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본부 게시판에 처음 글을 올려보네요. 저는 이번 일제고사 문제로 '해임' 조치를 받은 2.08년차 교사 최혜원입니다. 그동안 늘 본부에 대한 마음, 속으로만 삭이다가 결국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발령나고 나서 1년, 교원노조 가입을 두고 고민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직 내 철학도, 가치관도 제대로 서지 못한 상태에서 조직에 가입하는 것이 꺼려져 어차피 가입한다면 전교조 뿐이리라, 하면서도 내내 가입을 미루고 있었지요. 그러나 교육 현실과 맞닥뜨린 지 1년 여만에 저는 덜컥 전교조에 가입했습니다. 오히려 빨리 가입하지 않은 것이 참 후회스러울 정도로, 저는 전교조가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간 교장, 교감, 부장급 교사들에게 짓밟힌 자존심도 되찾았고, 정말 너무나 훌륭한 선배들을 줄줄히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 교육활동이 틀리지 않았다는 교사로서의 자부심과 올곧은 철학 또한 가슴에 품게 해준 전교조가 저는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처음 전교조와 인연을 맺게 해준 것은, 인디스쿨과 한국글쓰기연구회 식구들이었습니다. 참으로 굳건하게 앞길을 일구어나가며 묵묵하게 아이들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의 이름 뒤엔 늘 '전교조'란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이 저에겐 얼마나 눈이 부시고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첫 해 아이들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실컷 뛰어놀고 배우다가 관리자에게 끌려가 훈계를 들어 풀이 죽은 저에게, "그 때 아니면 못해, 하고싶은 대로 마음껏 해봐!" 하고 말씀해주셨던 이주영 선생님, 어쩜 저렇게 많은 일들을 기운차게 해 나가시는지, 그 깊이 있는 교육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건지 정말 궁금했던 초참 이영근 선생님, 볼 때마다 그 선함과 그 감수성이 절절히 와 닿아 늘 저를 감동하게 만들었던 김익승 선생님, 그리고 제 6학년 시절 눈 감아도 떠오를 추억을 주신 남상욱 선생님, 모두 '전교조'의 이름을 자랑스레 달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교조가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가입하고 난 뒤 저는 제가 전교조임을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자랑스레 알렸고,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가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회 활동도 시작했고, 훌륭한 선배님들과 함께 많이 부족하지만 편집국장 역할을 맡아 지회보를 펴기도 했습니다.
조금씩 저는 전교조 안에서 단단해져 갔고, 고민과 실천을 함께 만드는 훌륭한 교사 되겠다는 자부심도 날로 단단해져 갔습니다. 관리자와의 충돌로 더이상 자존감을 깎아먹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오만함, 제 자신에 대한 긍지와 사명으로 하루하루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좌빨이니 뭐니 모든 국민들이 전교조에 대한 오해로 쏟아지는 욕을 먹을 때에도, 아니라고, 아니라고, 오해라고, 내가 그 오해를 풀어보겠다고, 억울해하고 가슴 치며 답답해 했던 것이 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요즘의 저는... '전교조' 라는 이름이 가끔 부끄럽습니다. 전교조 또한 결국 수없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임을 깨달았고, 그 생각들 또한 내가 굳게 믿었던 '전교조'만의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그런 생각들 뿐은 아니었음을 날로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법'의 차이라구요? 아니요. 방법의 차이가 아니라 철학의 차이이겠지요. '내가 옳다'구요? 아니요... 몇몇 조합원에게는, 대체 무엇을 위해 당신은 이 곳에 가입했고 싸우고 있는지를 묻고 싶을 만큼 가슴을 치며 답답한 적이 많았습니다. 선배님, 선배님은 대체 무엇을 위해 전교조에 가입하셨는지요?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지요? 그 답을, 2.08년차가 이렇게 괴로워하며 찾으려 노력해야할 만큼 전교조는 얕은 곳이었는지요?
내 적이라 여겨지는 그들이 우리를 짓밟으면, 우리는 들불같이 일어났고, 더욱 더 단단해졌습니다. 그렇지만... 내 아군이라 믿고 마음 내주고 열었던 그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생 살에 소금 뿌리듯 아프고 괴로웠음을 왜 모르시나요?
