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미포> 마지막 방송을 끝내고...

김경래 KBS 경제과학팀 기자(전 <미디어포커스> 기자)

등록 2008.11.18 11:04수정 2008.11.18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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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들의 반발에도 결국 KBS <미디어포커스>가 지난 15일 마지막 전파를 탔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 밤 11시 30분부터는 새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비평>이 신설됩니다. 전 <미디어포커스> 제작진이었던 김경래 기자의 '<미포>를 향한 마지막 소회'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a  KBS PD와 기자들이 11일 낮 여의도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 폐지 및 명칭변경에 반대하는 공동집회를 열고 있다.

KBS PD와 기자들이 11일 낮 여의도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 폐지 및 명칭변경에 반대하는 공동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KBS PD와 기자들이 11일 낮 여의도 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 폐지 및 명칭변경에 반대하는 공동집회를 열고 있다. ⓒ 권우성

 

2006년 말쯤에 경제팀에서 <미디어포커스>로 발령이 났다. 시사보도팀으로 인사가 난 기자들을 팀장과 데스크들이 나눠서 배치하다가 <미디어포커스>로 들어간 거다. 당시 데스크를 맡은 김용진 선배가 전화를 했다. 사실 일면식도 없었던 선배다.

 

"김경래씨, 미안하게 됐다. 같이 고생 좀 해야겠다."

 

사실 김 선배는 나한테 좀 미안해 해야 할 거다. 2년 동안 정권 교체와 사장 교체를 겪고 결국 <미디어포커스> 해체까지 신난한 시간들을 지내야 했으니까.

 

내가 안 쓴 멘트가 들어가 있었다... "좀 심한 거 아닙니까"

 

첫 아이템을 제작하면서 깜짝 놀랐다. 삼성이 전직 출입기자들을 '신문의 날'마다 불러서 모임을 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아이템이 없어서 그냥 냈다. 그런데 반응은 당장 취재하라는 것이었다. 1주일 동안 삼성 관련 자료들과 씨름을 하다 보니 그럭저럭 볼 만한 아이템으로 나갔다. 아! 새삼 깨달았다. 나 자신도 취재 윤리에 대해 매우 둔감해졌구나. 기자 생활 5년 만에 나도 이제 구악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다.

 

공공기관운영법과 관련된 특집 아이템을 할 때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그 아이템은 사실 '오더'였다. 우리도 문제가 큰 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사 이기주의 방송'이라는 비판이 두려워서 보도하지 않고 있다가 위에서 좀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우리는 회의 끝에 아이템을 하기로 했고 대신 요구조건을 걸었다. KBS에 대한 반성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진정한 반성 없이는 욕먹기 딱 좋은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이런 멘트가 들어가 있다.

 

"87년 6월 항쟁의 주역들이 대거 참여한 참여정부가 공영방송의 틀을 전두환 정권시절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쓰지도 않은 멘트가 데스크 과정에서 들어가 있었다. 허 참. 데스크한테 좀 심한 멘트가 아니냐고 물었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노 정권을 전두환과 직접 비교하는 건 노 정권을 너무 비하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다! 나도 입사 5년만에 자기검열이 작동하기 시작한 거다. 살아있는 권력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서 보호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이 프로그램에 크게 화를 냈고 '전파 낭비'라고 비난했다.

 

마지막 방송에는 이병순 사장이 사원들의 출근저지를 뚫고 KBS로 들어오는 화면이 나갔다. 1회 때 방송됐던 KBS 선배들의 모습도 다시 전파를 탔다. 위에서는 물어본다. 이게 꼭 들어가야만 하는 화면이냐고. 무슨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있냐고. 결국 음악 작업을 하던 테이프를 꺼내서 다시 들고 올라와 다시 시사를 하고 논쟁을 벌였다.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MB OUT' 팻말 화면이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유인촌 장관이 인터뷰를 거부하는 모습이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이병순 사장 출근 저지 모습이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선배들 얼굴이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그게 대세에 무슨 지장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반대로 물어보고 싶다. 그게 들어가면 무슨 경천동지할 일이 생기냐는 말이다.

