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왜 소년은 흡혈귀를 사랑하게 됐을까

화제의 영화 <렛 미 인>

08.11.15 12:10최종업데이트08.11.15 12:10
원고료로 응원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지네요. 수북하게 쌓인 눈에 시뻘건 피가 묻어나는 사랑이야기, 정말 색다르네요. 소년이 흡혈귀 소녀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그 설정만으로 상상력을 자극하지요. 흡혈귀 소녀가 소년을 물지는 않을지, 왜 소년은 흡혈귀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며 흥미를 돋우네요. 

수많은 영화제를 휩쓴 영화 <렛 미 인>(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 2008)의 이야기에요.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는 쉽게 맛보기 힘든 이야기에 돋보이는 색감이 더해져 보는 즐거움을 주네요. 거기다 생각할 거리를 묵직하게 던져주기 때문에 더욱 놀랍네요.

외톨이 오스칼과 흡혈귀 이엘리의 사랑이야기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는 온통 하얗고 조용한 어느 마을, 12살 오스칼(카레 헤레브란트)은  아이들 괴롭힘에 시달리는 소년이지요. 외톨이 오스칼은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칼을 들고 찌르는 연습을 하지요. 애꿎은 나무를 찌르다가 돌아보니 여자아이 이엘리(리나 레안데르손)가 말을 거네요. 둘은 또래이기에 쉽게 친해지고 친구가 되지요.

소녀가 흡혈귀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심상치 않아지죠. 살인을 한 뒤 피를 가져와 이엘리를 먹이던 남자는 끝내 들켜서 잡히지요. 이엘리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피를 구하게 되고 마을은 벌집 쑤신 듯 뒤숭숭해지죠. 오스칼은 이엘리가 흡혈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감정이 미묘해지죠.

소년 소녀가 외톨이와 흡혈귀라는 설정은 영화를 더욱 애잔하게 해요. 유일한 친구이자 사랑하는 상대를 만난 그들의 모습은 관객 감정을 잔잔히 건드리지요. 이엘리의 말을 듣고 아이들이 함부로 굴지 못하게 하려고 본때를 보여주는 오스칼, 몇 백 년 만에 친구가 생긴 이엘리, 둘은 어떻게 될까요.

▲ "넌 안 춥니?" 입김이 절로 나는 추운 날씨, 반팔의 소녀가 나타나네요. 소년이 맞추지 못하는 루빅 큐브도 맞추고 말벗이 되어주죠. 소년은 얼마나 소녀가 반갑고 고마웠을까요. ⓒ 영화사 구안


애틋한 공포에 안쓰러운 사랑을 더하면?

이 영화를 보면 애틋하면서 서늘하고 콧날이 시큰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져요. 이엘리가 흡혈귀이기에 피가 튀고 잔인한 장면들이 나오죠. 이러한 장면들은 무섭고 끔찍하다기보다는 소년 소녀의 감정을 더 애처롭게 해줘요. 흥건하게 핏빛이 입술에 묻어 있는 이엘리가 징그럽게 느껴지지 않고 그들의 만남을 안타깝게 하는 요인이 되어 영화의 감동을 크게 하지요.

보기만 해도 추워 보이는 풍경도 영화를 으스스하게 하는 장치로 큰 몫 하죠. 영화 내내 눈이 가득 쌓인 배경을 보면 절로 입김 나올 거 같아요. 게다가 주인공 오스칼은 창백하고 빼빼마르기까지 하죠. 괴롭힘을 당하면서 친구 없이 방과 후 활동을 하는 오스칼의 상황은 안쓰러움을 자아내죠. 물에서 혼자 에어로빅을 추면서 웃는 모습은 왜 그렇게 슬프게 다가오는 걸까요.

그러한 오스칼에게 이엘리는 우정이고 사랑이죠. 아직 어른이 아니기에 성이 노출되지 않아 오히려 아름답지요. 루빅 큐브(정육면체의 각 면을 같은 색깔로 맞추는 장난감)을 같이 하고 벽 사이로 모스 부호로 소통하는 그들은 서로 그리워하며 비밀을 공유하는 한 쌍이 되지요.

▲ 살인을 해도 괴물이어도 괜찮아 입가에 피가 잔뜩 묻은 소녀가 소년을 껴 안네요. 유일하게 온기를 주는 소녀이기에 소년은 사랑할 수밖에 없지요. 소녀가 살인을 해도 흡혈귀여도. ⓒ 영화사 구안


넌 누구니? 난 너야!

