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금성교과서에 대한 좌편향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처음에 이 뉴스를 얼핏 들었을 때, 대한민국 교과서가 어떻게 좌편향이라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좌편향'이라는 말을 그냥 단어만 들으면 마치 금성 교과서는 자유시장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처럼 들리니까요. 하지만 놀라서 금성교과서를 직접 사서 보기도 했지만 아무리 봐도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교과서는 아니었습니다.
우선 용어부터 정리하고 가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좌'는 뭐고 '우'는 무엇입니까? 세계적 차원에서 거칠게 본다면 사실 '좌'는 사회주의 '우'는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라고 보면 됩니다. '사회주의'라고 해서 소련, 중국, 북한, 쿠바와 같은 나라만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이들은 사회주의 중에서도 마르크스-레닌주의 체제들이고요. 넓게 보면 사회민주주의(북유럽, 유럽 일부 국가) 까지 포함하는 범주입니다. 후자의 경우 중도좌파라고 하기도 하죠.
그런데 한국의 경우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맞이하면서 이 범주가 달라집니다. 반공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 사회주의가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잡혀가기도 하지만, 한국전쟁이라는 상처를 안고 있는 대중들에게도 '사회주의'는 쉽게 용납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제는 이론으로서 사회주의와 현실로서 사회주의는 좀 구분했으면 하는데 이론으로서 사회주의는 장단점을 따져서 장점은 취하고 단점을 버렸으면 합니다. 더불어 현실로서의 '사회주의'는 소련, 북한을 보시면 아시지만 사람을 위한다는 이상은 오간데 없고 당과 최고 지도자를 위한 국가가 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고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아픈 과거 그리고 우리의 입장에서는 현재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발전은 역사적 혹은 현실적 문제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개선해 나가야지 무조건 싸잡아서 “그건 안돼”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어제(4일) 100분 토론은 아마 일반인들로서는 토론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우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신지호 의원의 반대한민국적 교과서라고 하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안가시거나 이를 통과시킨 노무현 정부가 아주 막장이었다고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런데 이 근현대사 교과서 논란에는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교과부 국장님이 "역사학자
들이 아닌 비역사학자들의 문제제기만 받아들여서 역사학계가 서운해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라는 취지의 발언이 있었는데 이를 정확히 풀어드리면 현 교과서 논란은 기존에 '역사학계'가 쥐고 있던 교과서 서술권에 대한 '비 역사학계'의 도전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실 현재의 근현대사 교과서의 저자는 크게 두 부류의 분들로 나눠집니다. 역사학계의 교수님들과 현직 역사 교사들이시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학계의 최신 연구성과 반영이나 이론적인 부분들은 교수님들이 주로 하실 것이고, 현장에서 적용의 문제를 현직 교사님들이 주로 맞을 것입니다. 물론 이는 거칠게 구분한 것이고 실제로는 저자들 간에 치열한 논의 끝에 탄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후자라 해도 역사 교사 선생님들의 출신은 사학과(국사학과) 혹은 역사교육과 입니다. 즉 이 분들도 넓게 보면 역사학계에서 교육을 받으신 분들이죠. 즉 이론적인 부분 정확히 말하면 역사적인 평가의 부분은 역사학계의 의견이 관철되는 구조입니다. 이는 국정인 국사교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국정이다 보니 최종 편찬을 국사편찬위원회가 책임지고 보다 중립적으로 쓰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국사편찬위원회가 역사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인데 역사학계가 서술권을 지니는 것에는 다른 점이 없습니다. 다만 근현대사의 경우 검정이다보니 각 출판사마다 저자들에 따라서 다소 진보적인 내용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사실 이는 개인의 사상이라기보다는 역사학계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의견을 청취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역사학계도 연구자 개개인마다 학문적인 스펙트럼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교과서 문제에 있어서 개별 역사학자 단위에서는 비판이 있을 수는 있어도 학계전체적인 입장에서는 현재의 교과서는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고 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누가 이 역사학계의 서술권에 대해 비판하는가?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어제 논의에서도 등장한 '교과서 포럼'입니다. 이 단체의 위치를 정확히 이해시켜드리기 위해서는 단 한미다면 충분한데 대표적인 뉴라이트계열 단체입니다. 그럼 '교과서 포럼'에는 누가 참여하느냐? 일부에서는 역사학자가 없는 단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사실 역사학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학자들이 출신에 따라서 좀 구별이 되는데요. 크게 사학과(국사학과) 혹은 역사교육과 출신의 학자들과 비 역사학과 출신 역사학자들로 나눠집니다. 그럼 비 역사학과 출신의 역사학자는 누구냐? 역사라는 학문은 모든 학문에 있습니다. 즉 경제학과에 가면 경제사를 전공하신 분이 있고, 사회학과에 가면 사회사를 전공하신 분이 있고, 외교학과에 가면 외교사를 전공하신 분들이 있죠.
