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오랜만에 브라운관을 통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30일 저녁 SBS에서 방영된 TV토론 <대통령과의 원탁대화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 출연한 이 대통령은 최근 극심한 위기를 맞은 경제 분야를 비롯해 정치, 교육, 언론 분야 등 여러 분야의 문제점에 대한 정부의 방침을 제시했다.
그러나 1시간 40여분의 시간동안 이 대통령은 이전까지 되풀이했던 말들을 반복하는데 그쳤다. 그의 견해는 새로울 것이 없었고, 이 날의 TV토론은 단지 그것들을 재확인하는 자리로서의 의미만을 가졌다.
특히 교육 문제에 있어서는 평준화를 문제 삼는 그의 부정적인 생각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교육 같은 교육은 없다. 평준화라고 해서 만들어놓고 실제로 평준화하면 이 제도는 오히려 사교육을 발달시켜서 돈 있는 사람은 비싼 과외를 받아서 좋은 대학을 가고, 사회적으로 성공한다. 옛날 교육은 어떻게 보면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평준화가 사교육을 발달시켰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비평준화 지역에는 사교육이 발달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일반계 고교 1493개 가운데 38.2%인 570개 학교는 여전히 비평준화 지역에 있다. 그런데 이들 비평준화 지역의 사교육비는 평준화 지역보다 낮을까? 고입 연합고사와 내신을 통해 고교입시를 치르는 비평준화 지역의 사교육 열기는 평준화 지역 못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하다.
지역에서 이름 날리는 소위 ‘명문고’에 입학하기 위해 전 과목 내신에 신경 쓰고 연합고사 대비까지 해야 하는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은 필연적으로 사교육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비평준화 지역에서는 교복이 낙인이라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자식이 명문고 다니는 집에서는 교복 빨래를 하면 사흘을 걸어놓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어떤 학교를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유무형의 차별이 존재하는 곳에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교육의 발달을 평준화와 연관 지으려는 이 대통령의 주장은 평준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그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사교육의 발달 원인은 획일적으로 서열화 된 대학체제에 있지, 결코 평준화에 있지 않다.
또 이 대통령은 “좋은 대학 가는데 지금 사교육비가 얼마나 드나. 사교육을 없애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학교 성적순으로 하니까 사교육을 받아 성적을 올려야 하고, 수능도 올려야 하고, 내신도 올려야 하고, 대학은 할 게 없다. 인재를 키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이 할 게 없고 인재를 키울 수가 없다는 말도 이상하게 들린다. 대학이 왜 할 게 없나? 그렇게 힘들게 고생해서 들어온 학생들 잘 가르치는 게 대학의 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들이 학생들을 갈 가르치고 인재로 키워낸다고 할 수 있을까? 전체 교원 비율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 문제만 봐도 대학이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는데 큰 관심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말로는 세계화, 글로벌화를 외치며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지만 입시철에 원서 장사하고 기업 후원금 받아 으리으리한 건물 올리며 외형 꾸미기에만 치중하는 곳이 한국의 ‘명문’대학이란 곳 아닌가?
영어교육 문제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은 견해를 밝혔다. “초등학교 학생이 영어 하나 배우겠다고 1년에 몇 만 명씩 나가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대한민국 교육이 영어 하나 제대로 못 가르치는 시스템인가, 반성해야 한다. 지난번 호주 수상, 뉴질랜드 수상이 와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그 나라에 3만 명, 8천 명씩 와서 공부를 한다는데 그래야 하나. 이런 교육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겠느냐. 없는 사람들은 방학 때라도 보내려고 비싼 돈을 들여서 한다. 교육을 학교에서 배워서도 할 수 있게 하고 다양화 하자.”
인수위 시절 숱한 화제와 어록을 탄생시켰던 영어몰입교육의 교육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사교육의 도움 없이, 해외유학의 도움 없이 공교육만으로도 영어를 잘 할 수 있게 하자. 취지는 좋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갖춰졌는가에 대한 성찰이 빠졌다. 진지한 성찰 없는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 우리는 이미 인수위 시절에 한 번 겪어봐서 알고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인수위는 처음엔 영어를 포함한 전 과목을 영어로 수업할 수 있다고 했다가 비판 여론을 의식하고 “전 과목이 아니라 영어만…”으로 슬며시 말을 바꿨다. 그런데 문제는 영어 과목조차 온전히 영어로 가르칠만한 역량의 교사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데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영어교사 수급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 인수위, 코미디는 시작된다. 영어에 능통한 주부들을 재교육시켜 교육 현장에 투입하거나, 해외 체류 중인 유학생을 공익근무요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 중에 있다고 했다. 이게 현 정권의 영어교육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자 성찰의 수준이다.
2012년까지 100개교 설립을 목표로 한 자율형 사립고에 대한 의견도 있었다. “자율형 학교를 만들면 과외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는 자율형 학교가 하나도 없다. 자사고 가려면 서울 학생도 지방에 가야한다. 몇 개 안되니까 몰린다. 그걸 많이 만들면 시험 없이 들어가고, 들어가서 제대로 공부시키라는 것이다. 정원의 30%는 의무적으로 자기 학비 댈 수 없는 사람도 들어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논리는 이거다. 자사고 입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고 사교육이 활황하는 이유는 그 수가 적기 때문이니, 자율형 사립고를 많이 만들어서 추첨제 같이 방식을 통해 시험 없이도 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로 2012년까지 100개를 만들면 경쟁이 사라질까? 자율형 사립고의 문제의 본질은 그 수에 있지 않다. 설사 100개를 짓는다고 해도 전체 일반계 고교의 10%도 안 된다. 공급이 소폭 늘어난다고 수요가 줄어들지는 않을 거란 얘기다. 오히려 소폭 늘어난 공급을 차지하기 위해 수요가 폭증할 수도 있다.
추첨제 등을 통해 시험 없이 입학하게 하면 경쟁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넌센스다. 며칠 전 발표된 자율형 사립고 입학전형 방식을 보면 국제중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1단계 서류전형과 2단계 개별면접, 그리고 3단계 추첨제까지, 국제중의 입학전형 방식을 베끼기라도 한 듯 똑같다.
그런데 국제중의 입시가 어땠던가? 사교육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마지막 3차 전형에서 공의 색깔을 이용한 추첨제를 적용한 국제중 입시는 그러나, 발표와 동시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교육 시장의 로또가 됐다. 입학전형도 로또, 사교육 시장에도 로또, 그런 국제중 입시를 그대로 답습하겠다는 것이 바로 자율형 사립고의 입학전형이다.
이 대통령은 “우리 한국이 다시 한 번 미래에 성장하려면 교육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들은 이제 산업화 시대를 지나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교육제도를 바꿔 미래에 성장하려면 미래지향적인 교육제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이 대통령은 정작 60~70년대의 교육제도인 비평준화를 옹호하고, 반대로 평준화를 깎아내린다. 영어 잘한다고 성장하고 미래지향적이 되나? 그런데 옆 나라 일본에서는 영어도 잘 못하고 심지어 여권도 없는 물리학자가 노벨 물리학상을 탔다.
제발 생각을 하자. 진지하게. 과연 무엇이 교육을 위한 제도인지, 학생을 위한 제도인지 말이다. 당장 눈앞에 당면한 작은 문제에만 치중하여 큰 것을 보지 못한다면 사교육은 사교육대로, 공교육은 공교육대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지난 정권에서 그런 일들 숱하게 봐오지 않았나. 봤으면 배우고 느끼는 게 있어야 정상 아닐까?
| 2009.01.31 14:49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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