해직당하고 얼마 후, 중집에 참관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고민이 비록 3년 못 채운 새내기인 저로서도 '아이들' 이 중심인 고민이었음을 알기에 더 훌륭한 선배들은 더 훌륭한 답을 찾아주시리라 저는 굳게 믿고 참관을 했습니다. 지금도 날마다 영혼이 메마름을 느낄 만큼 어린 저에게 너무 큰 고통을 겪고 있음을 훌륭한 선배님들께서 그 누구보다도 더 절절하게 공감하시리라 믿고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아 참관하는 내내 제가 느낀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치, 중징계 의결을 받았음을 다 알고도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평화롭게 일상을 꾸리던 동학년 회의 시간 침묵하는 다수 동료교사들의 그 평온함... "너는 법을 어겼다"며 윽박지르던 관리자의 그 잔인함... 마치 무슨 귀찮은 짐 처리하듯 무관심과 공감 없음, 일처리에 대한 사무적 태도... 그 속에서 저는 무엇이 되었습니까? 제가 당신들에게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싸우지 못한 무모함' 이었습니까?
전교조가 아닌 그들이 저를 위해 울어줍니다. 전교조도, 교사도 아닌 많은 시민들이 저를 위해 날마다 기도합니다. 제가, 그리고 그들이 이 땅의 고통받는 아이들과 망가져가는 교육을 위해 날로 칼을 벼릴 때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투쟁 방향을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었습니까? 교찾사다, 참실련이다, 정파를 두고 싸우셨습니까? 현실적으로 실현이 어려운 투쟁이라며 기각 표를 내밀고 계셨습니까? 당신의 눈에는, 정말 어린 제가, 그보다 더 어린 저희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까?
시대의 배신에 가슴이 사무쳤다고, 제가 그렇게 울부짖었지요... 시대의 배신에 뿌린 눈물 위로 전교조의 배신으로 찢어진 그 가슴은 어찌해야 할까요?
눈에 보이는 몇몇 자리에 참석해 촛불을 밝히고, 사진을 찍고, 다 잘 될거라며 공감 없는 평온한 인삿말을 건네는 당신들에게 저는 몇 번이나 화가 치솟고 울분이 터졌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를 위해 무엇을 해주셨나요? 그래서 저희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오늘은 농성장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방에 홀로 남아 생각에 잠기며... 제 친구가 남긴 한 마디를 다시 곱씹어봅니다.
'지금 아이들과 행복한 교사는 '좋은 교사' 이지만, 진정 '훌륭한 교사' 는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미래까지도 고민하는 교사'
라는 말을요...
'초심으로 돌아가자' 고들 말씀하시지요. 저희를 보세요, 3년차, 7년차, 10년차 교사로 해직교사의 이름을 얻고도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뚜벅뚜벅 걸었을 뿐' 이라며 아픈 이들끼리 핥아주고 보듬어주며 쓰린 하루를 살아가는 저희를요. 그래도 가슴 아프지 않다면, 그럼에도 아무 느낌이 없다면, 당신은 전교조를 떠나십시오...
... 글이 많이 격해졌습니다. 오만한가요? 이게 제 솔직한 마음입니다. 감추고 포장하는 것, 더는 안 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시 교육청 앞 농성장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등에 칼을 꽂았던 몇몇 선배님들이 앞으로 어떻게 교육 현실을 일구어 가는지를요. 한 번 해직으로 모자르다면, 당장 복직하고서 두 번, 세 번이라도 해직 당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싸우겠습니다.
'적과 아를 구분하라' 고 말씀하셨었지요. 저는 이제 '적' 이 누구인지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건 적이 아닌 아였다고 말씀하실건가요? 이제, 믿지 않습니다...
부디, 부디 늦기 전에 제가 가졌던 그 가슴 뜨거운 자부심 되찾길 오늘도 간절히 바래봅니다... 제가 '전교조' 라는 이름을 자랑스레 마음에 안고 다시 교단에 설 수 있길...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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