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마지막 DMZ에서 보내다

DMZ 평화 기행을 다녀와서

등록 2008.12.30 17:11수정 2008.12.3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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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 한계선으로 철책선이 세워지고 그것만큼 남과 북의 사이도 벌어지게 된다. ⓒ 박민수


철원에서 보는 하늘. 서쪽 하늘을 따라 유난히도 빛난 별이 하나 보인다. 금세 누군가 "저건 금성이야"라고 소리쳤다. 처음 안 사실이지만 서쪽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금성이라고 한다. 서울에서의 뿌연 하늘과 바쁜 하루의 일상은 우리에게 하늘과 별을 빼앗아 갔다. 누구나가 함께 볼 수 있는 귀한 자연이지만,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렇듯 일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여유와 감흥을 준다. 사람과 건물로 빼곡히 쌓여 있는 서울의 정경에서 벗어나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한적한 곳. 2008년의 마지막을 DMZ와 함께 보내었다.  

우리가 거닐 수 있는 남한의 최북선의 도로를 따라 파주, 철원, 연천에서 교하초소, 태풍 전망대, 도쿄 저수지, 월정리역, 평화 전망대, 노동당사 등을 방문했다. 기독청년아카데미와 생태지평이 주체한 "DMZ 평화 기행"을 2008년 12월 26일에서 27일까지 다녀왔다.


'야단법석'이란 말이 있다. 우리는 흔히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서 서로 다투고 떠들고 하는 시끄러운 판"을 묘사할 때 이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말의 본래적 의미는, '야'외에서 '단'을 차려놓고, '법'문을 듣는 것이다. 이러한 '야단'이 근대 교육에서의 기획과 맞물려 '교단' 중심의 교육이 되어 버렸다. 이반 일리히 선생님이 이야기 하시듯, 이제 배움은 "학교"의 독점물이 되었고 그 배움의 장소는 오직 학교의 '교단'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야단'으로 나가 배우는 것이다. 특히, 천혜의 자원을 가지고 있는 DMZ의 역사와 그 의미는 우리의 배움의 열정을 무색케 하지 않았다.

분단의 최고 갈등선인 군사 분계선과 그 앞뒤로 이루어진 DMZ. 그러나 또 한편에선, 그곳은 남한과 북한이 만나는 곳이다. 이 만남 속에 새로운 관계와 희망이 꽃피울 수 있다. 군사 분계선과 DMZ의 이중적 의미. 군사적 분열과 긴장이 최고조이지만 또 한편으로 서로의 소통과 열림이 있는 바로 그곳. 그 곳으로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떠나간다.  

파주 교하 초소 : '강'의 만남, '사람'의 만남, '통일'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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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 빛이 있는 곳엔 어둠이 있을 수 없다. ⓒ 박민수


우리가 처음 방문한 곳은 교하초소이다. 서울 길음역에서 출발해서 1시간 남짓 후 도착한 이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난다하여 '교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동고서저의 한국 지형 아래에서, 남한에서 가장 큰 한강이 굽어 굽어 흘러오고, 북한 저편에서 임진강이 흘러들어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강이 한강 하구를 따라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한강 하구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강과 강의 조우. 사람과 사람의 조우. 이 만남 속에 펼쳐질 수 있는 평화의 노래. 이 비밀이 한강 하구에 숨겨져 있다. 한강 하구는 애초부터 군사적 의미의 어떤 '선'이나 '지대'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군사 분계선은 공식적으로 정전 협정에 의해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을 보여준다. 이 대치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각각 2km씩을 비무장 지대 즉 DMZ(De-Militarized Zone)라 한다. 비무장 지대 외곽의 일정 부분을 민간인 통제 구역(이하 민통선)이라 하여 민간인이 들어가는 것을 통제한다. 남한에서 북한으로 가기 위해선 이러한 세 개의 선을 지나야 한다. 민간인 통제선을 넘어야 하고  비무장 지대를 넘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군사 분계선을 넘어야지만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이 가지는 재미있는 비밀이 있다. 동쪽의 고성으로부터 시작하는 군사분계선은 남과 북의 육지를 따라 쭉 이어져 내려 온다. 그 선은 나름의 형태와 의도를 가지고 남과 북을 실제로 가르고 있다. 그러나 동에서 흘러오는 그 선은 서해로 가까워오며,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에 이르고, 서해와 만나는 지점에 도착하게 된다. 군사 분계선은 서해로 흘러가는 한강 하구를 가르고 있는가? 답은 이미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니다."  군사 분계선은 고성부터 장단까지 155마일이며 "장단면 정동리 즉, 임진강 하안"에서부터 끝이 난다.

