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특강 강사료, 방과후수업 4배

'아이들 과자값'만도 못한 학교 교육비 예산을 아시나요?

등록 2008.12.30 09:23수정 2008.12.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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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종로 한 고등학교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하는 '현대사 특강'이 진행되고 있다. ⓒ 유성호


아무리 용한 족집게 점쟁이라도 그만한 복채를 주지는 않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19세기 역사관을 주입하고 있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그들에게 고작 두 시간짜리 강의에 무려 24만 원이라니. 예산이 부족하다는 소리에 교육 자료 하나 사달라는 얘기 제대로 못하고, A4용지조차 함부로 쓸 수 없는 학교 현장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얘기입니다.

학년이 마무리되는 요즘 학교마다 부서별로 교과별로 내년 예산을 책정하고 조정하는 일로 분주합니다. 행정실에서는 아예 내년에는 학교운영비가 대폭 삭감될 예정인데다 운영지원비조차 동결될 것이라며, '짠돌이' 예산안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장으로 있는 사회교과부의 경우, 변변한 수업용 소프트웨어 하나 구입하지 못할 정도의 돈 십만 원이 전부였는데, 거기에서 더 깎인다니 아예 예산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쑥스러운 '푼돈'이 될 참입니다.

행정실로부터 건네받은 예산요구서 양식을 만지작거리면서 2008년 올해의 세출예산 목록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푼돈' 예산은 제 부서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교육 활동에 있어서 핵심이랄 수 있는 학교교육비 항목 대부분이 거칠게 말해서 '아이들 과자값'만도 못한 수준이었습니다.

한 해 동안의 교육기자재 유지보수비가 학급당 7만 원, 도서 구입비를 제외한 학교도서관 운영비 50만 원, 기초학습 부진아 연간 지도비 80만 원, 심지어 의약품과 의료기기 구입을 포함한 보건실의 연간 운영비가 고작 260만 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730여명의 건강 관리와 응급처치 등을 위한 예산이 학생 개인당 기껏 3천 원 남짓이라니, 서글프다 못해 황당할 지경입니다. 학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책정된 예산안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방과 후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와 외부 강사의 강사료도 푼돈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시간당 3만 원인데, 그나마 지난 해 대거 20%나 인상된 액수입니다. 조금 액수가 큰 예산도 항목의 특성을 감안하면 결코 넉넉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전 학생의 과학실험실습 및 재료구입비가 304만 원, 교사 연수비 200만 원, 정품 소프트웨어 구입비 200만 원 등 예산과 관련된 행정실과 교사들의 볼멘소리가 조금도 엄살이 아닙니다.

국가의 다른 부문 예산에 견줘 교육 예산이 태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언컨대 예산이 적재적소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교육 예산을 늘리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다 같은 교육 예산일 텐데, 학교 바깥의 모습은 안과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수업시간 아이들과 매일 만나는 교사가 교육 목적상 필요하다고 여기는 수업 자료를 구입할 예산은 없는데도, 정부와 교육청, 유관기관 등에서 제작한 수업 자료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배포되어 교무실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이는 실정입니다. 물론, 그것들 중에는 수업 시간에 활용할 만한 쓸 만한 것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내용이 중복되거나 조잡해 버려지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모시기 어려웠다'는 이유로 특별 예산까지 마련해 '장관급' 강사료(시간당 12만원)를 챙겨준 교육 관료들이 단 돈 몇 만 원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일선 학교의 척박한 현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아이들 곤히 잠들게 한' 대가로 피 같은 그 돈을 넙죽 받아간 강사들보다도, 입만 열면 예산 부족 타령을 늘어놓고 학교마다 돌아다니며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침 튀겨가며 강조하는 교육 관료들이 더 미운 이유입니다.

그들의 느닷없는 '현대사 특강'은 아이들의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의식 함양에만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니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과 교감하며 묵묵히 수업을 하고 있는 수많은 교사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예산 지원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으면서, 무능한 교사들이 여전히 'MBC(Mouth(입)+Blackboard(칠판)+Chalk(분필)) 수업'에 의존한다며 꾸짖는 현실이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저는 이태 전에도 그랬듯, 예산이 없다고 하니 제 돈으로 수업용 동영상 자료를 살까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마우스로 '결재하기' 버튼 주변을 맴돌면서 고민하고 있는 교사의 모습을 교육 관료와 '현대사 특강' 강사분들은 알기나 할까요?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현대사특강 #학교 교육비 예산 #현대사 특강 강사료 #강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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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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