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가 장미보다 콩나물 좋아하는 까닭

[서평] 나카지마 다카노부의 <아줌마 경제학>

등록 2008.12.30 13:39수정 2008.12.3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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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줌마 경제학> 겉그림. ⓒ 평단문화사

사람들은 '아줌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걸 연상할까? 어느 광고에서처럼 '힘이 세다, 아무 옷이나 입는다, 저녁잠이 많다' 외에도 아줌마를 대표하는 말들은 많다. 지하철 좌석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앉는다, 주책 맞다, 부끄러움이 없다 등 아줌마라는 단어에는 뻔뻔스러운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아줌마 경제학>은 이런 아줌마들의 뻔뻔스러움과 주책맞음에 경제적 이유가 깔려있다는 전제를 내세운다. 예를 들자면 여자 화장실에 사람이 많을 때 태연하게 텅 빈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는 아줌마의 행동은 '합리성'에 근거한 적절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줌마가 여성성을 포기하고 중성적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이유도 경제적인 효율성에 입각한 선택이라는 것. 두 아이와 남편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고 온갖 가정의 잡무를 담당해야 하는 아줌마가 지나치게 여성성을 고집하다 보면 일의 효율이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예쁜 옷을 입고 방바닥 걸레질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허름하고 편안한 옷을 입은 상태에서 청소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게 뻔하다. 여성적 이미지를 위해 조심조심 걷고 매일 같이 미용에 신경 쓴다면 그것 또한 가사일에는 방해가 된다. 즉 일의 효율성 측면에서 여성성보다는 중성적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줌마 입장에서 더 편하다.

가정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구성원의 원활한 활동이 필요하고 재무 설계와 경영 등의 활발한 운영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적극적 가계 운영을 위해서 아줌마는 혼자서 최고 경영자, 재무 설계사, 회계사, 홍보 및 기획 담당자, 인사 관리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게다가 식당 운영자, 청소 담당자 등의 역할까지 도맡아 하고 있으니 만능이 될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아줌마는 경제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줌마는 평일 영화관, 백화점 푸드코트, 마트 등의 주요 고객으로 두터운 소비자층을 구성한다. 아줌마가 직접 소비에 참여하지 않는 물건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작게는 이쑤시개 하나부터 시작하여 크게는 부동산의 구입까지 아줌마의 입김은 실로 큰 작용을 한다.

아줌마는 소비자일 뿐 아니라 중요한 노동자원


아줌마들은 소비자일 뿐 아니라 중요한 '노동자원'이기도 하다. 백화점이나 마트, 복지시설에서의 간병, 주방일, 청소 등은 대부분 아줌마 노동력에 의존한다. 경제 활동에서 아줌마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책에서는 아줌마들이 왜 가격 흥정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도 경제적으로 분석해 놓았다. 아줌마들은 금전 비용에 비해 시간 비용이 낮다. 무슨 얘기냐 하면 아줌마들에게 있어 경제적으로 부족한 것은 '돈'이고 남아도는 것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아줌마들이 가격 흥정하길 좋아하는 이유는 값을 깎는 데 투자하는 비용(시간 비용)보다 얻는 이익(금전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줌마에게는 친밀감을 느끼면서 아저씨에게는 혐오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의 분석은 참 재미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남성과 여성의 성 호르몬 분비 차이에서 찾는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여성은 40대 이후 여성 호르몬의 급격한 감소가 일어나고 남성은 70세가 넘어야 큰 감소가 일어난다는 것.

"여성은 아줌마가 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중성화되어 성적인 특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된다. 반면에 남성의 경우는 아저씨가 되면 외형상의 늠름함, 멋있음, 깨끗함 등은 잃어간다. 그런데 남성 호르몬은 여전히 분비되므로 성적인 기능만이 눈에 띄게 된다."

즉 40대 이후가 되었을 때 여성은 성 호르몬 분비의 감퇴로 철저히 중성적인 인간이 되는 반면, 남성의 경우는 겉은 늙었으나 속은 팔팔한 남성적 욕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게 된다는 요지다. 그래서 아줌마보다 아저씨들이 더 미움을 받는 걸까? 아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

"아줌마는 아이를 기르고 가정을 꾸려나간 경험과 소비자로서 자신의 노하우나 지식을 축적하고 있다. 그런데 아저씨는 회사라는 조직을 벗어나면 건전한 가정인은 고사하고 소비자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들은 직접 쇼핑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비자의 욕구를 모른다. (중략) 밥 짓는 일은 하지 않았으니 냉장고를 여닫는 것 말고는 기본적인 조리 도구 사용법을 모른다. 이러한 아저씨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노숙자들 중에 아줌마가 적고 아저씨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줌마라면 아무리 힘들고 지저분한 일이든, 가사노동의 연장이든 수요가 있으므로 얼마든지 먹고 살 수가 있지만 아저씨는 본업을 그만두면 다른 방면에 쓸모없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도대체 몇 살부터 아줌마일까?

이렇게 책의 내용을 전하다 보니, 아줌마는 참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란 생각이 든다. 중요한 소비자이면서 노동력을 생산하는 대상인 아줌마. 그럼 여자는 도대체 몇 살부터 아줌마라는 테두리에 포함될까?

결혼하면서 아줌마가 된다는 답변도 있고 애를 둘 정도 낳고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아줌마가 된다는 얘기도 있다. 책에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많은 이들은 아줌마가 되는 적정 나이를 38살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도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키우며 세상일에 더 뻔뻔해졌을 시기란 것이다.

많은 여성이 아줌마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싫어하지만, 사실 아줌마들은 위대하다. 힘도 별로 세지 않던 처녀 시절에서 탈피해 아이를 키워내고 가사 노동을 거뜬히 해내는 아줌마들. 가족을 위해서라면 김치 열 포기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뚝딱 만들어내는 우리나라의 아줌마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줌마 경제학

나카지마 다카노부 지음, 김숙이 옮김,
평단(평단문화사), 2008


#아줌마 경제학 #아줌마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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