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보거스 선생님' 짱!"

전국대회 3위에 빛나는 그룹사운드 '아날로그'와 이민우 교사

등록 2008.12.30 13:43수정 2008.12.3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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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거스 'MBC 방송에서 방영된 만화영화 '보거스는 내 친구'의 주인공 '보거스'. 안성 가온고등학교(구. 안성종합고등학교)학생들이 이민우 교사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 mbc


'열악한 환경에서 학교 밴드부가 결성된다. 악기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아 악기를 준비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 물론 제대로 된 실력의 멤버도 없다. 학생들을 지도해 줄 실력자도 없다. 어쨌든 모여서 연습을 하기는 하지만 별로 진척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의 반응도 시원찮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어떤 계기가 되어 훌륭한 지도자가 등장하게 되고 분위기는 반전된다. 드디어 전국 대회에 나가서 훌륭한 성적으로 입상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환호한다.'

위의 이야기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스토리다. 하지만 이런 영화 같은 스토리가 영화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 경기도 안성 가온고등학교 '보거스 선생님'과 '아날로그'이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 특성상 단 시간 내에 분위기가 반전 되지만, 그들의 반전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무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보거스 선생님' 제대로 일냈다"

17년 전 안성 가온고등학교(구. 안성종합고등학교)에 부임한 이민우 교사(17년 째 같은 학교만 근무 중)가 학생들로부터 얻은 별명이 바로 '보거스'다. MBC 방송에서 방영한 <보거스는 내 친구>라는 어린이 만화 프로그램의 주인공 '보거스'와 외모가 닮았다고 해서 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런데 '보거스 선생님'이 10년 전 드디어 일을 냈다.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이 아쉬워 학교에서 그룹사운드를 결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어떤 일이든 시작은 쉽지 않은 법. 학교 창고에 묵혀둔 드럼 세트, 자신의 사비로 사들인 기타와 구형 앰프, 학교에서 지원해준 기타 등을 겨우 장만해서 우선 시작부터 했다는 것. 모두가 순수한 아마추어인지라 누구하나 제대로 악기를 지도해줄 사람도 없었지만, 부지런히 모여서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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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교사 '보거스'를 닮았다는 이민우 교사. 자세히 보니 많이 닮았다. 하지만 그의 외모보다도 학생들이 그를 '보거스'라고 부르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 송상호


제대로 된 지도를 받지 못해서 아무리 연습을 해도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어려움보다도 대학을 진학할 고등학생이기에 "연습한다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느냐"는 곱지 않은 주위의 시선이 그들에겐 힘들었단다. 때론 고학년이 될 때까지 실컷 악기를 다룰 인재를 키워 놓았는데 공부를 이유로 학부모에 의해 팀원이 그만두게 되면 해당 기수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그룹사운드가 되어버리기도 했다는 것. 흡사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그들은 연습에만 열중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학과 공부'만을 우선시하는 한국 사회의 교육풍토와도 계속 부딪치며 싸워야 했던 것이다.

"선생님 아니면 저희는 안돼요"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그룹사운드 '아날로그'는 벌써 11기가 탄생했다. 졸업한 학생들만 해도 50여 명. 현재 11기 기수까지 합치면 도합 70여 명. 이젠 학생들 사이에서도 10주년 행사를 해야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연습도 누가 시켜서 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필요에 의해서 한다. 필요하면 점심시간에도 연습실에 가서 연습을 하곤 한다. 가르쳐 주는 사람은 교사가 아닌 선배들이다. 선배가 후배를 지도해주는 형태다. 여기의 분위기는 '악기가 좋고, 노래 부르는 것이 좋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였기에 항상 자율적일 수밖에.

이렇게 되기까지는 '보거스 선생님'의 노력이 컸다. 처음 시작할 때 사비를 털어 악기를 구입한 것은 기본이고, 학생들이 연습하며 허기가 지지 않도록 피자, 떡볶이 등의 간식을 대어 주는 것은 다반사였다. 좀 더 큰 무대에 서게 하려고 사방팔방으로 대회를 섭외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행사 때마다 함께 가서 학생들과 교감을 나누는 것도 일상이었다. 학생들의 악기를 실어 날라 주기 위해서 짐이 좀 더 많이 들어가는 승용차로 바꾼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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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중 지금은 연습실에서 아날로그가 연습 중이다. 학교 체육간 한 귀퉁이에 마련된 연습실엔 학생들이 수시로 자율적으로 연습을 하는 공간이다. ⓒ 이민우 제공


