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노동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할 것인가

등록 2009.01.31 15:43수정 2009.01.3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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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경기한파로 직장에 남아있는 것만도 다행스러워할 정도로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모두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정규직이라고 비정규직의 사정을 남의 일 보듯 하지만 언제 내 문제로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이 갑자기 해체 통보되었다. 2002년 만들어진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연간 50차례 이상 공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지만 단원들은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그러나 단원들은 해체통보를 받고서야 분통을 터뜨리며 비정규직의 고통을 절감하고 공공노조에 가입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단원들은 낯설게만 느꼈던 ‘비정규직’, ‘노동조합’이란 말이 얼마나 자신들의 삶과 가까운지 깨달았다고 했다. 그들은 비정규직이 얼마나 노동자 대우를 못 받는지, 노동조합이 왜 필요한지, 직접 겪어보니 알겠다고도 말했다. 어제까지 남의 일이었던 것이 오늘 내 문제로 들이닥친 것이다. 남의 문제가 결코 남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남의 일을 강 건너 불 보듯 하지 말고 내 일처럼 바라보고 동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구에 있는 삼우정밀회사는 노동자 85명 가운데 18명이 이주노동자라고 한다. 이들은 비정규직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비정규직이다. 이 회사 역시 회사사정이 어려워 이주노동자들을 내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 노동조합회원들은 “그래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18명의 이주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자기들이 희생함으로써 지켜냈다.

 

그것은 정규직 노동자 44명이 석 달 동안 두 조로 나눠 2주일씩 휴업하는 방법이었다. 회사는 휴업 조처에 고용유지 지원금을 신청해 받을 수 있으니 정규직 노동자들은 휴업 기간에 통상임금의 80%만 받고,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고용유지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그대로 일하도록 한 것이었다. 현재의 임금으로도 살기가 버거울 노동자들이 임금삭감을 각오하면서까지 고통분담을 했다. 제 살 깎아 동료들을 지켜낸 것이다.

 

서로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끼리 아픔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화가 많이 났다. 노동자들의 희생만 있을 뿐 회사나 정부의 노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일자리 나누기는 노·사·정의 공감과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 네덜란드나 독일도 정부가 실질임금 보장을 위한 세금 감면 등 지원책을 내놓고 노사정 대타협으로 일자리를 나누는 문제를 풀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노동자들끼리의 양보 교섭만 강조할 뿐이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노동부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일자리 나누기 활성화 방안’으로 정부는 일자리를 나누는 중소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고, 연구·개발이나 컨설팅, 정책자금 대출 등 각종 지원을 우대하겠다고 밝혔다.

 

노사 합의로 임금을 깎아 일자리를 나눈 중소기업에는, 깎인 임금의 50%가량을 비용으로 간주해 손금 산입을 허용하는 등 2년 동안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이 추진된다고 한다. 정부가 밝혔다는 이 방안에는 아무리 봐도 정부나 기업의 고통 분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희생을 해야 하는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없다.

 

노동문제는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지 않으면 갈수록 악화될 뿐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노동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할 것인가.

2009.01.31 15:43ⓒ 2009 OhmyNews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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