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세 명의 청소부

세 권의 책을 통해 만난 청소부(1)

등록 2009.01.09 21:04수정 2009.01.0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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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취업난의 반영일까, 아니면 안정된 직업에 대한 선호일까? 시험공고가 나자마자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우습게 기록하는 공무원 시험 열기 속에 자치단체 환경미화원 시험도 여타 공무원 시험 못지 않은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시험을 신청하거나 낙방 후 재수, 삼수도 불사한다고 하니 환경미화원, 쉽게 말하면 '청소부'도 어느새 인기 직종이 됐다.

 

간혹 '체험, 삶의 현장'같은 프로를 보면 청소부의 노동강도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남들이 잠든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아주 가끔은 교통사고 등 사고위험에도 노출된다. 연봉은 비교적 높고 정년도 무난하게 보장된다지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라는 어느 신문기사의 설명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나도 한때는 '청소부'를 꿈 꿨다. 돈이나 안정성 때문만은 아니다. 세 권의 책을 통해 만난 청소부의 삶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 닮고 싶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청소부를 소개한다.

 

책 읽는 노동자, 책 읽는 청소부

 

a  '행복한 청소부'의 표지 모습.

'행복한 청소부'의 표지 모습. ⓒ 윤평호

'행복한 청소부'의 표지 모습. ⓒ 윤평호

나를 매료시킨 첫 번째 청소부는 독일의 거리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 아저씨이다.

 

그 아저씨는 아침 7시면 출근, 파란색 작업복에 파란색 고무 장화를 신고, 파란색 사다리와 파란색 솔과 파란색 가죽 천을 받아 거리로 나선다.

 

청소부 아저씨가 맡은 구역은 몇 년째 똑같다. 바로 작가와 음악가들의 거리. 그 거리의 표지판을 늘 깨끗이 닦는 것이 청소부 아저씨의 역할이다.

 

변화는 어느날 싹텄다. 그날도 열심히 음악가 거리의 한 작곡가 표지판을 닦고 있던 청소부 아저씨. 거리를 지나가던 아이와 엄마가 작곡가 표지판을 보고 나누는 대화를 무심코 듣고 충격을 받는다.

 

매일 닦는 표지판이었지만 정작 표지판에 이름이 새겨진 인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청소부 아저씨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사다리에서 내려와,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들고 공중에다 던졌어. 그림이 나오면 음악가부터 시작하고, 숫자가 나오면 작가부터 시작할 생각이었어. 동전이 바닥으로 쨍그랑 떨어지며, 반짝반짝 춤을 추며 돌다가, 핑그르르 멈추었어. 그림이 나왔어."

 

퇴근 후 아저씨는 집에 돌아와 거리 표지판에 등장하는 음악가 이름을 종이에 죽 썼다. 글루크-모차르트-바그너-바흐-베토벤-쇼팽-하이든-헨델. 그 종이를 벽에 압정으로 박아놓은 아저씨는 신문에서 음악회와 오페라 공연에 관한 정보를 모았다. 날짜가 되면 공연장을 찾았다. 레코드 플레이어도 하나 구입해 거실에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음악가들에게 자신이 생기자 청소부 아저씨는 벽에서 명단을 떼어냈다. 그리고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다 새로운 이름들을 썼다. 괴테-바흐만-브레히트 등 작가들 이름이었다. 종이는 원래 자리에 붙여놓고 작가들의 책을 한권 한권 시립도서관에서 빌렸다. 무슨 뜻인지 알게 될 때까지 책들을 되풀이해서 읽었다.

 

"아하! 말은 글로 쓰인 음악이구나. 아니면 음악이 그냥 말로 표현되지 않은 소리의 울림이거나."

 

노동의 장소는 동일했지만 형태는 달라졌다. 청소부 아저씨는 작가와 음악가 거리의 표지판을 닦을 때 음악가의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불며, 작가의 시를 읊조리고, 가곡을 부르고, 읽은 소설을 다시 이야기하면서 표지판을 닦았다.

 

"이제 아저씨는 시립 도서관에서 음악가와 작가들에 대해 학자들이 쓴 책을 빌리기 시작했어. 그 책들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때로는 결코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어. 시간이 흘러, 아저씨는 꽤 나이를 먹었어. 아저씨는 예나 지금이나 표지판을 돌보고 보살폈어. 이따금 손가락 끝으로 이제는 너무도 소중해진 이름들을 어루만지며, 일하는 동안 자기 자신에게 음악과 문학에 대해 강연을 했지."

 

청소부 아저씨가 작업할 때면 사다리 위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사다리 아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사람들이 많아지며 TV 카메라 기자도 찾아오고 대학의 강의요청도 들어왔다. 아저씨의 선택은?

 

"나는 하루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청소부에게서 알게 된 배움의 즐거움

 

요즘에도 한 직업에서 '떴다'하면 스타강사로 강연요청이 쇄도하고 한때는 '신지식인'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 사람들의 현재가 지금도 그때처럼 행복으로 충만하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모니카 페트가 쓰고, 안토니 보라틴스키가 그린 <행복한 청소부>(풀빛) 속 청소부 아저씨는 지금도 행복할 것 같다.

 

청소부 아저씨야말로 일상에서, 일상 너머의 세계를 알게 되고 그것을 다시 일상에서 아름답게 가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의 아름다움', '배움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청소부가 대학교수가 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나는 그런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이상 사회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청소부'를 읽으며 마음에 걸렸던 점도 있다. 청소부 아저씨의 가족이 없다는 것, 청소부 아저씨같은 삶을 동경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이 없어야 되는 것인지 한동안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무튼 지금 내 직업은 청소부가 아니며 그 후 나는 결혼을 했고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예쁜 아기도 있다. 그리고 책 읽기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덧붙이는 글 |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2009.01.09 21:04ⓒ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행복한 청소부

모니카 페트 지음, 김경연 옮김,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풀빛, 2000


#행복한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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