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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뜯어먹은 듯' K-리그, '쥐 죽은 듯' FA컵

[스포츠 연말특집 ②] 키워드로 돌아보는 2008년 축구

08.12.22 18:01최종업데이트08.12.2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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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는 무자년(戊子年) '쥐'의 해였다. 이 쥐를, 근육 경련을 가리키는 한의학 용어인 '쥐'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올 한 해 축구장에서 울려 퍼진 뜨거운 함성과 곳곳에 떨어져 있는 소중한 땀방울들을 떠올리면 서쪽으로 흘러가는 쥐의 해가 아쉬워 붙잡아두고 싶다가도, 바짝 조여 오는 근육 경련을 생각하면 빨리 보내버리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쥐'다.

그래서 2008년 축구를 돌아보는 열쇳말(키워드)로 '쥐'를 골랐다.

["쥐가 쥐꼬리를 물고"]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8. 9. 21. 런던 스탐포드 브리지에서 벌어진 첼시와의 맞대결에서 선취골(18분)을 터뜨린 박지성.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이 말은 '여러 사람이 연이어서 나오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잉글랜드 맨체스터시에 있는 올드트래포드의 역동적인 붉은 심장 '박지성'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그가 공을 받아서 몰고 들어가거나 수비수가 따라붙기 어려울 정도로 급작스럽게 방향을 바꿀 때, TV 중계 카메라는 함부로 줌 기능을 사용하지 못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화면 밖으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느린 화면으로 구성하면 13번 등번호를 단 여러 선수가 연이어서 나오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지 않을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이하 맨유)의 측면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는 박지성은 우리 축구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2008년의 새벽을 열어주었다. 우리 시각으로 2008년 둘째 날 새벽 소속팀의 안방인 올드트래포드에 무릎 부상을 털고 9개월 만에 나타나 75분을 뛰며 버밍엄 시티를 1-0으로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호날두에게 보낸 측면 띄워주기나 테베스의 발 앞에 보낸 날카로운 찔러주기는 7만5000이 넘는 안방팬들에게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딱 두 달 후인 3월 2일 새벽, 박지성은 그에게 '약속의 땅'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 크레이븐 코티지(런던·풀럼 FC 홈구장)에서 돌고래처럼 솟아올라 이마로 짜릿한 골 맛을 봤다.

박지성의 활약은 프리미어리그만이 아니었다.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2007-2008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두 번째 경기(맨유 1-0 바르셀로나)에서 그는 '1인 3역'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정도로 쉼 없이 뛰었다.

'날개공격수'로서의 그 발끝에서는 날카로운 띄워주기가 넘어왔고, 가운데 골잡이와 자리를 바꿔 가며 상대 골문 앞 위험지역을 헤집는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은 이미 박지성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이것도 모자라 그는 측면 수비수가 공격에 가담했을 때 그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측면 미드필더' 본연의 임무에도 충실했다. 아쉽게도 결승전은 뛰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비교적 편안하게 결승에 오른 맨유는 맞수 첼시 FC를 밀어내고 비가 내리는 모스크바의 밤, 트로피를 품에 안고 잠들 수 있었다.

2005년 8월 9일 맨유의 붉은 옷을 입고 첫 선을 보였던 미드필더 박지성. 그는 지난 14일 런던에 있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썼다. 한동안 이영표(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누비던 그곳에서 박지성은 맨유에서의 '100'(경기 출장)이라는 숫자를 아로새기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그를 바라보며 축구화 끈을 묶는 어린 선수들이 많다. 이미 그랬지만 앞으로 그가 내딛을 한 걸음 한 걸음이 더 넓게 퍼지는 '희망'인 것이다.

["쥐새끼가 열두 해 나면 방귀를 뀐다"] 스티븐 제라드(리버풀 FC)