이 분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한 이영훈 교수님이 서울대 경제학과 한국 경제사를 전공하신 분이죠. 이 중 '교과서 포럼'을 이끄시는 분들의 많은 수가 경제학과 출신으로 (한국)경제사를 전공하신 분들이고 가장 중요한 축을 맡고 계십니다.(대표적인 분이 이영훈 교수)
그런데 이 문제가 단순히 역사학계와 경제사학계(경제학과 출신의 경제사 전공자분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시면 곤란합니다. 사실 역사학계와 경제사학계는 학문적으로 지난 수십 년간 논쟁을 지속해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식민지근대화논쟁'입니다.
굉장히 복잡한 논의인데 단순히 정리하면 역사학계의 입장은 '민족'에게 나쁜 영향을 준 식민지배는 잘못된 것이고, 일본의 식민 지배가 없었으면 자주적으로 조선(대한제국)은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내재적 발전론, 식민지 수탈론). 반면에 경제사학계는 자주적으로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은 가정일 뿐이고 식민통치가 조선의 근대화 특히 경제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었고, 감정적으로 보지 말고 인정할 것은(식민지배의 긍정성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사학계의 입장입니다(식민지 근대화론).
사실 이 식민지근대화논쟁의 치열한 공방전은 조선후기~식민지가 치열한 공방전이었는데 교과서 문제에서는 현대사가 더 초점이더군요.
근데 왜 이런 학계의 입장이 근현대사 서술과 관계가 있을까요? 역사학계와 경제사학계의 가장 근 역사적 평가의 차이는 기준으로 두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점입니다. 역사학계에서 역사적 평가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이라는 기준입니다. '민족'이라는 기준에서 식민지배는 나쁜 것이니까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현대사에서도 같은 민족인 북한은 비교적 포용을 할 수 있고 독재정권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습니다.
반면 경제사학계의 기준은 경제성장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입니다. 식민지 지배시기에도 경제는 성장했으니 긍정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고, 독재정부 시절 특히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긍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교과서 포럼'에서 만든 대안 교과서를 보면 자신들의 기술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기준들이 시장경제주의, 그리고 대한민국(정통성)입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한데 제가 보기에는 모든 대한민국의 정권을 정통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문제가 기존 시각과 달리 4.19를 부정적으로 봅니다(정부체제를 어쨌든 전복시켰으니).
자 이쯤 되니 두 학계의 충돌 지점이 보이시나요? '민족'을 기준으로 하는 역사학계와 '경제성장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사실 저는 아직도 이것의 정확한 개념이 안 잡힙니다마는...) 을 기준으로 하는 경제사학계의 충돌이 이 근현대사 문제의 원천적인 문제입니다.
그럼 왜 정권에 따라 달라지냐. 경제사학계쪽이 뉴라이트계열에 많이 참여하고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 뉴라이트 계열인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당연히 이들의 입김이 세졌습니다.
어제 토론을 보니 서울의 경우 교장 선생님들을 교육청에 불러다 놓고 나쁜 교과서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고 하는데, 뭐 정보만 주었다고 치더라도 최종 승인권자인 교장 선생님이 금성교과서를 선택하는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한 것 아닙니까?
교육감이 금성은 문제있다라고 하는데 이를 채택할 수 있는 교장 선생님이 누가 있을까요?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국공립이냐 사립이냐를 떠나서 교육청으로부터 많은 예산 지원을 받습니다. 즉, 괜히 교육청 거슬려서 예산 지원을 못 받는(통상적인 지원이야 못 없애겠지만 예를 들어 자기 학교가 국제고, 자사고가 되기를 원하는 학교이거나 낙후 시설물 교체와 같은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경우<대부분 해당될 것이라 생각되는데...> 교장 선생님들의 개인 의사와 내부 역사교사들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일단 금성은 선택 안 하는 것이 안전하겠죠(그런데 교육부는 정보만 주었지 바꾸라 한 적은 없다는 논리로 문제없다고 합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역사학계, 경제사학계 어느 일방이 무조건 맞을 수 없고 역사 서술의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일련의 과정들은 정권교체 이후 너무 일방적입니다. 다음 번 교육과정 개정 때 경제사학계 인사들이 참여해서 논의를 거쳐서 하면 충분한 일을 일방적으로 현재 근현대사 교과서는 문제가 있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실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나와 역사 해석이 다른 것입니다. 금성 저자 분들이 출판사 수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역사 해석이 있는데 자신의 동의도 없이 수정하는(자신의 의견과 다르게) 것은 학자적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교과부는 엄하게 출판사에 요구했습니다. 출판사야 정말 가운데 끼어서 죽을 맛이겠죠. 자신이 쓴 것도 아닌데 자신들은 좌파 출판사 이미지를 가지게 되고 저자들은 거부하고 교과부는 시정 지시 내리니. 뭐 사실 저자들이야 차라리 발행 정지를 내리면 그렇게 하라고 할 수 있지만, 장사를 하는 출판사야 정부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죠.
아마도 가장 애매한 피해자가 금성출판사 일 것 같네요. 이미 분위기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느낌인데요. 지금이라도 학문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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