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샘'에게 보내는 편지

[서평] 다니얼 고틀립의 <샘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 2008.10.24 17:44수정 2008.10.2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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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남자는 집 앞 가로등 아래에서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 뒤늦게 귀가하던 이웃집 사람이 그를 발견하고 함께 찾아주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이웃도 거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이 그 남자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열쇠를 본 곳이 어딘가요?"

"현관문 근처요."

이웃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런데 왜 여기 가로등까지 나와서 찾고 있는 거죠?"

"여기가 더 밝잖아요!"

 

벼랑끝에서 찾은 인생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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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문학동네 ⓒ 이명화

▲ 책표지 문학동네 ⓒ 이명화

윗글은 <샘에게 보내는 편지>(대니얼 고틀립/이문재 김명희 옮김) '인생지도를 찾는 법'이란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의 저자 대니얼 고틀립은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필라델피아 공영방송국의 인기프로그램인 <가족의 목소리> 장기 진행자이며 정신의학 전문가다. 그는 33살, 결혼 10주년 되던 해, 아내에게 줄 선물을 가지러 가던 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2주 후였다. 그가 제퍼슨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자신의 인생이 끝났고 생각하며, 전신마비로 생을 살고 싶지 않아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편이 낫다고 여기고 있을 때였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한밤중 중환자실을 방문한 여인이 있었다. 목뼈가 부러져서 두개골에 나사못을 촘촘히 박고 누워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데다 소변이 흘러나오는 그의 고통이나 절망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여인은 이렇게 말했다.

 

"간호사에게 들었는데요. 혹시 심리치료 하시는 의사분이세요?"하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여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렸고 그 외로움과 상실감으로 죽을 것 같다고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한참동안 얘기 했다. 오직 자신의 고통이 전부였고, 고통받는 자신을 도와주기만을 바랐지만, 그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처한 비관적인 처지도 잊을 수 있었고 고통도 잊었노라고, 사고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신에게 살아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용기를 내라고 설득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낯선 사람의 도움 요청이 자신에게 살아야한다는 깨달음을 줬다고. 그리고 그는 '그날 밤 그녀와 나는 서로를 살려내었다'고 말한다. 또 한 번은 엉덩이에 종기가 나서 종국에는 수술까지 해야 했고 40여일 동안 꼼짝 못하고 엎드려 있으면서 절망상태에 빠져 있을 때, 친구가 병문안을 왔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하자, 친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댄, 자네가 누구인지보다 자네가 무엇을 돌보느냐가 더 중요해." 결국, 그는 타인을 위해 뭔가를 할 때 그는 다시 삶을 움켜쥘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 내가 아직도 세상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날 밤, 그는 꿈을 꾸었다. 하나님이 꿈속에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에게 세상의 일부를 맡길 테니 잘 돌보도록 하거라. 그것이 네게 부여된 임무다. 더 크게도, 더 좋게도 만들지 말고 그저 잘 보살피기만 하거라. 때가 되면 내가 다시 가져갈 것이니, 그때 너도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맡긴 세상의 일부는 겨우 '3mm'밖에 안 되었다. 자신은 정신과 의사이고 책도 썼고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게 다 하찮아 보이냐고 항의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은 온 세상의 3mm, 그때나 지금이나 앞으로 딱 3mm,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는 꿈속에서도 온 세상의 3mm를 돌보는 것이 큰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꿈에서 깨어난 그때부터 그는 삶을 평화롭게 받아들였노라고 고백했다. 그는 이후 손자 샘에게,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우리가 인생지도를 찾으려 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밝은 곳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는데, 하지만 더 어두운 곳으로 가야 할 때가 있다'고 말이다.

 

휠체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다

 

그는 교통사고와 그것으로 만들어진 고통스럽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인생지도를 찾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대니엘 고틀립 박사는 이 책을 통해 장애를 안고 살아오면서 겪은 고통과 절망, 30여 년간의 심리치료 상담과 라디오상담 프로그램 진행을 통해 쌓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법, 부모와 자식이 서로 돌보는 법, 학교생활 하는 법,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 자신의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는 법, 인생의 지도를 찾는 법 등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낮은 눈높이로 자신이 깨달은 것들에 대해 들려준다. 잠언 같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앞으로 더 많이 잃고, 더 많이 아플거다. 네가 상실감으로 아플 때, 그 아픔을 잊게 해줄 대체물을 찾지 않기 바란다. 그 아픔도 다른 모든 감정들처럼 그저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아픔을 겪으면서 역경에 대처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근심을 다스리는 법까지 알게 되면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길 것이다. 아픔의 건너편에서 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상처가 치유되는 건 기적과 같다. 상처는 원래 스스로 아물게 되어 있다. 우리의 허기진 자아가 '고통아, 이제 그만 사라질 때도 되었잖니'하고 재촉하지만 않으면 된다.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라고 믿기만 하면 된다. 고통도 감정이다. 그 어떤 감정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 법이다... 네가 입은 상처가 아무리 깊더라도, 그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네 안에 있다.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고통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보살펴주면 된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샘,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그냥 다른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명심해라. 네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네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세상의 모든 샘에게

 

이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은 하나의 잠언 같다. 아직도 인생에 대해 미숙한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이 책 전체에 흐르는 주제는 무엇일까. 사랑과 상실, 고통,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부끄러움, 잃어버린 인생의 지도를 찾는 법, 절망을 딛고 일어서기 등등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 책의 중심에 흐르는 주제는 결국, 사랑이고 믿음 아닐까.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사고를 겪고 난 뒤 극심한 우울증과 절망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살 만한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이혼을 겪어야 했고, 아내와 누나, 부모의 죽음을 차례로 겪으면서 좌절과 상실의 아픔 속에서 혼란을 겪어야 했던 대니얼 고틀립 박사. 그는 설상가상으로 사고가 일어난 지 20년이 되던 해에 자신의 딸이 낳은 손자 샘이 자폐증 진단을 받자 한 번 더 절망을 겪어야만 했다.

 

장애를 가진 아버지를 보살피며 살아온 딸이 이제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볼보며 살아갈 생각에, 그리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살아가야 할 손자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언젠가 손자가 자신의 글을 읽을 날이 오리란 희망을 갖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낮은 눈높이로 바라본 세상과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4년여에 걸쳐 32통의 편지로 완성했고, 책으로도 나오게 된 것.

 

혹시 당신은 지금 절망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다니얼 고틀립 박사가 절망의 끝에서 삶을 또다시 붙들었던 경험이 담긴, 절망을 이겨낸 자의 깊은 사랑과 통찰력으로 잔잔하지만 뜨겁고 무겁지 않게 들려주는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보시길. 세상의 많은 '샘'들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행복이 결코 많은 성취와 많이 가진 것 등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행복은 항상 다른 길모퉁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벼랑으로 오렴!"

"안돼요...무서워요."

"벼랑으로 오라니까!"

"안돼요...떨어지잖아요."

"벼랑으로 와!"

마침내 벼랑으로 가니, 그가 나를 밀었네.

"나는 날아올랐네." - <벼랑으로>

2008.10.24 17:44 ⓒ 2008 OhmyNews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문학동네, 2007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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