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당에도 명당은 따로 있다?

[서평]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등록 2008.12.30 13:44수정 2008.12.3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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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 태을봉의 삼각점 ⓒ 김현자


수리산 정상 태을봉(해발 489미터)에 있는 삼각점이다. 엊그제(12월 27일) 산행 중에 이 삼각점을 만나는 순간 얼마 전 읽었던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푸른길 펴냄)의 '국토를 밝히는 삼각점'이란 글이 떠올라 잠시나마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던 삼각점이기도 하다.

삼각점은 삼각 측량을 하기위한 기준이 되는 지점이다. 삼각 측량은 일정 지역을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어가면서 삼각형 내의 땅을 축지하는 기법으로서 삼각형의 각 꼭짓점이 삼각점이다.


삼각형의 크기는 4등급이 있는데, 1등급은 한 변의 길이가 45km,2 등급은 8km, 3등급은 4km, 4등급은 2km이다. 이렇게 전국을 삼각형 망으로 구분하여 그 위치를 표지석으로 표시해 둔 것이 삼각점이다. …(중략)

삼각점은 국토를 알리는 기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본이 되는 삼각점은 경기도 수원시 원천동 산 63번지의 산 정상에 있다. 이는 영구적인 기준점이며, 동경 127˚ 35', 북위 58˚ 18'이다. 삼각점은 이 기준점을 중심으로 우리 국토의 지리정보를 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책속에서

산의 정상임을 알리는 단순한 설치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화강암으로 된 이 삼각점은 단순한 돌이 아니다.

책 속 '오봉산 삼각점'이나 이 '수리산 삼각점'은 '국립지리원'이 국내에 설치한 16,000여개 삼각점 중 하나. 삼각점의 등급, 제작연도, 방위, 해당 지도명 등 그 산만의 고유정보를 담고 있다. 가운데 '十'는 방위, 네 귀퉁이에는 나머지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다.

각 삼각점의 이와 같은 정보들은 지도제작, 지적 측량, 건설공사, 각종 시설물 설치와 관리 시 기준점으로 쓰인다. 이 때문에 전국의 산에 분포되어 있는 국가중요시설물인 이 삼각점을 훼손하면 처벌 받는다. 그럼 언제부터 이 삼각점이 우리에게 도입 설치돼 쓰였을까?


일본은 우리 국토를 수탈할 목적으로 일본 쓰시마 섬을 삼각측량의 기준으로 삼고 우리나라 전국에 삼각점을 만든 다음 이를 기초로 측량하여 지도를 만들었다. 일본은 합방 이전인 1907년에 이미 우리나라 주요 항구나 도시, 해안 등을 삼각 측량법을 통하여 기초 조사를 했다. 그리고 1917년에 이 측량을 토대로 정확한 지도를 만들었다. 일본이 만든 지도는 우리나라 근세시대의 지리적 현상을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슬픈 역사이지만, 지금도 우리나라 지도는 이 삼각점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책속에서

건강을 위해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국의 산 정상에는 이 삼각점 표지석이 반드시 존재한다. 정상에 있는 삼각점을 기준으로 주변의 두 봉우리에 다른 두 삼각점이 존재한다. 땀을 식히며 또 다른 삼각점 봉우리를 찾아 가상 측정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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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 칼바위에서 본 산본 일대 ⓒ 김현자


수리산 칼바위에서 본 산본 시가지이다. '대체 왜 칼바위란 이름이 붙은 걸까?' 이런 호기심으로 내 키보다 높은 바위를 간신히 기어 올라가보니 수백자루의 칼날을 세워놓은 듯 날카로운 바위들이 촘촘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지리지형에 좀 더 해박하다면 수리산의 칼바위가 언제 어떤 지리현상으로 생겨난 어떤 성분의 바위인지 쉽게 알 수 있으련만,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보는 만큼 느낄 수 있다'고,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아 그저 감탄만 할 뿐이었다.

납골당에도 명당은 따로 있다?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는 이처럼 여행이나 일상에서 쉽게 만나지만 몰라서 지나치거나 신기하게 바라보며 감탄하던 일상의 공간들과 자연을 다시 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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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겉그림 ⓒ 푸른길

드문드문 껍질이 벗겨 나간 듯 얼룩덜룩한 마이산의 봉우리, 아주 오래전 누가 일부러 가져다 올려놓은 듯 넓적한 바위 위에 올라 앉아있는 설악산 흔들바위, 의상 대사와 선묘낭자의 애틋한 사연을 품고 떠 있는 부석, 보문사 눈썹바위 등은 우리에게 유명하다.

하지만 그 지리(지형)의 비밀에 대해선 거의 모른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딱딱하고 어려운 지리(지형) 용어들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 바위들을 예로 들어 '풍화혈'이나 '절리' 등 지리적 현상을 쉽게 설명, 에세이처럼 들려 준다. 때문에 술술 읽혀진다.

흔히들 '지리'를 어렵고 딱딱하게 생각한다. 또한 전문가들이나 관련업 종사자들에게나 해당하는 분야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 명당은 산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납골당에도 명당은 따로 있다? ▲ 극장에도 이른바 명당이 따로 있다? ▲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우리는 자신의 성격과 가능성에 따라 일상의 자리들을 선택한다? ▲ 독살과 방풍림, 식물의 북방 한계선의 존재 이유 ▲ 김제에서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의 재빠른 확산, 그 당연한 이유는? ▲ 돈벌이에도 자연의 법칙과 질서가 관여? ▲ 프랜차이즈의 약과 독은? ▲ 재래시장과 백화점, 할인마트의 싸움에도 지리는 관여한다? ▲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 형성에도 지리의 법칙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이런 사실들은 지리 지형이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잘 알려주고 있었다. 때문에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 날마다 습관적으로 당연히 만나던 주변이 달리 보였다고 할까?

오늘도 우리는 지리적 현상의 긴밀한 영향 속에 있다. 어느 날은 눈이 내린 후 강추위가 오고 어느 날은 눈이 그친 후 눈이 내리기 전보다 훨씬 따뜻할 때도 있다. 왜 그럴까?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이 현상은 지리 지형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는 이처럼 이제까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자연현상들과 무심코 지나쳤던 지리 지형,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뜨게 해 줄 상식과 의문들로 가득하다.

덧붙이는 글 |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이경한 지음/2008.12.5/푸른길/14,000)


덧붙이는 글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이경한 지음/2008.12.5/푸른길/14,000)

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 생활 속 지리 여행

이경한 지음,
푸른길, 2008


#인문교양 #삼각점 #수리산 #지리 #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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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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