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과 사회적 약자 살려야 한국경제 산다

[올해의 단어] 정부, '약자보호(법)정신' 최대 발휘해야 한다

등록 2008.12.17 12:01수정 2008.12.2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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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루오 I '교외의 그리스도' 소외된 동네사람들과 함께 하는 예수를 생각나게 한다. ⓒ Fondation G. Rouault 2008


난 요즘 몸이 편치 않아 어젠 감기약까지 먹고 일찍 잤다. 그런데 깨어보니 새벽이다. 이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지 벌써 1년이 돼 오니 참 세월이 빠르다. 그동안 1년 우리정치를 지켜보면서 아쉬움이 많아 '사는이야기'를 통해 몇 자 적는다.


이 대통령이 장로로서 보여준 기독교는 내가 배운 성서적 하느님과는 많이 다르다. 위에서 보는 관점과 아래서 보는 관점의 차이만큼 거리가 있다.

나도 전에는 기장교회를 다녔고 10년 이상 성서공부도 했다. 하지만 교회에 안 간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내 편견인지는 몰라도 예수가 만약 변장을 하고 한국에 온다 해도 그를 환영하거나 받아줄 교회는 적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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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철 I '얼굴' 캔버스에 유채 162×130cm 2006. 이 작가는 고뇌하는 인간의 얼굴을 잘 표현하고 있다. ⓒ 김형순


인간이 삶에서 고통과 번뇌, 좌절과 갈등이 있을 때 종교를 찾는 건 자연스럽다. 역설적 진리로 삶을 변화시키고 융합과 치유로 가는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는 종교의 본질이나 성서의 하느님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교회전통에 얽매여 아전인수식 해석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내가 교회에 나간 건 이 세상을 살면서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10년 이상 성서전공자와 공부를 했으나 신학자 본회퍼가 지적한 대로 '종교적 하느님'과 '성서적 하느님'이 엇갈린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구약은 하느님은 어떤 신인가를 신약은 예수가 어떤 분인가를 알려준다. 구약의 핵심은 '십계명'에 있고 신약의 핵심은 '산상수훈'에 있다. 그 공통점은 '약자보호정신'이다. 그리고 예수는 신약시대에 와서 구약의 율법을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원수 사랑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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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 I '나의 천국에서(In my heaven)' 91x116.5cm 캔버스에 유화 1997. 산동네를 천국으로 보는 작가의 생각이 멋지다. ⓒ 김형순


내가 성서공부하면서 놀란 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 십계명의 밑바탕에 약자보호정신이 강하게 깔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간음하지 못 한다"는 여성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이고, "거짓 증언을 하지 못 한다"도 재판 시 변호사를 댈 수 없는 피고인을 보호하는 법이다. 이런 정신은 신약의 산상수훈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산상수훈의 첫마디는 정말 청천벼락이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늘나라의 너희들 것이다(누가6:20)." 이를 풀어보면 가난한 자가 하늘나라의 주인이고 가장 먼저 들어갈 자격자라는 소린데 그럼 하느님의 축복이 부자에겐 없단 말인가. 다만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렵다"라는 경고만 있다.

그렇게 보면 성서의 하느님처럼 약자를 편드는 신은 없는 것 같다. 하긴 하느님도 "나는 이집트(강자)에서 노예생활을 한 히브리백성(약자)을 질투하며 짝사랑한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약소민족의 편에 서서 자비와 긍휼을 베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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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운 I '황명걸 시에 바치는 그림'. 이런 언덕배기 산동네의 온기는 참으로 따뜻하게 느껴진다. ⓒ 김형순


신약에 나오는 '가난한 자'의 어원을 성서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뜻이 분명하다. 헬라어인 '프토코스(πτωχο/ptokos)'에서 나온 것인데 이는 '구걸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 혹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경제적 극빈자'를 말한다. 결코 마음이 가난한 자가 아니다.

약자보호정신은 예수가 제자에게 가르쳐준 기도문 중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와 같은 구절에도 있다. 이는 "오늘 지구상에 한 사람이라도 배가 고파서 죽는 사람이 없게 하소서"라는 호소인데 참으로 엄중한 메시지다.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으로 성서는 '이웃사랑'을 말한다. 물론 이를 지키려면 믿음과 신의 은총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만 생존하기위해 이기적이 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을 구하지는 못한다. 인간은 '이웃사랑'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강도가 더 센 '강도 만난 이웃사랑'도 있다.

'이웃'을 그냥 '시민'이라고 한다면 '강도 만난 이웃'은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를 뜻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재개발의 명목으로 산동네에서 몇 푼 받고 쫓겨난 사람들 말이다. 성서에서 하느님이 최우선순위에 두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이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성서에서 발견하게 되는 이웃이라는 개념은 그런 면에서 혁명적이다. 인간을 개인적 차원에서만 보지 않고 남과 더불어 사회를 만들어가는 존재로 보는 것인데,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이를 대타존재(Etre pour autrui)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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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우 I '백인백색' 생각이 다른 모든 계층이 다 잘 사는 방법은 없는가 ⓒ 김형순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래서 성서에서 십일조를 말한다. 예화로 여기 너무 부자인 사람과 너무 가난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두 계층을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다 사는 방법은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십일조를 하는 것이다. 누구는 너무 많이 가져 누구는 너무 없어 인간성(하느님의 형상)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은 유럽의 복지제도나 세금제도에서도 읽을 수 있다. 19년 전 네덜란드에 갔을 때 여행가이드로부터 정부는 재벌에게 90% 세금을 물린다고 들었다. 두 달 전에 파리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남자와 결혼한 내 제자를 시립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의 따르면 프랑스는 재벌에게 70%의 세금을 물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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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에 대한 경의'전이 열렸던 리움미술관 입구 ⓒ 김형순


위와 연결될지 모르지만 한국경제가 위기를 맞이했을 때 이를 살려낸 것은 남대문 동대문 사람들이라고 말한 사람은 바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이다.

"나는 한국인의 가능성과 생명력을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에서 찾는다. 세계경제의 경쟁력은 유통과 자유시장 기능인데 남대문과 동대문시장은 이 문제를 100년 전에 이미 해결해 놓았다. 일제하에서 6·25동란과 군사독재, 부정부패, 산업화, 재벌독점, 환경오염에서도 이 두 시장은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미국경제가 살려면 제3세계 사람들도 어느 정도 미국제품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마냥 착취의 대상으로만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국경제가 살려면 서민과 사회적 약자가 구매력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데 요즘 정책이 너무 있는 사람 쪽으로 기울다보니 한국인의 특이한 신명과 역동성, 창의성과 위기극복능력이 살아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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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왈종 I '제주생활의 중도(中道)' 2008. 이렇게 자연과 인간과 문명이 하나로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 올까. ⓒ 이왈종


누구나 다 알다시피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경제 한파에도 사는데 지장이 없지만 없는 사람들은 생존이 위태롭다. 이제 이 대통령은 성서전반에 흐르는 이런 약자보호정신을 주목하고 서구기독교국가의 복지정책의 근간이 되는 이런 정신을 대선승리 1주년을 맞아 국가운용에 우선순위로 삼는다면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신뢰와 존경은 받을 것이다.

하여간 나의 결론은 이렇다. 지금 우리는 서민을 살려야 경제가 살고, 언로를 터야 정치가 살고, 약자를 지켜줘야 사회가 활력을 되찾고 모든 걸 넓게 포용해야 종교가 화합한다.
#약자보호정신 #본회퍼 #프토코스 #교외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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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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