몇 가지 짚어볼 게 있어요. 먼저 영화 이야기를 이끄는 이엘리의 존재에요. 이엘리는 오스칼이 억눌렀던 욕망이지요. 영화에서도 "넌 누구니?"라고 오스칼이 묻자 이엘리는 "난 너야"라고도 하지요. 오스칼이 괴롭히는 아이들을 죽이고 싶어 하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죽이고 있다는 걸 이엘리는 알고 있지요. "너도 내가 될 수 있어"라고 얘기하며 이엘리는 오스칼이 감추고 있는 욕망을 드러내게 하지요.

이엘리를 오스칼이 불러들였다는 것은 여러 대목과 상징에서 나와요. 혼자서는 칼을 찌르면서 가상복수극을 벌이지만 현실에서는 괴롭힘에 대들지 못하지요. 그렇기에 억눌린 욕망을 대신해줄 누군가가 필요하지요. 지금까지 있었던 사람을 죽인 뒤 피를 빼갔던 살인사건 기사를 오려두고 모은 오스칼은 흡혈귀를 바라고 있었지요. 그렇기에 오스칼이 증오가 가득 찬 말을 내뱉으며 칼을 찌르는 연습을 할 때 이엘리는 나타나는 것이죠. 

흥미로운 것은 반드시 오스칼이 불러들여야만 이엘리가 들어올 수 있다는 거예요. 이엘리는 "날 초대해줘. 난 초대해야 들어갈 수 있어"라는 말을 하지요. 영화 제목 <렛 미 인>에서도 알 수 있듯 안에서 초대를 해야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죠. 흡혈귀들이 허락없이 방에 들어가게 되면 온몸의 구멍에서 피가 솟구치며 죽는다는 설정이 되어있지요. 결국 괴물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불러들인다는 것을 보여주죠.

▲ "돼지처럼 꽥꽥 대봐." 아이들이 오스칼을 돼지라고 놀리고 괴롭히자 오스칼은 혼자서 복수 연습을 하지요. 칼을 들고 "돼지처럼 꽥꽥 대봐."라고 소리지르는 오스칼이 안쓰럽지요. 그의 증오는 이엘리를 불러들이죠. ⓒ 영화사 구안


왜 소년은 흡혈귀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까

어둠은 사람을 약하게 하고 외롭게 하지요. 이엘리는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라는 말을 하듯이 사람은 밤에 약해지고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요. 외톨이 오스칼에게 밤은 쓸쓸하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일 뿐이죠. 흡혈귀나 괴물도 친구가 되어준다면 상관없지요. 또래 아이들은 못살게 구는데 반해 흡혈귀가 위로하고 벗이 되는 과정은 씁쓸하면서도 의미심장하네요.

오스칼에게 이엘리는 살인을 저지르는 흡혈귀가 아니라 삶의 온기를 주는 유일한 동무지요.  오스칼은 맥쩍은 자신을 웃게 해주는 이엘리를 깊게 사랑하지요. 그 사랑은 괴물이라도 괜찮고 살인까지 용납할 정도로 진해요. 그에게 괴물보다 살인보다 친구가 더 중요하니까요. 오스칼이 얼마나 외로웠고 힘들었을지 느껴져 마음이 짠하네요.

오스칼이 이엘리를 불러내듯이 공포와 괴물은 스스로 불러내고 만드는 것이지요. 괴물은 이미 우리 안에 있지요. 공포는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꺼내는 것이죠.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무서움은 나타나지 않지요. 사람들은 서로 믿지 못하고 증오함으로써 자신들의 괴물을 꺼내게 하지요. 괴물이 무서운 이유는 그 괴물이 자기 안에 있기 때문이죠. 내 안의 욕망과 두려움이 투사된 것이 괴물이죠. 

아무리 억눌러도 욕망은 바깥으로 튀어나와 괴물로 드러나게 되지요. 그 괴물을 끌어들일 정도로 뒤틀리고 외로운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한국 사회가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괴물들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혐오하는 괴물들이 이미 우리 안에 있었고 껴안지 못한 욕망이라는 것을 곱씹어봅니다.

이 영화는 외톨이 소년과 흡혈귀 소녀의 사랑이야기이고 잘 만들어진 영상만으로 충분히 영화관을 찾아 볼 만하지요. 한걸음 더 나아가 여러 생각할 거리까지 던져주는 좋은 영화지요. 왜 소년은 흡혈귀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까 고민하게 되네요. 아이들 장난에 오스칼 얼굴에 상처가 생기듯이 너무 쉽게 둘레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지는 않나 돌아보게 되네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씨네21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렛미인 스웨덴영화 괴물 흡혈귀 외로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