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무늬 처음이라, 평생 한번 찾을까 말까해"

나무에 천년의 생명을 불어넣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설석철옹

등록 2009.01.12 16:18수정 2009.01.1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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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설석철옹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설석철옹 ⓒ 조찬현


목수는 대목과 소목으로 나뉜다. 목재를 다루어 창호나 장롱, 문갑, 소반 등의 가구와 그 밖의 목공품을 만드는 장인을 '소목장'이라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소목장은 나라와 궁궐에서 사용하는 목공예를 만드는 일을 했다.


실용적인 우리나라의 목가구는 대체적으로 높이가 낮고 작다. 별다른 장식이 별로 없으며 나무의 결을 살려 자연 그대로의 멋을 냈다. 그래서일까. 설옹의 작품은 다복한 가정의 행복함과 정겨움이 소박하게 담겨있다. 하여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마음을 매료시킨다.

남녀의 생활공간을 구분했던 옛날에는 가구의 양식에도 차이가 있었다. 남자들이 기거하는 사랑방에는 책장, 문갑 등이 있었고,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방에는 좌경, 장롱, 반짇고리 등을 두었다.

한국의 전통가구를 만드는 장인, 소목장

전남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한국의원 근처의 골목길.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기능 보유자인 설석철 옹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어느 집일까 살피고 있는데 2층에 나무가 가득 쌓인 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문득 "저곳에 선생님이 살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사립으로 들어섰다.

둘째 며느리가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현관에 걸린 대가족사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손님의 방문에 난로에 불을 지피던 둘째 며느리 오형숙(48)씨는 어떤 특별한 날이 아니면 모든 가족이 모이기란 어려운 게 사실인데도 가족들이 자주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5남 2녀를 둔 설석철 옹의 가족은 손자 손녀가 다 모이면 식구가 무려 33명이나 된다. 


"늘 가족들이 모여요. 한 달에 한번쯤...다들 놀래곤 하죠."

a  5남 2녀를 둔 설석철 옹의 가족은 손자 손녀가 다 모이면 식구가 무려 33명이나 된다.

5남 2녀를 둔 설석철 옹의 가족은 손자 손녀가 다 모이면 식구가 무려 33명이나 된다. ⓒ 조찬현


설 옹은 오후가 되면 경로당에 나간다. 얼굴과 눈 주위의 까만 멍은 경로당에서 지인들과 어울려 술 한 잔 먹고 귀가 길에 길에서 넘어져 그렇단다. 아들 셋이 소목장 전수를 했으며 둘째 딸은 서울에서 전시장을 운영한다.


"이제는 눈이 안보이고 그란께 작품은 제대로 못하고 갈차만 주고 그래요."

거실에 놓여 있는 참죽나무 평상과 탁자를 붙여놓으니 침대가 된다. 참죽나무 평상은 와상 또는 용상이라고도 부른다. 거실 곳곳에는 설 옹의 작품들이 가득하다. 17세부터 시작한 일이 올해로 벌써 65년째다. 축령산 자락의 추암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나무를 많이 다루고 살아서 자연스럽게 나무와 친해졌다. 지게, 베틀, 농기계 등을 직접 만들어 생활에 활용하곤 했다.

"축령산 휴양림 바로 밑에서 살았어."

백발이 성성한 그는 대화 내내 맑은 미소를 지으며 작품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해줬다. 나무의 결을 찾아 조각내 붙였다는 나무의 대칭은 경이롭다. 용의 형상을 닮은 나무는 용목이며 ‘느티나무는 죽어 천년 살아 천년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느티나무와 먹감나무, 백동을 소재로 4년여에 걸쳐 완성했다는 '먹감문갑탁자'의 문양은 정말 곱다. 먹감나무의 아름다운 단면 무늬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전통목가구와 함께 한 외길 한평생

a  '먹감문갑탁자', 먹감나무에서 찾아냈다는 문양은 흡사 붓으로 채색한 느낌이다. 색감이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먹감문갑탁자', 먹감나무에서 찾아냈다는 문양은 흡사 붓으로 채색한 느낌이다. 색감이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 조찬현


a  살구나무로 만든 죽비는 그 소리가 맑고 경쾌하다.

살구나무로 만든 죽비는 그 소리가 맑고 경쾌하다. ⓒ 조찬현


먹감나무에서 찾아냈다는 문양은 흡사 붓으로 채색한 느낌이다. "어느 누가 나무결이라고 믿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감이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자연에서 온 먹감나무 무늬의 생김새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문갑의 내부에는 오동나무를 덧붙이기 했다. 문손잡이는 백동을 실톱으로 가공해 무늬를 만들어 붙였다.

"문양을 찾으려고 해서는 못 찾아요. 작업하다 보면 우연히 찾아와요. 이런 무늬는 내 생전에 처음이라, 평생에 한번 찾을까 말까해. 아무리 오래된 나무를 구해 찾아내도 안 나와."

기술이 있어도 나무를 구하지 못하면 못 만든다는 먹감문갑은 작업기간만도 4년여가 소요됐으며 그 가격이 무려 3천만 원이 넘는다. 

아주 귀한 느티나무를 구해 만들었다는 응접탁자의 이음새는 계절에 따른 변화까지 고려했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영원성을 담았다. 원통형 갓함, 살구나무로 만든 죽비, 먹감좌경, 반닫이, 벼루함... 어느 것 하나, 시선이 맞닿으면 쉬 눈길을 거둘 수가 없었다.

설 옹은 미소를 지으며 살구나무 죽비를 보여준다. 죽비는 대나무로 만드는 게 아니냐고 묻자 대나무로 만들어 죽비라 부른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신명이 이어지자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외는 얼굴에서 천진한 소년의 모습과 부처님의 형상이 겹쳐져 다가온다.

"이게 죽빈디 대나무가 아니여, 살구나무여~."

a  난로위에 얹어놓은 고구마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난로위에 얹어놓은 고구마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 조찬현


설 옹의 작품 감상에 빠져있을 무렵 난로위에 얹어놓은 고구마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설 옹의 작품은 고가다. 사실 장인의 혼을 불어넣어 3~4년여 만에 탄생한 작품에 가격을 매긴다는 것은 결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굳이 값을 논한다면 장롱과 애기이층장이 3천만 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애기장의 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느낌이 별다르다. 깃털을 만진 듯 그렇게 가볍다. 스스로 습도조절을 한다는 오동나무를 덧대 만들었기 때문이다.

a  흐린 날씨인데도 2층 작업실엔 한줄기 햇살이 비춘다. 작업장에 가득한 나무가 목재소를 방불케 한다.

흐린 날씨인데도 2층 작업실엔 한줄기 햇살이 비춘다. 작업장에 가득한 나무가 목재소를 방불케 한다. ⓒ 조찬현


흐린 날씨인데도 2층 작업실엔 한줄기 햇살이 비춘다. 작업장에 가득한 나무가 목재소를 방불케 한다. 입구에서부터 오동나무가 한가득 쌓여있다. 이곳은 바깥에서 언뜻 보면 그렇게 많은 목재들이 숨어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없는 곳이다. 2층 작업실에는 설옹의 두 아들이 묵묵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전통방식으로 옛것을 지켜가며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설석철옹(83). 17세 되던 해인 1942년에 입문해 그간 전통가구라는 한 우물만 판결과 2001년에야 중요무형문화재 55호 소목장 보유자로 지정됐다. 지금은 설옹의 두 아들이 부친의 뒤를 이어 전통조선가구의 맥을 잇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 광주은행 사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U포터뉴스, 광주은행 사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소목장 #장인 #전통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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