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만든 물방울 보석을 보셨는지요?

[포토에세이] 이슬(16)

등록 2008.10.23 16:18수정 2008.10.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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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끼의 삭과 이슬 작은 이끼들의 삭이 가을비를 머금고 있다.

이끼의 삭과 이슬 작은 이끼들의 삭이 가을비를 머금고 있다. ⓒ 김민수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가을 가뭄 끝에 내린 비라 오랫동안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온 듯 반갑습니다. 어느 노(老) 시인의 고백이 종일 나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하루 세 끼 밥 먹을 수 있으니 고맙다. 새 봄이 와 꽃 볼 수 있으니 더욱 고맙다. 아직 살아 있으니 고맙다. 행복하고 고마운 것은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a 청미래덩굴 덩굴손에 잡힌 가을비 청미래덩굴의 덩굴손에 잡힌 가을비, 그냥 보내기에는 섭섭하였는가?

청미래덩굴 덩굴손에 잡힌 가을비 청미래덩굴의 덩굴손에 잡힌 가을비, 그냥 보내기에는 섭섭하였는가? ⓒ 김민수


다 말라 비틀어져 쓸모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가을비를 붙잡고 아직도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안하다. 너의 존재 이유를 망각해서…….'

세상에 정말 쓸모없는 것이 있을까요? 아니, 벽돌, 보도블록과 시멘트 틈에 피어나는 들풀부터 별 볼 일 없다고 천대당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쓸모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 혹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 세상은 타락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a 이끼의 삭에 맺힌 가을비 비이슬이 촛불 하나 밝힌 듯 피어있다.

이끼의 삭에 맺힌 가을비 비이슬이 촛불 하나 밝힌 듯 피어있다. ⓒ 김민수


가을비가 만든 비이슬, 그가 어둔 숲 속에 불을 밝힌 듯 피어났습니다. 이미 떨어진 낙엽들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그들이 있어 숲이 새 생명을 얻으니 그들은 숲의 빛이요, 생명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그것은 예수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은 지천으로 넘쳐나는데 빛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붉은 네온사인 가득한 서울의 밤하늘을 보면 죽음의 빛을 보는 듯합니다.


a 벼룩나물 이파리에 맺힌 비이슬 벼룩나물이 꽃대신 물방울 보석을 피웠다.

벼룩나물 이파리에 맺힌 비이슬 벼룩나물이 꽃대신 물방울 보석을 피웠다. ⓒ 김민수


그러나 어느 노(老) 시인의 고백처럼 '세 끼 밥 먹을 수 있으니, 새 봄이 와 꽃 볼 수 있으니, 아직 살아 있으니' 고마운 날입니다. 꽃을 피운 후 씨앗도 맺지 못했던 벼룩나물의 아픈 상처의 자리에 가을비가 만든 물방울 보석이 담겨 있습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빗방울 하나면 충분한 행복, 빗방울 하나 속에 들어 있는 충만한 행복,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니 내 안에도 행복의 빛이 피어납니다.

a 이끼의 삭과 비이슬 비이슬, 완전함의 상징이기도 한 원모양의 맑은 모습니다.

이끼의 삭과 비이슬 비이슬, 완전함의 상징이기도 한 원모양의 맑은 모습니다. ⓒ 김민수


밋밋하던 풀들이 빗방울을 송골송골 맺고 있으니 더는 밋밋하지 않습니다. 모두 다 특별합니다. '원' 혹은 '동그라미'는 '완전함'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끝과 시작이 한 점인 동그라미를 닮은 비이슬이 있어 모든 것이 특별하게 보입니다.

내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가는 것, 그것은 아주 큰 것에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아주 작은 변화로 말미암아 내 삶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작은 일 하나하나가 이렇게 소중한 것이구나 새삼 느끼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 <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슬사진 #가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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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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