1953년 정전 협정이 체결된 지 3달째 접어든 10월 3일. 한강 하구에 관한 부속합의서가 체결된다. 여기서 '한강하구 수역'라는 공식 명칭이 부여되고 한강 하구는 남북이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지만, 거기는 군사분계선도 DMZ도 없다. 정전협정 이후 만들어진 후속 문서에서는 군용선박이나 무기, 탄약을 실은 배의 출입 같은 것을 제하고서는 남북 쌍방이 오랫동안 한강 하구를 이용하던 관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문구가 삽입되어 있다.

조금 이야기를 돌려보자.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9월 김정일 국방 위원장을 만나러 북한에 갔을 때, 차량을 이용한 것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탐방하기 이전, 노무현 대통령 및 그 일행은 "유엔 사령관"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남한의 대통령이 북한을 차량으로 방문하는데 왜 유엔 사령관의 허락을 맞아야 했을까?

그것은 남한 쪽의 비무장 지대를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 이후, 정전 협정 시, 협정의 주체에서 남한 정부는 제외되어 있었다. 북쪽의 주체는 중국과 북한 정부이고, 남한의 정부는 유엔 사령부였다. 즉, 정전 협정상 비무장 지대의 통제권은 유엔사령관에게 있는 것이며 남한의 비무장 지대는 남한의 땅이지만, 유엔 사령관의 허락없이는 그 어떤 것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한강 하구 수역은 열린 공간이며 남과 북의 민간인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며 외부세력의 허락 없이 우리의 통일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평화와 상생의 공간'이다. 육지로 굽이 굽이 치던 그 선이 왜 하필이면 서해의 끝자락에서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그 지점으로 흘러왔을까? 그 선이 조금만 더 위로 흘러갔거나, 조금만 더 밑으로 흘러 갔다면 평화의 공간, 한강 하구 수역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선물은 받아야 하고 누려야 한다. 여전히 남과 북 안에 있는 법적 제재 등 넘어야 할 벽이 존재하지만, 한강 하구 수역은 민간인이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통일의 서곡이 될 수 있다.

태풍전망대 : 철책선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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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DMZ를 보기 위해 태풍 전망대로 갔다. ⓒ 김태우


또 다시 버스를 탔다. 교하 초소에서 안 사실들이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이상하리만큼 뜨거워지는 가슴. 우리 기행단의 두번째 목적지는 "태풍전망대"였다. 실제 북한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고, DMZ를 가장 시원하게 볼 수 있다는 전망대. 그러나 내 가슴은  전망대에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싸늘해 지고 있었다.

태풍전망대에서, 함께 온 45명 정도의 사람에게 전망대에서 보이는 여러 지형과 그 지형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정훈병사를 만났다. 한마디 막힘도 없이 술술 흘러나오는 병사의 설명 속에, 군대라는 공간에서 주어진 습속화된 분단 이데올로기의 잔상을 너무 뼈저리게 느꼈다. '적군'이라는 말, 전투에서 우리 부대가 어떻게 저 고지를 점령했는지에 관한 설명, 군사분계선으로부터 2km였던 비무장지대가 어떻게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좁혀와 바로 눈앞에서 보이게 되었는지, 지형을 바라보기 위해 보는 유리가 왜 방탄 유리가 되었는지에 대한 일화 등 모든 이야기가 분단을 배경으로 북한을 적으로 간주한 채 '우리 중심'에서 이야기를 펼쳐냈다.

더 가슴 아픈 이야기는 DMZ를 표시하는 철책선에 관한 것이다. 정전 협정 당시, DMZ는 듬성 듬성 박혀 있었던 말뚝으로 경계가 주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뚝이 68년 제 2의 한국전쟁의 위기를 지내며 북한의 제의에 의해 철책선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철책선만으로 모잘라 고압선을 그 위에 또 깔게 되었다.

