하자면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한 사람의 틀이 거의 결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의 6-3-3 학제를 5-4-3으로 개편해야 아이들의 성장 속도에 맞지 않을까 한다. 

 

 1948년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46.8세였으나 2006년에는 79.1세로 증가해 OECD 평균 78.9세보다 높아졌다. 이런 추세라면 20년 후엔 1백세를 넘길 전망이며 심지어 지금의 10대는 150살을 넘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9988과 8899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사는 것이 전자라면, 88세까지 구질구질(99)하게 사는 것이 후자라는 뜻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이런 삶의 질적 바탕이 중학교 시기에 거의 결정된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가운데 중(中)이 아니라 무거울(重)으로 바꾸어야 할 정도로 사회의 교육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시기는 성적만이 아니라 생활습관 등 전인적 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뿌리만 제대로 내린다면 그 후의 성장은 크게 어렵지 않다. 안타까운 것은 부모와 학생은 물론 교사와 교육당국까지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9988로 살 것인가? 아니면 8899에 그칠 것인가? 중학교 3년으로 100년을 보장한다면 한 번 전력투구할만하지 않겠는가?  

 

2008.10.19 15:03ⓒ 2008 OhmyNews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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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이데아의 그림자라면 이데아를 찾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런 꿈마저 없다면 삶의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개혁이나 혁신이나 실은 이데아를 찾기 위한 노력의 다른 어휘일 뿐일 것이다. 내가 사는 방식이 교육이고 내 글쓰기가 문화라고 한다면 특히 그런 쪽의 이데아를 찾고 싶다. 물론 내가 찾는 것이 정답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정답보다는 바른답을 찾고 싶다. 이것이 내가 기자가 되고자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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