그러고 보니 '보거스 선생님'은 학생들이 놀 수 있고, 끼를 펼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 놓고 학생들과 함께 노는 사람인 게다. 때론 앞에서 때론 뒤에서 학생들의 친구가 되어 그 마당이 잘 돌아가도록 힘썼던 것이다. 그래서 오죽하면 그가 다른 부서에 옮겨야 될지도 모를 상황에서 학생들이 만장일치로 "선생님 아니면 저희는 안 돼요"라고 했을까. 이 교사도 "그래, 힘이 닿는 데까지 너희들과 함께 할 거야"라고 화답했을까.  

"시골 안성에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이렇게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 '아날로그'도 그동안 대외 성적은 시원찮았다. 수년 전 전국대회에 나가 입상도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이었는지, 또한 전국의 벽이 얼마나 높은 지를 실감하고 돌아온 것이다. 자신들끼리 있을 땐 꽤 괜찮은 실력이라고 자만한 실력이 그대로 들통 나는 부끄러운 순간이었던 게다.

하지만 2007년, 드디어 반전 드라마의 서막이 올랐다. 안성시내에 있는 '억스 스튜디오'를 만나면서부터다. 그래서 작년부터 조심스레 전국대회에 다시 노크를 했다. 새로운 시작은 역시 쉽지 않았다. 2007년도엔 입상 경력이 전무했다.

하지만 2008년도엔 달랐다. 2007년도에 떨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패인을 분석하고, 그 패인 분석에 따른 실행과 피나는 연습의 열매를 따 먹게 된 것이다. "7월 여수 국제 청소년 축제 전국 3위, 10월 청원 청소년 동아리 축제 입상, 11월 서울 문화존 경진대회 전국 3위, 11월 대한민국 청소년 동아리 경진대회 전국 3위". 이것이 2008년 한 해 '아날로그'가 거둬  들인 성적이다. 가히 기적이라 할 것이다. 농촌도시 안성에서 전국을 상대로 평균 성적 3위, 그러니까 명실상부 '청소년 그룹사운드 부분' 전국 랭킹 3위에 자리매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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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 2008년 여수 국제청소년 축제에 나가 당당히 3위를 하고 돌아온 아날로그. 올해만 모두 세 차례 전국대회에서 3위를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안성에서는 큰 경사라 할 수 있다. ⓒ 송상호


"'학과 공부'보다 더 큰 '인생 공부' 했어요"

이런 일을 '보거스 선생님'과 그의 제자들이 해냈다. 주위의 반응보다도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무엇보다도 큰 재산인 것이다. '보거스 선생님'에 의하면 이런 일들을 통해 학생들이 '개척정신, 도전정신, 자신감' 등을 갖게 되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에너지가 될 거란다. 실제로 '아날로그' 졸업 선배들은 군대에 가서 '그룹사운드'를 주도하여 조직하기도 하고, 직장에 가서 '그룹사운드'를 주도하여 조직하기도 한다고. 사실 그들은 '학과 공부'보다 더 큰 '인생 공부'를 아날로그를 통해 한 것이다.

"주구장창 연습하며 힘들어하는 경험, 자신들의 실력이 다른 팀과 비교되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경험, 대회에 나가 입상도 못하고 불합격하는 경험 등 실패해보는 경험과 많은 사람 앞에 나아가서 자신이 연습한 실력을 뽐내보는 경험,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맛보는 경험, 입상해서 환호하는 경험 등의 성공해보는 경험까지 아주 다양한 경험을 해보게 되는 것이 이 밴드부의 매력이죠. 이런 매력의 ‘아날로그’ 학생들과 함께 노는 것이 저의 큰 기쁨입니다. 하하하하."

아하, 이제야 알겠다. 이민우 교사가 왜 '보거스 선생님'인 줄. 이 교사의 외모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어린이의 친구 '보거스'가 있다면 청소년의 친구 '보거스 선생님'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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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현재 학교에 재학중인 아날로그 멤버들과 이민우 교사가 학교 교정에서 함께 폼을 잡았다. ⓒ 이민우 제공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9일 안성 가온고등학교 교무실에서 이민우 교사와 이루어졌다.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난 29일 안성 가온고등학교 교무실에서 이민우 교사와 이루어졌다.
#청소년 그룹사운드 #아날로그 #이민우교사 #안성 가온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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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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