또한 태풍 전망대에서, 남, 북한의 지형도를 보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남방 한계선, 북방 한계선과 군사 분계선 사이에는 또 하나의 선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추진 철책'이다.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난 GOP와 GP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기행을 통해 안 사실은, GP는 DMZ 안에 있는 각 초소를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GP를 연결하는 선이 추진 철책이다. DMZ는 말 그대로 비-무장 지대이다. 즉 무장을 해선 안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남과 북 모두는 무장을 한 채 DMZ에 초소를 설치하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처음 세운 정전 협정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우리 스스로가 서로에 대한 벽을 더 쌓아 나가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정말 무서운 것은 '정전 협정'이 아닌 '정전 체제'이며 '분단 체제'이다. 협정에서 체제로의 변화는 외부의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강제하는 '자기 구속'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구속에 익숙해지며 습속화되는 것이다.

한강 하구의 기쁨에, 한강 한구의 가능성에 뜨거워졌던 마음이, 그 철책선을 바라보며 왜 그리도 냉담하게 변해버린 걸까? 아무 것도 없어도 될 그 곳에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철책을 올리고 그 철책에다 또 고압선을 설치하는 이 비극. 우리는 그 비극 속에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그것이 비극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그 비극의 노예로 잡힌 우리의 습속이다.

노동당사 : 분단 체제 하에서의 언어의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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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사 앞 열정의 공간 광장에서 단체로 사진을 찍었다. ⓒ 박민수


하루 밤이 지났다. 우리가 향한 곳은 철원의 '노동당사'이다. 노동당사는 거의 기적적으로 보존된 건물이다. 1950년. 6월 25일부터 시작된 직접적인 남북한의 공격은 한 차례씩 남과 북을 오가며 지금의 군사 분계선이 있는 지역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2년의 긴 시간동안 이곳은 뺏기고 뺏는 전투가 이어진 곳이다.

폭격과 치열한 전투가 횡횡했던 철원에서 미약하나마 아직 그 뼈대가 남아 있는 곳이 바로 노동당사이다. 1947년 김일성 대학이 만들어지고 흉년이 풀리면서 노동당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노동당사의 특징은, '광장'이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의사를 진행하고 정치적 참여를 이룰 수 있는 공간. 함께 모여 축제를 열 수 있는 공간인 광장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의 놀라운 힘을 보여준다. 억압당하고 차별받으며 살아왔던 민중들에게 이 광장이 가지는 의미는 분명 그들의 존재의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는 일이었으리라. 이곳에서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고 연일 해방의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을 것이다. 이 열정과 축제의 분위기가 건축의 미학 속에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노동당사를 설명하는 '간판'에는 이와는 다른 내용이 적혀 있다.

"공산 독재의 정권 강화와 국민통제.... 1개리당 백미 200가마씩을 착취..."

남한이 규정하는 노동당사는 해방 이후 농민과 민중을 착취하는 곳이며 공산 독재 정권이 인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구속하는 수단으로서 존재했다. 그러나 이시우 선생은 <민통선 평화 기행>에서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문건을 찾아 보아도 실제 여기 살았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물어보아도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한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믿어 온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렇게 믿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로 되는 그 희망이 희미해 보인다는 것이다. 하나의 팻말, 하나의 문장, 하나의 말. 이는 우리의 자그만 태도 속에 우리가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상이다. 그러나 희망이 흐릿하다면 그 희망을 분명하게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우리의 의식과 우리의 태도 속에 깊숙히 뿌리박혀 있는 적대적 태도이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도록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어 버리는 우리의 가짜 순진함 때문이다. 하나되는 것에 대한 희망을 살리기 위해 우리 안에 내부화된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이 비극은 단순히 우리 인간만의 비극이 아니다.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숲. 우리는 전쟁의 이면 속에 있는, 문명의 배후에 있는 '숲'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환경을 파괴하는 가장 빠르고 가장 극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전쟁이다. 치열한 전투의 현장은 인간 뿐 아니라 모든 것이 파괴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전쟁이 지나간 후 50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이곳은 다시 그 본래의 모습을 찾았는지 모른다.