 

후배가 취재하고 제작해오면, 그 물건을 더욱 날카롭게 더욱 예리하게 만들어주는 게 선배들이 할 일이다. 후배들이 해온 물건을 무슨 위험한 폭탄이라도 되는 듯이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무디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선배들을 우리는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후배들이 모두 다 선배들만큼의 자기 검열을 스스로 하게 되면 우리는 모두 행복해질 것인가.

 

a  이병순 KBS 신임 사장이 지난 8월 27일 오전 청원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고개를 숙인 채 출근을 저지하는 '공영방송사수KBS사원행동' 직원들을 뿌리치며, 취임식이 열리는 여의도 KBS본사에 출근하고 있다.

이병순 KBS 신임 사장이 지난 8월 27일 오전 청원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고개를 숙인 채 출근을 저지하는 '공영방송사수KBS사원행동' 직원들을 뿌리치며, 취임식이 열리는 여의도 KBS본사에 출근하고 있다. ⓒ 권우성

이병순 KBS 신임 사장이 지난 8월 27일 오전 청원경찰들에게 둘러싸여 고개를 숙인 채 출근을 저지하는 '공영방송사수KBS사원행동' 직원들을 뿌리치며, 취임식이 열리는 여의도 KBS본사에 출근하고 있다. ⓒ 권우성

초라한 마지막 방송을 끝내고

 

토요일 <미디어포커스> 260회 마지막 방송을 녹화했다. 3~4명의 예전 제작진이 구경을 오고, 역시 3~4명의 외부 기자들이 취재를 왔다. 모두 울컥울컥 위태로운 분위기였지만 실없는 농담으로 꾸역꾸역 녹화를 진행했다. 녹화 도중 살짝 울먹이는 일도 있었지만 별 일 없이 녹화는 끝이 났다. 기념(?) 촬영을 하면서도 한두 명 눈물을 흘렸지만 역시 별 일 없이 끝났다.

 

어떤 인터넷 기자는 이 광경을 '꽃다발 하나 없는 초라한 종방'이라고 표현했다. 방송 내용도 지난 일들을 정리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내부적으로 이렇게 '막방'을 하는 것은 관뚜껑에 못을 박는 일이라는 논란도 있었다. 다음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새 제작진의 사기에 안 좋은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우리도 힘들었다. 아침점심으로 피켓팅(피켓시위)하고 하루에 두세 차례 회의하고 간부들 면담하고…. 제작도 삐그덕 삐그덕 원활하지 않았다. 이미 다른 프로그램에 발령이 난 상황에서 제작진들의 마음도 심란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이 방송은 우리 제작진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어서 이름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마지막 대답이었다. 폐지 과정과 이유를 시청자들에게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지난 금요일 저녁 보도위원회를 끝으로 천막과 피케팅을 접기로 했다. 제작진들이 다른 부서로 전출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동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두루뭉술하지만 제작 자율성을 일부 약속 받았다고 자위했다.

 

제작진들은 하나같이 이런 싸움을 해 본 적이 없는 풋내기들이었다. 결국 싸움에서도 졌다. 전략도 전술도 전망도 협상력도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자존심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당성만 가지고 싸움에 대처했다. 그동안 많은 오류와 패착이 있었다. 그 비난은 받아들이겠다. 다만 앞으로 일상적인 싸움을 계속해야 할 새 제작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 거라고 위안하고 싶을 뿐이다.

 

함께 힘든 시간을 이겨낸 모든 제작진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피케팅을 할 때도 천막을 칠 때도 술을 마시고 밥을 먹을 때에도 언제나 함께해준 선배 동료들에게도 눈물나게 감사하다. 후배들에게는 뭐라 할 말이 없다. 또한 어려운 순간 <미디어포커스>를 지지해 기자협회를 견인해준 모든 동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시청자들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게 없다. 싸움에서 패배한 장수가 무슨 할 말을 하겠는가. 그러나 게시판이나 이메일 등으로 아직도 격려를 아끼지 않는 관대한 시청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빠뜨릴 수는 없다. 상투적이지만 이보다 좋은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동안 시청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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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8 11:04ⓒ 2008 OhmyNews
#KBS #미디어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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