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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하철 치한? 억울합니다

[리뷰] 일본 사법제도의 부조리 고발한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08.12.14 11:32최종업데이트08.12.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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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되었지만 일본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이다. 초만원 지하철. 덜렁대는 청년이 회사 면접을 보러가는 길이다. 모처럼 양복도 쫙 빼입었다. 아무래도 면접에 늦겠다 싶다. 마음이 급하다.

그런데 아차, 닫히는 문에 옷자락이 끼이고 말았다. 사람이 엄청 많고 비좁아 몸을 돌릴 수도 없다. 청년은 투덜거리며 옷자락을 빼내기 위해서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옷자락은 간신히 빠졌다. 터질 듯 꽉 차있던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청년도 한숨을 쉬며 내렸다.

늦었지만 그래도 면접은 봐야겠다. 서둘러 달려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꼭 붙잡는다. 뭐야 싶어 뒤돌아보니 웬 여학생이 양복 소매를 붙잡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멀뚱멀뚱 쳐다보는데 여학생이 벽력같은 소리를 한다.

"아저씨, 치한이죠?"

그 때부터 청년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확률 3%의 싸움 시작한 억울한 청년

아무리 내가 하지 않았다고 해도 형사들은 소리를 빽 지르고 겁을 준다. 문에 낀 옷을 빼려 했을 뿐인데 여자애는 자기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한다. 여자애 말은 꼬박 다 들어주면서도 청년의 말은 제대로 들을 생각을 안 한다. 무슨 말을 하든 비꼬고, 까고, 비끼려고 한다.

그냥 인정하면 약식 명령으로 끝내주겠다고,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모를 테니까 창피당할 일도 없을 거라고 유혹을 받았다. 하지만 청년은 정말 자기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혐의를 모두 부인한다. 그리고 감옥에 갇힌다. 엄청난 돈이 든다. 엄청난 맘고생을 한다. 억울해 죽겠다. 물론 여자애가 치한을 잡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다고.

그러나 불쌍한 청년의 절규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청년이 싸워야 할 정확한 상대는 여학생이 아니라 사법제도라는 국가권력이다. 사법제도는 공룡이 되어 청년을 희롱하고 괴롭힌다.

재판을 하려 하지만 통계상 무죄 확률은 3%다. 거기서 법의 환상이 여지없이 깨진다. 법정은 정의를 실현하는 곳이 아니다. 증거와 증언과 정황을 모아 판사의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에 의하여 죄의 유무를 결정하는 곳이다. 그것뿐이면 좋겠지만 무죄 판결에는 판사의 엘리트주의적 완고성, 편견, 관료의식, 권력과 이해관계가 영향을 미친다.

재판관은 전능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부조리하다. 빼앗긴 진실을 되찾고 싶어 헐떡헐떡 헤매다 청년은 문득 깨닫는다. 진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도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누구나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진실을 만들 뿐이다. 당신은 공룡과 마주하여 싸울 용기가 있을까? 청년은 싸운다.

주인공을 보는 것만으로 억울함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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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중한 것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만드는 것이다. 검사 측과 변호인 측 중에서 누가 더 그럴 듯한 진실을 만드느냐가 유·무죄를 가늠한다. 

면접관에게 잘 보이려고 빼입었던 양복 차림인데 재판관에게 잘 보이려 법정에 서니까 절로 기가 막히다. 그런 억울한 마음이 카세 료의 얼굴에서 폭발할 듯 실룩거리다가 바르르 떨리고 잠잠해지기를 반복한다.

불쌍한 가네코 텟페이를 연기하는 카세 료. 보는 것만으로도 억울한 마음이 전해져 사람 환장하게 하는 연기력이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이같은 방법으로 사법제도의 허점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화면에는 하얀색이 많이 나온다. 사람 뒤편 빈 공간은 하얗게 칠해져 있다. 유난히 휑하고 싸늘하다. 법정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자신을 빼고 남은 법정의 공간이 얼마나 엄청난 무게와 압력으로 다가오는지를. 법정의 음울한 공기와 수갑의 차가운 온도에 가슴 한 구석이 덜컥 내려앉는다. 공판이 거듭될수록 주먹이 쥐어지고 땀이 흥건히 찬다.

판결을 기다리는 순간에는 내가 가네코 텟페이인지 가네코 텟페이가 나인지 구별할 경황이 없다. 화면에서 뿜어지는 억눌린 울분에 숨이 막히고 혼이 빠진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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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수오 마사유키 카세 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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