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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법체계의 모순성을 파해치다

[리뷰]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09.01.22 19:46최종업데이트09.01.2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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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사진 치한으로 몰린 주인공 텟페이 ⓒ 서울엠피필름(주)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곳이 아니다. 법정은 피고인이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모아들인 증거를 가지고 임의로 판단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속 주인공의 독백중에서)

 승객으로 만원인 일본의 지하철내, '프리터(freeter)'로 생활하다 오랜만에 면접시험을 보게 된 주인공 '가네코 텟페이'(카세 료)는 문틈에 끼인 양복 옷자락을 빼려다가 여중생을 성추행한 '치한'으로 몰려 경찰서로 끌려가게 됩니다.

하루, 이틀이면 풀려 날거라는 텟페이의 생각과는 달리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그를 형사범으로 몰아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검찰과의 2년에 걸친 지루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형사범으로 기소시 99.9%의 확률로 유죄를 선고받게 되는 일본 사법체계의 모순점을 파헤친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작품입니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으랏차차 스모부>(1992), <쉘위댄스>(1996)등으로 국내관객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감독입니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작품 특징은 특정 인물에 의존하기 보다 탄탄한 서사구조를 갖춘 구성으로 영화를 풀어간다는 점입니다. 전작들이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각으로 만든 영화가 주류였다면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의외로 비판적인 시각이 매우 강해졌다는 점이 눈에 뜨입니다.

실화를 기반으로 상영시간 143분에 달하는 이 긴 법정영화를 풀어가는 그의 방식은 격정적인 사건의 변화없이 담담한 묘사로 일관돼 지나칠 정도로 평이해 보이지만 탄탄한 돌다리를 건너는듯 사건과 사건의 연결,주인공과 주변인물의 심리묘사는 거의 오차가 없습니다 .

억울하게 치한으로 몰린 주인공 텟페이와 그의 구명을 돕는 어머니 토요코, 친구 다츠오와 변호인 스도 리코(세토 아사카), 아라카와 마사요시(야쿠쇼 코지)의 목표는 텟페이의 무죄선고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사건을 지켜본 관객의 마음 역시 동일합니다.

하지만, 일단, 치한으로 몰려 기소된 주인공이 재판을 통해 무죄를 입증하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습니다. 형사범으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판사를 무능한 법관으로 치부하는 일본 사법체계의 벽은 영화속에서도 높기만 합니다.

피해자인 여학생의 일관된 증언과 경찰의 강압수사, 그리고 세상의 여론 역시 피해자의 편입니다. 치한이 아니면서도 스스로 치한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야하는 텟페이와 변호인단의 노력은 번번히 무위로 그치게 됩니다.

▲ 영화사진 구치소로 끌려가는 주인공 텟페이 ⓒ 서울엠피필름(주)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알수 있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포인트는 텟페이의 심리변화입니다. 당연히 무죄라고 확신했던 텟페이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점차 자신을 잃어갑니다. 10차례에 걸친 길고 긴 공판이 이어 지면서 법관에 대한 초기의 믿음은 사라지고 검찰과 재판구조에 대한 분노로 마음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순수하고 어리버리했던 첫모습에서 후반부로 가면서 적대감에 치를 떠는 텟페이의 모습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선의의 피해자의 억울함을 대변하는듯 합니다.

'진실을 밝힌다는 것'과 '유죄와 무죄를 밝힌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겐 똑같아 보이지만 사법 체계속에서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쉽게 혐의를 인정했더라면 합의 과정을 거쳐 며칠만에 풀려났을 텟페이는 부당한 현실과 싸워가며 사법부의 모순점을 하나하나 깨닫게 됩니다.

엔딩신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 달라"는 텟페이의 독백속엔 실화를 기반으로한 이 영화가 일본사법체계를 향해 외치는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텟페이의 싸움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법제도가 개편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텟페이가 언제나 나올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텟페이의 우울한 얼굴을 지켜보며  검찰과 법관이 부디 상부의 눈치와 실적에 고민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 억울한 피해자가 없는 재판을 하는 그날을 고대합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한상철 카세 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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