DMZ.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공간. 분단 체제의 연장으로 손이 닿지 않는 이 공간에서 자연이 가장 평화롭게 그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며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생명과 평화의 동산 : 두루미와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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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들이 강에 앉아 먹이를 먹고 있다. ⓒ 김태우


이번 "DMZ 평화기행"을 다녀오며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다. 그것은 그곳에 사는 두루미, 독수리, 기러기 등의 철새와, 고라니이다. 전 세계 15종으로 우리 나라에만 오는 두루미가 6종 정도다. 특히 시베리아가 서식지인 두루미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 북한을 건너 남한으로 오고, 더 추워지면 일본으로 간다고 한다.

이번 기행에선 두루미와 재두무리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두루미와 재두루미의 차이는 키와 색깔로 구분할 수 있다. 두루미가 재두루미보다 20cm터 정도 더 크고, 재 두루미는 회색빛이 많이 있다. 이 야생동물들에겐 비무장 지대와 민통선은 최적의 삶터이다. 파주, 연천, 철원 등의 DMZ와 민통선에서는 사람이 많이 없고, 농지가 많다. 잠자리와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이 지역은 그래서 그들에게 천혜의 터가 될 수 있다.

DMZ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생명력이 그 힘을 뻗친 역사를 지닌 곳이다. 민통선은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으로 역시 한적하고 개발이 더딘 곳이다. 하지만, 개발의 압력이 불어오고 있다. 통일의 물결 속에 천연 그대로 살아움직이는 이곳은 개발업자들에게 최적의 자본 투입지이다. 구지 개발업자가 아니더라도 남한과 북한에서 짓는 허무맹랑한 댐은 두루미와 각종 생명들의 서식지를 수몰시킬 위험이 있다고 한다. 임진강에 이미 세워진 북쪽의 4개의 댐. 그런데 남한에서는 또 하나의 댐을 건설하여 홍수조절을 한다고 한다. 이 댐을 건설하면 그 지역 부근에 위치한 행산리 마을이 반이 수몰되고, 그래서 국가에선 아무 대책 없이 수몰되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을 권장했다고 한다.

민통선과 접경지역에서 사는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이 개발을 원한다. 농사만으론 살기가 쉽지 않고 개발되면 무언가 떡고물이 떨어질 것 같아서이다. 아무리 이 지역을 보존하고 보호하고 싶어도 주민들의 개발 의지와 자본이 만나면 그 지역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다. 새만금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여도 그 지역의 주민이 찬성하면 자연을 보존하는 운동은 허사가 되기 일쑤다.

우리들의 개발욕과 성장욕은 두루미와, 독수리, 고라니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뺏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도 논두렁에 앉아 있는 두루미와 뛰어다니는 고라니를 보고 기뻐했을까? 차로 오가며 누군가 "저기 두루미다, 저기 고라니가 뛰어다닌다"라는 그 말에 왜 그리도 흥분하며 우리의 시선을 집중했을까?

분단의 최전선에서, 가장 평화롭게 살아가는 각종 생명체를 보며 감동했다. 그러나 남북의 평화가 오히려 그 생명체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이치를 깨뜨리는 무서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그러기에 DMZ는 또 다시 한번 모순과 이중의 공간이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이 어떻게 다른 생명들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생명과 평화의 동산을 만들 수 있을까?

국가의 정책도, 개발업자들의 욕심도, 그곳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어려움도 DMZ의 전망을 밝게 하진 않는 것 같다.

암울한 심정 속에 두루미와 고라니를 보며 환호성 치는 우리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단 한번도 내 인생에서 생각해 보지 않은 두루미와 고라니가 이젠 내 인생에서 참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린  그 시간들이 생각났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고, 사람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 빛이 어둠을 이길 것이라 믿어볼 수 밖에 없다. 패배감 보다는 그 믿음으로 시대의 모순이 서려있는 이 DMZ를 잘 지켜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뉴스앤조이에 실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앤조이에 실을 것입니다.
#DMZ #두루미 #평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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