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드디어 미국 제44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올해로 미국에 산지 10년이 되는데, 미국 사람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어느 곳이나 비주류 출신의 큰 성공담은 감동을 자아내기 마련이다. 어려운 때이지만, 사실은 그럴수록 작지만 소중한 가치들이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기도 하는 것 아닌가.
그의 취임을 전하는 각종 대중매체들의 흥분된 목소리와 무려 200만여명이 그의 취임을 지켜보기 위해 모였다는 사실은 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의 깊이와 폭을 가늠할 수가 있게 한다. 놀랍게도 백악관에서 내린 첫 결정으로 쿠바의 관타나모 포로수용소를 폐쇄하며 "안전은 우리의 가치와 이상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지키겠다(in a manner consistent with our values and our ideals)"고 말했는데, 이는 이 명민한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결코 근거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제는 미국인들조차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 되고 말았지만, 온갖 수사를 동원하며 짐짓 자유와 정의를 위한다고 부르대면서 관타나모에서 부시집권기간 동안 행해진 일들은 정작 자유와 정의를 조롱하고 짓밟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때문에 미국이 자랑하던 가치가 손상 받고, 안 그래도 정당성을 의심받던 자신들의 대외정책이 국제사회의 냉소로 돌아오게 하지 않았던지. 이제 새 대통령의 첫걸음이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에서 부시 8년 동안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이 만신창이가 된 나라꼴을 그가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거라는 전망을 일단 가능하게 해준다.
과연 클린턴만큼만 하면 잘한 대통령일까
민주당 출신 전임대통령인 클린턴은 대체로 성공적인 대통령이었다. 물론 이는 당파에 따라 엇갈리기도 하고 실제 여러 과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부시행정부와 비교하여, 경제호황이나 낮은 실업율 등 흔히 그의 치적이라고 하는 것들을 비교하면 대단히 두드러진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사람들은 오바마가 클린턴만큼만 하면 대단히 잘했다고 할 듯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나는 좀 무언가 불안해진다. 그리고 마냥 오바마의 미래를 낙관만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왜인가.
대부분 사람들이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작금 미국의 위기, 특히 제2의 공황이라는 경제상황이 부시 전임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모두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심화되는 빈부격차, 형편없는 의료보험제도, 공교육은 거의 망해버린 교육, 껍데기만 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연금제도 등등 오바마조차도 그의 취임사에서 언급한 이런 모습들은 다른 유럽의 국가들과 비교하기면 매우 민망한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온 이런 모습들은 노벨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나 크루그먼 등이 얘기하듯 사실은 레이건 이후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함께 시작되어 왔다. 혹자는 믿고 싶지 않겠지만, 클린턴 시대에 더욱 심화되어 왔다는 것이 지금 중론이다. 마치, 아이엠에프의 모든 책임을 김영삼 정부에게 돌릴 수 없는 것처럼. 물론 부시정부는 역사에 두고두고 무능한 정부로 낙인찍히겠지만, 사실은 언젠가 터져버릴 문제를 조금 일찍 터뜨린 죄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작년에 우연치 않은 기회에 조금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06년을 기준으로 내가 사는 주의 최저임금이 1.1불 올랐으며 이는 거의 10년만의 인상이라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다른 여러 주(미국은 주마다 최저임금이 다르다)를 살펴보니 더욱 가관이었다. 예를 들면 조지아주는 지난 84년부터 17년동안 최저임금 인상이 없다가 2000년에 인상이 되고 캔사스주는 1988년 이후로 아예 지금까지 시간당 2.65달러 그대로이다.
정말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남부 몇몇 주는 최저임금에 관한 규정조차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부시시대는 논외로 치고 호황이라며 환호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 마지 않던 클린턴시대 풍요로움조차도 우리는 밑바닥 노동자계급을 무지막지하게 삶의 벼랑에 몰아넣으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당연하게 생각하며, 어떤 사람들은 알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또 나 같은 어떤 사람들은 무식해서 모르는 채 살아왔던 것이다. 내 결론은 낫고 모자라고 할 것 없이 다 나쁜 사람들이다.
최저임금 받는 노동자들에게 오바마는 어떤 답을 줄 것인가
얼마 전, 내가 사는 집이 미국 와서 4년 만에 구한 집인데, 살 때부터 워낙 낡은 집이었고 5년을 손 안대고 살았더니 이곳 저곳 수리할 곳이 생겼다. 웬만하면 배워가며 했겠지만, 목욕탕에서 물이 새고 방이 침수가 돼 이왕이면 다른데도 손 볼 겸 전문가를 불렀다. 교포이신 이분이 며칠 일을 하는 동안 그를 따라다니며 일을 도와주던 멕시코에서 온 미겔이라는 청년은 나이가 스물 네 살, 영어는 잘 모르고, 엄마와 여동생과 셋이 산다고 했다.
어쩌다가 교포아저씨를 만나 이 일을 시작했다면서, 그래도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 거보다는 힘들어도 이게 낫다며 착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얼마를 받는지, 가족과의 삶은 괜찮은지,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물어보기 싫었다. 나라는 소시민은 그냥 맘이 좀 여리긴 한데, 그냥 그것뿐이어서, 괜히 그런 거 물었다가 내 감정을 파편화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오바마가 처한 현재의 상황은 여러모로 최악이다. 그에 대한 처방도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한걸음 한걸음이 어렵고 실패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그런 난관 속에서 오바마는 과연 미겔 같은 친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그의 취임사 중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그는 자신들이 펼쳐갈 정책이 구체적으로 "많은 가정이 일자리를 얻고 그에 어울리는 임금을 받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helps families find jobs at a decent wage, care they can afford…).
잘 알다시피 2008년 오바마의 등장과 당선에는 흑인들을 비롯한 미국 노동계층의 절대적인 지지가 큰 밑거름이 되었다. 인권변호사 혹은 도시빈민운동가의 경력을 가진 그가 고의적으로 밑바닥계층의 삶을 도외시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고귀한 인간애를 정치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의 자본주의 혹은 정치경제적 환경 자체가 그런 방향의 정책들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으며(그런 점에서 그가 로비스트에 좌우되는 워싱턴의 관행을 언급한 것은 참 특이하기도 하고 또 반갑다), 그가 세계적 흐름에서 신자유주의 체제의 쇠락이라는 큰 틀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의 취임사는 언어적 수사에 불과한 요원한 바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는 오바마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좀 더 긴 안목으로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지.
(이런 얘기들은 그대로 정확하게 한국의 여러 상황과 부합한다. 그리고 오바마의 여러 정책이 다행스럽게도 크게는 이명박 정부의 성향을 조금은 바꾸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게 맞나 하는 자성의 흐름으로 연결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문제는 어쩌면 이는 몇 가지 정책의 좋고 나쁨으로 결정될 수 없는 차원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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