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새끼 비켜라, 황소가 납신다!"

[포토에세이] 한 해의 끝자락에서

등록 2008.12.30 14:37수정 2008.12.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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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았던 쥐의 해, 무자년(戊子年)이 가고 소(牛)의 해인 기축년(己丑年)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황금 돼지 정해년(丁亥年) 에치러진 대선에서 국민은 이 나라의 대통령을 선택했고, 끝자락에 삼성기름유출사고로 인해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습니다. 그 와중에 대망의 쥐의 해, 무자년이 밝았습니다.


국민은 새해 첫날, '올해 만사형통하게 해 주소서!'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지만, '강부자', '고소영', 영어몰입, 광우병쇠고기 파동, 경부운하, '명박산성', 국제중학교, 부자 중심의 감세정책, 세계경제 침체, 남북관계경색, 뉴라이트의 전면적인 등장, 삐라살포, 일제고사 등등 한해에 이 모든 일이 터졌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마치 쥐새끼들의 습격에 곳간이 텅 비어 버린 듯했고 다시 10년 혹은 그 이전 역사적으로 암울했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습니다.

더군다나 싸움판인 줄은 진작에 알았지만 '19금'이 되어버린 국회의원 나리들의 추태를 보면서 그들을 국회로 보낸 데 일조를 하기도 한 내가 미웠습니다. 내가 행사한 한 표만큼의 책임만 감당하기는 아주 벅찬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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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2009년은 기축년, 소의 해입니다. ⓒ 김민수


아무튼, 그렇게 무자년 쥐의 해는 서서히 꼬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친 소 파동으로 온 사회가 몸살을 앓았는데, 소값이 개값똥값이 되었다고 하는데, 소(牛)의 해인 기축년(己丑年)이 다가온다니 혹시 쥐새끼에게 서까래까지 다 갉혀 먹은 마당에 미친 소가 들이받으면 어떡하나 식겁합니다. 제발 다가오는 새해에는 그 옛날 살림밑천이요, 자식새끼들 대학등록금 마련을 할 수 있는 정도의 가치를 소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제대로 된 소, 건강한 소가 우리에 들어와 깝죽거리는 쥐새끼 한걸음에 밟아버리면 참 좋겠습니다.

소의 처지에서 보면 슬픈 일일 수도 있지만,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소는 우직합니다. 마침내 내장은 물론이요 가죽에서 꼬리까지 다 내어주고, 심지어는 똥까지도 비료 혹은 원료로 사용됩니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마음은 그의 눈에 담겨 있습니다. 여느 동물과 달라서 소의 눈은 눈물이 맺혀 있는 듯 그렁그렁 맑습니다. 그 커다란 눈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아니, 온갖 동물성사료와 항생제에 찌든 소들은 그런 눈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있는 그들의 눈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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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황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는 법입니다. ⓒ 김민수


'황소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천히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 조급하면 일을 망칠 수 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우직하게 정도를 천천히 걸어가면 마침내 천 리 길도 간다는 이 말은 경박함과 조급증에 걸려 있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길 것만 같았던 한 해도 보내고 나면 짧습니다. 한 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살아온 모든 날이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단 한 번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루를 어떻게 대하며 살았는가에 따라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을 대충 살고 내일 후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떤 일이든 지름길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생태적인 차원에서 보면 쥐도 존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장점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많이 얻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들쥐보다 집쥐를 싫어하는데 덩치도 덩치려니와 애써 농사지은 것을 훔쳐먹는 달인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쥐 잡기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에도 나는 쥐를 잡아 본 적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찍찍이나 쥐덫을 통해서 잡았고, 잡혀도 내가 처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쥐약을 먹고 죽은 쥐를 먹고 죽어버린 나의 애견에 대한 기억 때문에 혹시라도 쥐를 잡으려다 다른 동물에게 해를 끼칠까 봐 쥐약 놓는 일은 시골에 있을 때에도 하질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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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줍니다. ⓒ 김민수


한 번은 시골에서 배달되어온 고구마상자 안에 쥐새끼가 함께 배달되었습니다.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고구마에 쥐가 파먹은 흔적들이 생기는 것을 보고 사태를 파악했습니다. 그놈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밤이면 우리 집을 배회했습니다. 그 증거는 까만 똥이었지요. 다니는 길목을 파악해서 찍찍이를 놓았지만 영악한 놈이라 잡히질 않습니다.

할 수 없이 날을 잡아 잡기로 했지요. 온 집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것인가 묘책을 짤 것인가 고민하다가 막다른 곳에 미끼를 놓고 오랜 시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결국, 시간은 좀 걸렸지만 막다른 곳으로 몰아놓고는 한 방에 때려잡았습니다. 그때 쥐새끼를 잡으려고 집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저 미끼와 막다른 골목과 인내심만 있으면 쥐새끼는 걸려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쥐새끼 오금 저리게 할 만한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는 방법도 좋겠지요.

각설하고, 무자년(戊子年)이 가고 기축년(己丑年)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당당하게 맞이하는 새해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얼마 남지 않은 쥐의 해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죠?

"쥐새끼 비켜라, 황소 납신다, 길을 비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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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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