2008년 9월 17일 마르세유 방문 경기에서 혼자서 두 골을 터뜨린 스티븐 제라드. ⓒ 유럽축구연맹


축구팬이라면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다.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 리버풀시에 있는 안필드 로드, 잉글랜드의 유서 깊은 축구 클럽 리버풀 FC의 안방이다. 그 팀에는 주장 완장을 차고 있는 스티븐 제라드라는 미드필더가 있다. 그는 올해로 리버풀에서만 10년을 넘겼다. 저 속담은 무슨 일이나 오래오래 하고 있으면 좋은 수가 생긴다는 말이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제라드가 저 속담처럼 리버풀 클럽에서 열두 해를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축구 경기에서 한 팀의 '레전드'가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한 두 해 반짝 빛나고 다른 팀으로 옮기는 일이 다반사가 된 이상 정말 보기 드문 경우다. 1998년 11월 29일 만 열 여덟의 나이로 블랙번 로버스와의 맞대결에서 리버풀 클럽의 영혼이 된 스티븐 제라드는 지금까지 461경기를 뛰었다. 맨유에서 800경기를 바라보고 있는 왼발의 전설 라이언 긱스와 비교할 수 없는 숫자이기는 하지만 2008년 제라드의 발끝에서는 누구보다 특별한 골들이 많이 터졌기 때문에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리버풀에는 '엘 니뇨(남자 아이)'라는 별명이 붙은 특급 골잡이 페르난도 토레스가 뛰고 있지만 부상으로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의 수염이 단정할 날이 별로 없다.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토트넘 홋스퍼에서 로비 킨을 데려오기도 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2%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미드필더 제라드의 공격적 활약은 '알토란'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하위리그(잉글리시리그2) 팀과의 맞대결이었지만 제라드의 2008년 첫 발걸음은 화려했다. 새해 열여섯 번째 날 안필드에서 열린 루톤 타운과의 잉글리시 FA컵 3라운드 경기에서 제라드는 해트트릭도 모자라 도움까지 하나 더 추가하며 팀의 5-0 완승을 이끌었다. 그야말로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2007-2008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토너먼트 첫 경기(2월 20일)에서도 인테르 밀란(이탈리아)을 상대로 명품 중거리 슛 추가골을 터뜨렸던 스티븐 제라드는 4월 9일 같은 곳에서 열린 아스널 FC와의 8강 맞대결에서도 귀중한 4-2 승리를 결정짓는 페널티킥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그의 챔피언스리그 골 행진은 다음 시즌에도 계속되었다.

9월 17일 열린 프랑스 마르세유 방문 경기에서 제라드는 5분 간격으로 혼자서 두 골을 터뜨리며 짜릿한 역전승의 주역이 되었다. 10월 2일 안필드에서 벌어진 PSV 에인트호벤(네덜란드)과의 경기에서는 4만 1천여 안방팬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위력적인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자신의 100번째 골을 터뜨린 바 있다.

그리고 지난 달 27일 제라드는 또 한 번 마르세유를 물리치는 결승골을 안방팬들 앞에서 터뜨리며 팀을 가뿐하게 챔피언스리그 16강 토너먼트에 올려놓았다. 그의 이마에는 내년에 16강 토너먼트에서 만날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를 넘어 2004-2005 시즌 AC 밀란을 뒤집고 기적 같은 역전 우승을 차지한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존재가치는 지난 14일에 벌어진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돌풍의 팀 '헐 시티'와의 안방 경기에서 또 한 번 입증되었다. 동료 수비수 캐러거의 자책골까지 이어지며 안방팬들 앞에서 0-2로 끌려가던 경기를 단 10분 만에 혼자서 두 골을 터뜨리며 원점으로 돌려놓은 것. 공격형 미드필더가 어떤 재능을 갖춰야 하는지를 안필드의 미드필더 '스티븐 제라드'가 올 한 해 동안 충분히 보여준 셈이었다.

["쥐 뜯어먹은 것 같다"] 대한민국 K-리그

2008년 11월 9일 인천문학경기장. 2008 K-리그 챔피언 수원 블루윙즈 서포터 그랑블루가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네 번째 별을 염원하는 카드섹션을 펼치고 있다. ⓒ 심재철


이 말은 들쭉날쭉하여 보기 흉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우리 축구팬들에게 너무도 소중한 K-리그의 형편을 빗대는 속담으로 적절하지 않나 싶다.

앞에서 리버풀에서만 10년을 넘기고 있는 스티븐 제라드를 말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상황을 식상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축구판에서는 이런 존재를 '레전드'라 부를 정도로 그 가치를 높인다. 아직 역사를 말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모자라지만 우리 K-리그에서도 이런 '레전드'를 여럿 보고 싶다.

최근 K-리그 울산 구단의 한 선수는 구단의 동의도 없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클럽으로 건너가 입단 테스트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져 그의 큰 활약을 보며 열광했던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포함하여 최근 J-리그 등 해외 리그로 발길을 돌리는 유명 선수들이 부쩍 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K-리그는 쥐가 뜯어놓은 쌀자루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이런 소식 말고도 K-리그는 제 살을 제가 뜯어먹은 꼴을 하고 있기에 이제는 측은할 정도다. 리그의 신뢰성을 깎아내리기 충분한 플레이오프 제도가 그 핵심에 있다.

