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아름다운 삶, 사랑, 마무리를 위하여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읽고

등록 2008.12.30 14:40수정 2008.12.3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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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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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내남없이 근원적 선택을 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이는 우리가 어떤 가치관으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혀 다른 개성을 지닌 두 남녀가 동반자로 만나 반세기 동안을 흙에 뿌리내리고 열매맺으며 살아온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가 담겨있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나와 동시대를 살고 간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부부가 그리워 눈물짓곤 한다. 그들의 사랑과 삶 그리고 마무리는 어쩌면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상적인 삶은 현실에서 반드시 어떤 대가를 치르기 마련인가. 스물 여섯의 헬렌이 스코트를 만났을 때 그의 인생은 최악의 상태에 있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진보적인 사회과학자였던 그는 선과 도덕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대학 이사회가 자기들 권위에 대한 장애물로 여겨 해직시키는 바람에 그 동안 교수, 저술가, 웅변가로서 뛰어난 실력으로 쌓아온 찬란한 경력으로부터, 대학으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추방당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상상력이 풍부하고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상류사회의 바이올린 연주자 헬렌. 학계에서 고립되어 있던 스코트는 스물 한 살이나 연하인 이 헬렌에게서 편안함과 동지의식을 느낀다. 모두가 떠나버려 메마르고 고독한 채 가라앉은 그의 영혼에 헬렌은 부드럽고 푸른 색채로 스며들었다. 만일 스코트가 헬렌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마무리되었을까?

 

그녀는 스코트로 하여금 백살의 나이까지 건강하게 흙과 살면서 그의 삶을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게 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꽃망울까지 남김없이 피우고 가도록. 삶을 마무리할 순간이 다가왔을 때 스코트는 "여보! 당신과 함께 있어 좋았소. 당신은 매우 사랑스럽고 훌륭한 동료였소. 정말 만족스러운 삶이었소. 이보다 더 나을 순 없을 거요. 좋고 또 좋았소. 당신과 함께 있어 좋았소"라고 회고한다.

 

그녀는 그의 비서 겸 조수가 되어 스코트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인터뷰시 그가 숭배해온 톨스토이와 간디 말고 동시대인 중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했을 때 "헬렌!"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그는 헬렌을 신뢰하고 존경했다. 이세상의 그 어떤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이런 찬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헬렌이 스코트에게만 일방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다.

 

스코트는 헬렌에게 남편이면서 현인(賢人)이었다. 노년에 얻어지는 직관, 지식, 지혜, 훌륭한 유머는 젊은 시절에는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헬렌은 자기의 온갖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있는 현명한 연장자와 사는 것은 끊임없는 즐거움으로, 그것은 학교수업과 휴일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었다고 쓰고 있다.

 

또한 마음이 맞는 동반자와 함께 살면서 그녀는 숙달된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자신의 영혼에서 나오는 음악을 갖게 되었다. 또한 스코트는 그녀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으며 그 이상 더 좋은 동반자를 선택할 수 없었다고까지 고백하고 있다. 그들의 첫 만남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존재를 크나큰 가치와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발견이었으며 서로의 인생을 활짝 피어나게 했다.

 

화장지도 네모 반듯하게 접어 쓰는 남자와 아무렇게나 옷을 집어던지는 여자의 만남, 박학하고 빈틈없으며 잘 연마된 정신을 지니고 있는 스코트와 환상적이고 즉흥적이며 학문과는 거리가 먼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헬렌, 이렇게 서로 다른 이들 부부는 힘께 운율을 맞추어 노래를 불렀고 같은 박자로 움직였다.