지난 7일 낮 수원 빅 버드에는 무려 4만 1천 44명의 대관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수원 블루윙즈의 네 번째 별을 자랑스럽게 여긴 바 있다. 관중 수만 봐도 리버풀의 안필드가 부럽지 않은 숫자다. 그러니 흥행 카드를 내밀며 플레이오프 제도를 아직도 고집하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다.

거기에는 못 미치지만 결국 챔피언에 오른 수원 블루윙즈의 정규리그 마지막 두 경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11월 1일 수원 빅 버드에서 열린 전남과의 안방 경기, 수원은 전남을 3-0으로 완벽하게 따돌리며 1만8236명의 안방 관중 앞에서 정규리그 1위 자리를 굳힐 수 있었고, 11월 9일 인천 방문 경기로 열린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3-1로 시원스럽게 이겨 골 득실차에서 3골 차이로 정규리그 1위에 올랐다. 이 경기는 수원으로서는 방문 경기였지만 엄청난 수의 서포터(그랑블루)와 함께 1만8772명의 관중 숫자를 기록했다.

단순히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플레이오프에 비해 이 경기들은 2만 명 이상이 모자란다. 이것만으로 정규리그를 바라본다면(혹은 폄하한다면) 아예 축구 리그는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사회 현실 속에서 정규리그 관중이 1만5000~2만 정도 들어온 것이 그리 나쁜 결과가 아니다. 리그 챔피언 팀에게 국한시킨 자료이지만 수원이 마지막 두 경기에서 몰고 다닌 1만8000여 관중 숫자는 리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할 것이다.

수원을 챔피언으로 이끈 골잡이 에두, 서동현, 미드필더 백지훈, 조원희, 수비수 마토, 문지기 이운재 등 선수들을 향한 팬들의 열정적 시선만 봐도 리그면 충분하다. 준우승에 그친 FC 서울의 특급 미드필더 기성용도 그야말로 K-리그가 키워낸 소중한 자산이다. 플레이오프를 치르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이 팬들의 가슴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제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제도가 2009년부터 크게 바뀐다. 또 아시아쿼터제가 도입되어 벌써부터 J-리그 쪽에는 재능 있는 우리 선수들이 몰리고 있다. 어쩌면 이 판도 변화가 우리 K-리그에도 좋은 기회가 아닐까?

강원 FC가 들어와 이제 우리 프로축구 1부 리그 팀 숫자도 15개로 늘어났다. 아직까지 내셔널리그(2부리그)와의 승격-강등 제도가 실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 기회에 플레이오프 제도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정규리그 1~2위에 오른 두 팀의 권위를 그대로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정규리그가 끝나고 리그 3~4위에 오른 두 팀을 대상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다투게 하는 플레이오프(홈&어웨이)를 치러도 그 흥미진진함은 결코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쥐 죽은 날 고양이 눈물"] 대한민국 여자 축구

여자 대표팀 MF 차연희 ⓒ 대한축구협회

이 말은 '쥐가 죽었다고 고양이가 눈물을 흘릴 리 없다'는 뜻으로, 아주 없거나 있어도 매우 적을 때를 이르는 말이다. 남자축구에 밀려 아직도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여자 축구의 형편이 떠오르는 말이다.

대한민국 남자축구대표팀은 지난 2월 6일 열린 투르크메니스탄과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 4-0으로 기분 좋게 이기며 축구팬들에게 기쁜 설날 선물을 안겨주면서 2008년을 시작했다. 그 후 5월 31일 열린 요르단과의 안방 경기에서 2-2로 비기며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지난 달 20일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방문 경기에서 2-0으로 기분 좋게 이겼다. 최종 예선에서 허정무호는 비교적 순항하고 있는 편이다.

이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2008년 우리 여자축구도 나름대로 알찬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이근호와 박주영의 골 소식이 멀리 리야드에서 전해지기 열흘 쯤 전에 뉴질랜드 해밀턴에서도 뜻 깊은 여자축구 소식이 들려왔다.

국가대표팀은 아니지만 김용호 감독이 이끈 17세 이하 우리 여자대표팀이 잉글랜드를 3-0으로 물리치고 2008 FIFA U-17 여자월드컵 8강 토너먼트까지 올라간 일이다. 아쉽게도 4강 문턱에서 세계 정상급의 미국을 만나 2-4로 물러나야 했지만 지소연, 이현영 등 재능 있는 선수들이 그 실력을 맘껏 뽐내고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소식이었다.