 

그들은 서로의 선율에 적응하면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서로 다른 그들이 함께 한 삶은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화음의 이중주를 만들어냈다. 이들 부부의 성품은 정반대였지만 완벽하게 서로를 보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있었으나 나중에는 균등하게 되었다. 그들 부부의 저서 제목처럼 '조화로운 삶'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는 토론과 동료애로 서로의 특유한 개성을 이해하며 나란히 충족된 삶 속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들은 서로 보완하면서 가까이 닿아있는 평행선 상태로 여행했다고 술회한다. 서로 마주보지 않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들의 주된 정서는 생각과 행동에서 조화롭고, 서로 믿고, 배려하고 존중하는데 있었다.

 

그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을 알았고 서로의 행동과 의견을 존중했다. 어떤 부부에게나 공동의 관심사가 있는가 하면 서로 다른 관심사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서로의 적성을 존중하며 같이 성장하는 한편, 다양한 방면으로 각자의 날개를 무한히 펼쳐나갔다.

 

그들의 삶은 부부 사이는 물론 땅과 그 위의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삶이었다. 어느 한 쪽도 구속을 하거나 희생당하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도 피해나 불편함을 끼치지 않으면서 만족스럽게 살다 갔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주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불편해 하고 불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책은 그 동안 읽었던 어떤 책보다도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감동을 주었다. 한 세기를 만족스럽게 살다간 사람이 남긴 지혜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의 궤도를 수정하게 만들었다. 조금은 불편(?)했던 남편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게 했고, 일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했으며 죽음에 대한 인식도 바꾸게 해주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변화로 그것은 삶의 단절이 아니며 그것은 사랑, 삶과 연결된 한 고리임을, 그것은 우리가 지향하며 일해온 우리 삶의 일부임을 인식시켜주었다.

 

헬렌과 스코트는 죽음과 늙음 그리고 일과 인류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그들의 삶을 통해 온몸으로 보여준다. 일은 사람이 늙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 일하는 사람은 권태롭지 않고 늙지 않는다고 한다.

 

희망과 계획의 자리에 후회가 들어갈 때 사람은 늙는다. 일과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은 늙음을 막는 가장 훌륭한 처방이다. 일이 곧 삶이므로 일이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며 늙어서도 일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스코트와 헬렌의 진지함은 조금만 힘들어도 그저 쉬고 싶어했던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다.

 

노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자상한 스승처럼 가르쳐준 이들이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자세 또한 경이롭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어떤 태도로 죽음을 맞는가 하는 열쇠는 온전히 우리 손에 달려있다.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보낸 삶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다 준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처럼 50권이 넘는 책을 쓴 박학다식한 저술가이자 억센 농부로서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던 스코트와 헬렌의 죽음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이들의 삶의 방식은 대량소비와 환경오염으로 전 지구촌이 위기에 처해있는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스코트가 백 번째 생일을 맞던 날, 이웃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왔는데 그 깃발에는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되었다"라고 씌여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우리가 살아서 지구는 점점 더 오염되어 가고 있는데... 무서운 속도로 파괴되어 가는 생태계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오늘도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지구는 지난날보다 더 살기에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그는 우리가 저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우주의 본질적인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므로 저마다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공동목표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언제나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면서 사람들과 사회의 바퀴 아래 갇히고 싶어하지 않은 헬렌에게 "억압이 있는 세상에서 당신은 자유로울 수 없다. 낮은 계층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그 속에 살고 있다. 범죄의 요소가 있는 한 우리는 그 일부다. 감옥에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타이르는 대목은 그가 얼마나 전인류적인 사고를 지녔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 부부의 삶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빚어낸 최고의 예술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들 두 사람은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반세기 동안을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운 하모니의 2중주를 완벽하게 연주해낸 것이다. 그들의 삶은 요즈음처럼 각박하고 살기 힘든 시기에, 살얼음 딛듯 불안하게 절망의 시대를 건너고 있는 우리들에게,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아름답고 드높을 수 있는지, 세상은 얼마나 살맛 나는 곳인지 희망의 불씨를 지피게 한다.

2008.12.30 14:40 ⓒ 2008 OhmyNews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보리, 1997


#삶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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