하지만 우리 팬들은 이를 국제축구연맹 누리집(fifa.com)에 가서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 흔한 중계방송은 물론 없었고 대다수의 언론도 관심 밖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한참 만에 올라오는 국제축구연맹 누리집의 비디오 자료를 통해 골 장면이나마 구경할 수 있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정말 '쥐'가 죽었다고 '고양이'에게 눈물이라도 구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안익수 감독이 이끌고 있는 성인 여자대표팀은 지난 5월 베트남 호치민시에 벌어진 2008 AFC 여자 아시안컵 본선에 나가 감격적인 한일전 승리 소식을 5년 만에 전해주기도 했다. 특히, 미드필더 차연희와 골잡이 박희영의 활약은 짜릿한 3-1 역전승(5월 29일, 호치민시 통낫 스타디움)의 묘미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어진 호주와의 경기에서 0-2로 아쉽게 진 우리 여자 선수들은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6월 14일부터 수원 빅 버드에서 벌어진 2008 피스퀸컵 축구대회에서 아르헨티나에 2-0(6월 18일)으로 이기는 등 그늘진 곳에서도 묵묵하게 자기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달 초에는 남자축구에서나 있을 법한 뜻 깊은 전지훈련이 있었다. 세계 최정상급의 미국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위해 현지로 날아가 세 차례 친선 경기를 벌인 것. 비록 1무 2패(1득점 4실점)에 그치고 말았지만 수비수 심서연, 미드필더 김수연 등 대표팀 새내기들에게 정말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쥐 죽은 듯"] FA컵 전국축구선수권대회

매우 조용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한, '감쪽같이 행동하거나 처리하여 아무도 그 경위나 행방을 모르게'의 뜻으로 쓰이는 '쥐도 새도 모르게'라는 말도 있다. 12월 21일에 포항 스틸러스의 우승으로 끝난 FA(축구협회)컵 전국축구선수권대회를 보며 떠오른 말이다.

K-리그와는 대회 성격이 다르지만 그래도 그 팀들이 대개 트로피를 다투게 마련이다. 그런데, 올해 FA컵 일정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준결승전, 결승전 세 경기 일정이 모두 제주도에서 열렸다. 추운 계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하겠지만 준결승 첫 경기 일정을 보면 축구협회 사람들이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K-리그 경남 FC와 내셔널리그 국민은행이 맞붙은 이 경기는 목요일(12월 18일) 오전 11시에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포항 스틸러스와 대구 FC의 맞대결은 오후 2시부터 같은 곳(제주종합운동장)에서 벌어졌다. 포항과 대구의 경기는 공중파로 생중계 되었지만 앞서 열린 경기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경기'였다.

21일 낮에 끝난 결승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중계 카메라는 간혹 포항과 경남의 몇 안 되는 서포터즈를 가까이에서 보여주었지만 일반 관중의 무리는 제대로 잡아주지 않았다. 거의 없었기 때문이리라. 오히려 조중연 부회장 등 축구협회의 높은 분들이 몰려 앉은 특석에만 카메라가 돌았을 뿐이다.

선수들의 몸놀림과 표정 변화 하나하나에 열광하는 관중들은 이제 축구 경기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다. 1946년부터 시작된 전국축구선수권대회를 이어받아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대회의 역사를 살펴봐도 이렇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 전통적으로 그렇게 해 온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지난 해 결승전만 해도 전남과 포항이 서로의 구장을 오가며 흥미진진하게 두 경기로 우승팀(전남 드래곤즈)을 가렸다.

축구팬으로서 새해 3월 국내 축구가 다시 기지개를 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라도 FA컵 준결승전과 결승전 일정은 좀 더 팬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결정했어야 옳았다.

그 모범 사례는 결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옆 나라 일본에도 같은 성격의 일왕배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가 이맘 때 마무리된다. 오는 25일까지 4강팀이 가려지면 29일에 준결승전을 치르고 새해 첫 날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대망의 결승전을 벌인다. 벌써 이 대회는 88회의 역사를 자랑하며 축구로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 있는 행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마음 같아서는 7000엔쯤 되는 결승전 지정석 입장권을 여러 장 구입하여 축구협회 높은 분들께 보내고 싶다. 가서 좀 보고 배워 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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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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